• 최종편집 2024-04-18(목)
 

'1인극 거장'이자 전통 민속문화를 연구·계승하는 데 평생을 바친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23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1959년 '꼭두각시놀음'을 재연했으며, 꽹과리·장구·북·징으로 연주하는 민속놀이에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인가? 젊은이들 넷이 모여 꽹과리 치면서 놀이패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나보고 이름을 좀 지어달라고 했어요. 민사물과 절사물 중 민사물로 논다고 했고, 네 명이 논다는 말에 '사물놀이'라고 지었죠."

 

생전 고인은 민속놀이 대표 장르로 자리 잡은 '사물놀이' 탄생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1978년 2월 고인이 공연기획자 겸 연출가로 참여한 대학로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이광수·김용배·최종실·김덕수에 의해 처음 사물놀이가 무대에 올랐으니 사물놀이 산파 역을 톡톡히 한 셈이다.

 

193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민속학자 임석재 선생 제안으로 민요 채록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탈춤과 농악, 민요 등을 수집·연구하던 고인은 남사당패에 천착해 1965년 민속극회 '남사당'을 창단해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과거 광대·백정보다도 천시받던 유랑집단 '남사당'을 예인(藝人)으로 격상시킨 최대 공로자로서 연희 분야 민속학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남사당패의 삶과 예술을 추적·기록했으며, 직접 연희용 탈과 인형을 만들어가며 그들의 연희를 예술로 재정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특히, 발탈(발에 씌우는 탈) 연구 일인자로 손꼽혔다.

 

고인의 공헌이 없었다면 남사당놀이가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 한 치의 이견이 없다.

 

고인은 19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를 설립해 타계 전까지 소장직을 맡았으며, 1996년 공주민속극박물관을 설립해 초대 관장을 지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각종 탈과 인형, 민속 악기 등 민속극 관련 자료 1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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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 사물놀이 이름 붙인 1인극 거장 심우성 선생 별세. 향년 8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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