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겨울 끝자락 날씨가 훈훈했다. 고석진 북 명인과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한강 물이 물컹한 비린내와 함께 넘실댔다. 예술의전당 앞 삼거리엔 사람과 차들로 북적였다. 대개의 공공기관 건물이 그렇듯, 예술의전당도 사람 향기 보다는, 딱딱한 돌덩이로 만든 무덤 같이, 혼이 없어 보였다.
 
약속 장소인 오페라 극장 1층 찻집 푸치니 통로에는 온통 영어로 된 안내 간판들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찻집 입구에 놓여 있는 홍보물을 집어 들었다. 영·유아 및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부모 교육’ 자료집이었다. 유럽풍 의상을 입은 엄마와 소녀가 사진으로 박혀있었다. 씁쓸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의 혼이 그리웠다.
 
고석진 북 명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북 소리는 나를 몽환상태로 몰아넣었다. 곱슬곱슬한 머리, 강렬한 눈 빛, 긴 턱 수염, 팔작지붕 같은 어깨선, 길 가다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절묘한 기하학적 다리 모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북소리는 풍류 그 자체였다.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런데 고석진의 북소리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뛰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목젖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다.
 
고석진은 가장 한국적인 남자이다.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가 우리 장단과 춤사위를 담고 있다. 엄마 뱃속에 잉태됐을 때부터 우리 장단과 춤을 배운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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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의 북 명인 고석진 "모든 사물의 소리가 타악,생활 자체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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