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찬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묵직한 대금 소리가 그립다.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면서 곡주 한 잔 기울이면 촉촉하게 마음을 적셔오는 대금 소리가 절로 귀에 착착 감긴다. 자연의 품에 안긴 가을은 격렬한 박자의 로큰롤이나 화려한 클래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잠시 일상을 놓고, 지친 영혼의 휴식을 위해 신묘한 대금산조 선율에 빠져본다.

"30대 중반까지 제 이름이 없었지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 상태를 잘 대변하는 예술은 없기 때문이다. 낙엽이 나뒹구는 쓸쓸한 계절이 찾아오니, 평온과 청량감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모양이다. 도시 생활에서 사나워지는 마음을 항상 촉촉하게 채워주는 대금산조가 생각난다. 이광훈의 대금산조가.

한국에서 대금산조 최고의 명인은 인간문화재 죽향 이생강 선생이다. 이광훈은 이생강 선생의 아들이자 이생강류 대금산조 전승후계자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광훈은 부친으로부터 오늘의 산조원형을 올곧게 전수받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대금산조는 우리 국악 중 기악 독주 음악의 하나로 고대로부터 전해온 남도소리의 시나위와 판소리의 방대한 가락을 장단에 실어 연주하는 곡이다. 특히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진양, 중머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동살푸리, 휘모리의 장단변화로 구성된 국악의 백미다.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장단도 장단이지만 짜임새가 기가 막힙니다. 서양음악 하시는 분들도 감탄할 정도로 화성악과 선율구조가 다양하다고 하시죠. 삼라만상, 우주, 자연의 소리가 이생강류 대금산조에 담겨져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120분짜리를 작곡하셨죠."

아버지라는 큰 산이 가끔은 그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듯싶다. 아무리 잘해도 이생강의 아들이라는 주위의 선입견은 그가 앞으로 커 가는데 그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있어 고맙고 또 든든하다.

"30대 중반까지 제 이름이 없었지요. 항상 이생강 아들 이광훈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고요. 지금은 오히려 더 편안합니다. 아버지께서 계시니까 활동하기도 든든하고 항상 제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시니 감사드리지요. 제 곁에 오래 계셔야 할 텐데."

"아버지 앞에서는 절대로 연습을 하지 않는다."

이광훈 연주가는 태어나면서부터 대금 소리를 듣고 자랐다. 아버지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금을 생활 안에서 배우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항상 접하다보니 머릿속에 온통 한국전통민속음악 뿐이었습니다. 10살 즈음에 우연히 아버지 대금을 입에 대서 불었는데 바로 소리가 났지요. 연습 없이 처음에 소리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바로 머릿속에 있는 아리랑을 연주했습니다. 저도 불면서 신기했지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광훈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금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아버지가 국악을 하지 않았다면 그도 음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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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금산조 맥을 잇는 이광훈 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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