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한국출신은 음악을 잘 한다. 보통사람들도 노래를 잘 하지만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가가 많다. 장한나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얼마 안 되어 세계적인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쿨에 나가 우승하는 영광을 안았다. ,

 

 

장영주도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크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출신의 음악가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정트리오를 비롯해서 김영욱 강동석 등의 기악분야도 그렇지만 요즘은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 등이 성악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곡분야의 윤이상이나 비디오 아-트의 백남준 모두 뛰어난 한국인들이다.

 

서양음악을 접한 지 1세기 밖에 안 되고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을 공부한지 70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렇게 서양음악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말 우리민족은 음악에 놀라운 재주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가장 국제 경쟁력이 있는 음악재주를 우리들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네 대부분이 음악에 큰 재주를 타고 났다.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음악을 잘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음악을 잘한다. 조그마한 한인교회의 성가대들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메시야를 척척 하는 것이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음악 실력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이러한 음악재주에 대하여 왜 우리에게 그런 음악재주가 형성되었는가를 생각해 본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늘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왔다. 모를 심을 때에도 노래하면서 모를 심었고 김을 맬 때에도 노래하면서 김을 매었다. 농촌에서는 농사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고 어촌에서는 배를 젓거나 그물을 치고 걷을 때에도 노래하면서 손발을 맞췄다. 노래 없이 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에 노래가 불리어 졌다.

 

관리들이 근무하는 관아나 군대에도 악사들이 있었고 궁중에는 6세기부터 궁중악사제도가 있었다. 궁중의 모든 의례에는 반드시 음악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궁중악사의 수는 몇백 명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활은 온통 음악과 함께 하는 생활이었다. 생활의 내용 즉 삶의 내용을 문화라고 한다면 우리네의 문화는 온통 음악과 함께 하는 문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왕조에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같은 제천대회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우리의 음악재주와 음악취미는 그렇게 오래 오래 지속되어 온 우리네의 생활 속에서 축적된 것이다.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체질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잘 한다. 음악의 소질이 유전되어서 음악을 잘하고 또 생활환경이 늘 음악을 하면서 사는 환경이니까 음악을 잘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나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음악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옛날 우리들의 생활이 온통 음악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요즘의 음악가정 출신처럼 음악적인 소질과 취미를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소질과 취미를 살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고 극히 일부만이 그 소질을 개발하여 빛을 발하고 있다.

옛날의 음악환경은 아침에 일터에 나가면 자동적으로 노래를 하게 되고 풍물을 치게 되고 가사를 만들어 부르며 일하는 환경이었다. 남도의 큰 농가에서 모라도 심는 날이면 2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치면서 길꼬냉이를 부르며 마을에서 들로 나간다. 일터에서는 모를 찔 때부터 노래를 하면서 모를 찌고 모를 심을 때에도 노래를 하면서 모를 심는다. 중간에 막걸리와 참을 먹는 시간이 되면 또 한 바탕 두레풍장을 치고 논 다음에 막걸리를 마시고 참을 먹는다.

 

일을 다 마치고 저녁에 마을로 돌아 올 때에도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들어오고 마을에 도착한 다음에도 한 바탕 놀고 나서 헤어지게 된다. 요즈음으로 따지면 생활 자체가 음악적인 환경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노래를 할 때에도 일정한 곡조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높은 소리로 부르기도 하고 낮은 소리로 부르기도 한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정말 자유롭게 노래를 메기고 받아주며 일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늘 음악과 함께 살아 온 우리여서 그토록 음악의 재능과 취미를 타고 난 것인데 오히려 현대의 생활이 마음껏 음악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도록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 동안은 술 마시는 기회에 젓가락으로 상 언저리를 두드리면서 노래하곤 하더니만 이제는 그런 관행도 사라지고 노래방에 가서야 노래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능동적으로 노래를 하고 여럿이 어울려 노래하기란 퍽 어렵게 되어 버렸다. 가사나 곡조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부르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음악을 전공하여 우리네의 음악재주를 개발하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재능이나 기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많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민족 구성원들에게는 오랜 세월 우리의 생활에서 형성된 음악의 재주가 얼마든지 잠재해 있다. 이 재주를 갈고 닦아서 세계적인 음악가를 많이많이 길러내어야 한다. 우리는 놀라운 음악의 재주를 타고 난 민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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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놀라운 음악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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