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김우영 (전주교육대학교 총장)

전주 한옥 마을에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전주대사습청이 개관하였기 때문이다. 전주대사습청은, 대사습놀이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서 지난해 5월 건립되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지난달 25일에야 개관하였다. 전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맛과 멋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현재에도 전주대사습놀이가 기원한 판소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주대사습놀이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조선후기 전주부 통인들이 판소리 창자들을 불러 함께 감상하던 행사에서 시작하여, 전라감영과 전주부 통인청 소속 창자들의 경연으로 발전한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 전주대사습놀이는 판소리 창자의 등용문으로도 기능하였는데, 판소리 애호가였던 대원군은 장원한 명창을 서울로 상경토록 하여, 어전에서 공연하게 함으로써 명예와 부를 쌓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전주대사습놀이는 1910년 무렵까지 이어지다, 창극과 가요의 유행으로 폐지되었지만, 1974년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가 결성됨으로써 부활하게 되었다. 현재 판소리 부분 이외에도 전통음악과 기예 부문 9개 부문이 더하여 경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래의 기원이 판소리였기 때문에, 판소리가 여전히 독보적인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현재에도 판소리를 부흥시키고 계승하는 데 있어 전주대사습놀이가 중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판소리의 역사에서 전주 지역이 두드러지는 것은 공연 예술의 한 장르로서 판소리를 발전시켜 왔을 뿐 아니라, 수 믾은 명창들을 배출하고, 판소리를 이론화하고 정형화하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고창의 신재효는 현재 전해지는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 후기 판소리 창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한 판소리 문화의 최대후원자였다. 한편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판소리 부문에 최초의 여성 명창들을 배출함으로써 판소리의 대중화와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판소리 중흥을 이룬 순조시기 전기 8명창과 철종시기 후기 8명창, 고종시기 5명창의 출신 지역과 활동 지역을 살펴보면, 이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북 지역과 인근 지역 출신으로,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이 판소리의 발전을 이끌어낸 중심지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순조시기 8명창 중에서 특히 전주출신 권삼득과 남원출신 송흥록은 판소리의 중흥을 이룬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송흥록은 권삼득의 고수로 활약했던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나아가 양반층의 음악과 경상지역 음악을 가미하여 판소리를 전지역적, 전계층적 음악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권삼득은 8명창 중 가장 앞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판소리의 중흥기를 선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본래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안동 권씨 양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소리를 좋아하여 소리꾼이 됨으로써, 집안에서 파문을 당하였다 한다. 그는 권마성 소리를 응용한 판소리 선율인 설렁제를 만들어 후대에 전하였고 흥보가를 잘하였다. 구억리 뒷산에는 그의 묘로 추정되는 곳과 그 근처에 그가 소리 공부한 것으로 전해지는 ‘소리굴’이 있다. 전주에는 그를 기념하는 권삼득로가 있으며, 권삼득로는 전주고 정문에서 전북대 정문을 지나 전라북도립국악원에 이르는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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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사습청과 판소리, 권삼득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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