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0(수)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국악정보 검색결과

  • 세계로 퍼져가는 농악과 사물놀이
    1. 농악이라고 하는 음악장르 농악은 그 명칭이 “農(농사농) 樂(풍류악)” 두 글자로 된 농악(農樂)이어서 음악의 한 갈래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농악을 접할 수 있는 경우는 오늘날 농촌의 현장에서보다 민속예능이 행해지는 행사장인 경우가 더 많게 되었다. 2002년에도 제43회 전국민속예술축제가 충주의 탄금대 잔디마당에서 열렸었는데 그런 곳에 가 보면 농악소리는 거의 모든 출연 팀들의 연희과정에서 들을 수 있다. ‘금과 들소리’(전북)나 ‘정이 고을 여름 들소리’(제주) 같은 농사과정에서 부르는 농요를 부르는 팀도 농악대를 앞세우고 나와서 노래 사이사이에 농악을 치고,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강원)나 ‘당정마을 지신밟기’(대구) 또는 ‘계족산 기우제’(대전) 같은 의식과 관련되는 행사에도 농악대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천 ‘청단놀음’(경북)이나 ‘북청사자놀음’(함남) 같은 가면극에도 농악대는 등장하고 ‘강강술래’(전남)나 ‘월월이청청’(경북) 같은 부녀자들의 놀이에도 농악은 빠지지 않았다. 물론 판굿으로 벌이는 ‘부산농악’이나 ‘광주 지산농악’은 더 본격적인 농악의 대형을 갖추어 멋진 농악공연 한판을 벌이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민속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민속축제의 현장에서만 보드라도 농악의 기능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사를 짓는 현장에서 들노래를 부르면서 일할 때에도 농악을 쓰고 정월 대보름이나 정초 무렵에 하는 답교놀이나 지신밟기 또는 기우제 같은 마을의 공동행사에도 농악을 쓴다. 줄다리기 같은 행사에는 양쪽 편이 다 농악대를 앞세우고 입장도 하고 응원도 하기 때문에 두 패의 농악대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연용의 농악으로 판굿이라는 농악을 할 때면 50여명의 많은 인원이 나와 각종 진법과 놀이를 벌이며 한 판의 농악을 하게 된다. 이로 미루어 보면 농악은 농사일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두레농악>도 있고 마을의 당제나 지신밟기 등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의식용 농악>도 있고 각종 민속놀이에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반주용 농악>도 있고 완전히 한 판 농악의 음악과 놀이를 함께 보여주는 판굿이라 하는 <공연용의 농악>의 농악도 있다. 민속예술을 연행하는 공연 팀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고 한 과정 한 과정을 진행할 때 계속 농악을 사용하기 때문에 행진용의 농악도 있는 셈이다. 정말 농악의 용도야말로 그 갈래를 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많이 쓰인다. 농악의 용도가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용도에 따른 농악대의 편성도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하게 편성한다 하드라도 꽹가리․징․장구․북이 빠지는 예는 없다. 반드시 네 가지 악기는 사용하게 되어있다. 각 악기의 인원수도 형편에 따라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하더라도 꽹가리는 한 두 개, 징은 하나, 장구나 북도 한 두 개쯤으로 편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농악을 공연용으로 하는 <판굿>인 경우는 편성이 50명 정도의 대 편성이고 악기의 인원이나 소고 잽이 포수․양반․각시 등의 잡색들 수도 여러 명으로 편성하게 된다. 그리고 농악의 지역별 특징에 따라 편성의 내용도 다르게 되어있다. 농악은 한문 식의 용어이고 풍물․풍장․매구·굿 등 순 우리말 용어도 많이 쓰인다. “웃다리풍물”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풍물이라는 용어는 대전 이북의 중부지방에서 주로 쓰는 용어이고 “풍장 친다.” “굿 친다.”는 말은 호남지역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그래서 호남의 농악은 우도농악 좌도농악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우도굿 좌도굿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매구 친다.”는 말은 영남지역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그러니까 통칭으로 농악이라고 하는 것을 풍물이나 풍장 매구 등으로도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요즘은 풍물놀이란 말이 가장 많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슨 풍물패라 부르기도 하고 풍물놀이 경연대회라는 행사도 하고 있다. 그러니까 “풍장패” “매구경연대회” 같은 말이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 <풍물>이란 말이 앞으로도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앞에서도 농악의 기능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였지만 농촌의 현장을 생각하면 농악이 사용되는 경우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에서 정초에 윷놀이 같은 것을 하고 놀 때에도 흥을 돋우기 위하여 농악을 사용할 수 있고 정월 보름 무렵에 하는 지신밟기나 달집태우기를 할 때에는 물론 농악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나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농악이 의식용 음악으로 엄숙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농사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두레를 짜서 10여명이나 20여명이 함께 논에 모를 심으러 가게 되는데 그럴 때에 농기를 앞세운 일꾼들은 농악(길군악)을 치면서 일터로 가고, 또 돌아 올 때에도 농악을 치면서 돌아온다. 일터에서는 일을 한참 한 다음 참을 먹거나 막걸리를 마시게 되는데 그럴 때에도 풍장을 치면서 한 바탕 여흥을 하고 다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모심기나 김매기를 끝내고 마을에서 축제라도 벌이는 날이면 술 취한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하여 농악을 치면서 흥겹게 어울려 춤추며 논다. 그러니까 농악은 농촌생활의 많은 부분에 사용되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나 놀이에 있어서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승되는 농악은 그런 생활음악으로서의 농악보다는 전문성이 강한 <판굿>이 주류를 이루고 걸립패나 남사당들이 하던 농악 등이 새로운 형태로 변하면서 현대에 적응하고 있다. 특히 각 학교에서 농악대를 만들어 육성할 경우 전주나 이리 정읍 등지에서는 우도농악을 남원이나 임실 등지에서는 좌도농악을 가르치고 김천에서는 김천농악을 충청도에서는 충청농악이라고 할 수 있는 웃다리풍물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경남의 삼천포농악이나 강원도 강릉의 강릉농악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어서 그 지역의 몇몇 학교에서 전수하고 있다. 때문에 생활 속의 농촌 농악은 퇴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겠지만 판굿으로 벌이는 공연용의 농악은 학교의 농악대 육성이나 문화재제도를 통하여 잘 전승되리라고 생각한다. 2. 판소리와 농악의 큰 지도 나는 자주 얘기한다. 음악은 문화의 한 부분이어서 생활방식과 관련한 문화가 다르면 음악도 달라진다고.. 우리나라는 땅덩이는 크지 않아도 지방에 따라 사투리도 독특하게 발달하고 음식도 다양하게 발달되어있다. 그런데 음악의 기초형태인 노래는 철저히 각 지방의 사투리와 관계를 가지고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도민요,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제주민요 등의 민요 권으로 나누어 민요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고 무가(巫歌) 역시 민요를 바탕으로 발달하는 것이어서 지방에 따라 무가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무악권을 설정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최근 어떤 학술대회에서 '중고제 판소리'를 일종의 고제(古制)판소리처럼 생각하여 그것이 옛날 식 판소리였기 때문에 전승이 끊어진 것처럼 말하는 학자를 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음악도 지방에 따라 다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음악의 특징을 공유하는 지역을 묶어서 하나의 음악 권으로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판소리에 있어서 동편제라는 말은 전라도 동쪽 지역의 판소리가 선율 됨됨이나 창법 등이 다른 지역과 다르고 명창들의 사사계보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동편제의 지역은 전라도 남원을 중심으로 운봉, 순창, 구례, 곡성 등지와 경상도의 함양, 진주, 하동 등지에서 전승되던 소리이다. 이 지역은 농악으로 보면 좌도농악이 발달한 지역과 일맥상통한다. 좌도 농악 역시 충남 금산에서부터 남원, 임실, 곡성, 구례 등지에서 발달한 농악들인데 동편제 판소리가 경상도 쪽 문화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한 것처럼 좌도농악 역시 경상도 쪽의 문화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했다고 보아도 된다. 말하자면 인접지역의 문화와 무엇인가가 섞이면서 발달하는 것이 그 지역의 문화이기 때문에 동편제 판소리나 좌도 농악은 모두 경상도와 인접한 지역에서 발달한 것이어서 일정량의 경상도 문화와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편제 판소리는 우도 농악과 거의 같은 지역에서 발달한 판소리이다. 전라도 이리, 정읍, 나주, 광주, 영광, 보성 등 평야지대와 서해안 지대를 잇는 넓은 지역이 서편제 판소리가 발달하고 우도 농악이 전승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이야말로 전라도 특유의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한 지역이어서 판소리도 전라도 '육자배기'나 '진도아리랑'에서 나타나는 남도 계면조의 선율이 많고 가자 붙임도 엇붙임이나 기교적인 붙임새가 발달하였다. 우도 농악 역시 가락이 화려하고 설장고 가락이나 꽹가리의 리듬이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게 발달하였는데 그 역시 좌도 농악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전라도 전 지역을 문화적으로 본다면 판소리의 동편제와 농악의 좌도 농악이 발달한 경상도와 인접한 지리산 쪽과 서편제 판소리와 우도 농악이 발달한 중부 서남해안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전 이북지역의 농악은 소위 말하는 웃다리 농악지역이다.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이 이 문화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사투리도 전라도와 다를 뿐 아니라 민요나 무가(巫歌)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농악도 다르게 발달되었는데 이 지역이 판소리로 따지면 중고제(中古制)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고제 명창들의 출신지만 보더라도 김성옥(金成玉), 김정근(金定根) 부자(父子)가 충청도 강경 출신이고 김정근의 아들 김창룡(金昌龍, 1872~1943)은 서천에서 태어났다. 심정순(1873~1937)과 심상건(1889~1965)은 숙질(淑姪) 간인데 심정순은 판소리의 음반을 여러 장 남긴 중고제의 명창이었고 심상건은 가야금 병창을 잘하는 음악가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서산출신이다. 1902년 협율사가 생기면서 창극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일제시대 풍채 좋고 소리 잘하는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동백(李東伯 1867~1950)도 충청도 비인 출신이다. 순조, 헌종, 철종 때 이름을 떨쳤던 염계달 명창은 경기도 여주 출신이라 하고 역시 같은 시기 활동했던 고수관명창은 충청도 해미 출신이라고 한다(조선창극사). 따지고 보면 중고제를 잘 불렀다고 전해지는 대부분의 명창들은 충청도나 경기도 출신이다. 때문에 중고제라고 하는 판소리의 음악 스타일은 전라도와 문화가 다른 충청도 경기도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판소리이지 신식 판소리에 대칭 되는 고제 판소리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판소리는 크게 호남은 중심으로 하는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고 충청도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고제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을 농악과 연결하여 조감하면 좌도 농악은 동편제 판소리 지역과 관련이 있고 우도 농악은 서편제 판소리 전승지역과 관계가 있고 웃다리 농악은 중고제 판소리 지역과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음악의 권역을 크게 구분하고 이해하면 음악이 문화의 한 부분으로 다른 문화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문화에 대하여 그냥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각 부문을 연관 지으면서 횡적으로 또 종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공연용 음악으로 거듭난 사물놀이 1978년 김덕수패에 의하여 시작된 ‘사물놀이’는 새로운 음악이다. 생활의 일부로 존재했던 옛날의 풍물이 아니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새로운 형태의 새로운 내용을 가진 새로운 음악이라는 것이다. 사물놀이에는 옛날 풍물의 요소가 많다. 그러나 옛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난 공연용의 풍물이고 일종의 창작품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가 사물놀이를 기존의 풍물과 구별하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뜻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농악과 사물놀이를 같은 것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또 두 가지를 구별하는 기준이나 안목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사물놀이는 두 가지 입장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전통음악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의 입장이다. 전통음악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농악을 현재의 상황에 맞게 <현재화>한 것이 사물놀이라는 설명이 가능하고 작곡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데 전통음악의 언어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작곡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결과는 비슷하지만 보는 입장은 다른 것이다. 전통음악은 대부분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적응하여 새롭게 변하면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풍물은 야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나절쯤을 단위로 하여 한 판씩 벌이던 것이다. 공연처럼 하는 ‘판굿’이라 하드라도 진법놀이를 하든지 농사풀이를 하든지 좀 느슨하게 한 과정 한 과정 해 나가게 되어있다. 그래서 흥청대는 멋도 있고 발림이나 춤을 보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상황은 그런 농악을 즐길 시간이나 공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네의 감수성이 변하여 그런 농악에서 농악다움의 멋이나 흥을 느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김덕수를 비롯한 네 명의 젊은이들은 농악을 하나의 음악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실내라는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에 농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존의 농악가락을 이용하면서 훨씬 밀도 있게 압축하여 음악회 형식의 농악판을 만들어 본 것이다. 서서 발림을 하고 각종 놀이를 벌이며 하던 농악을 앉아서 두드리는 소리만 듣도록 하는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변화도 <전통의 현재화>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전통의 입장에서 보면 농악의 <현재화>한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진보적으로 보면 사물놀이는 새로 만든 새로운 공연물이다. 말하자면 새로 작곡된 새 작품이라는 말이다. 다만 작곡방법이 전통적인 방법이어서 음악의 구성요소나 연행방법이 기존의 농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농악이 하나의 놀이로서 음악․무용․연극․진법 등의 요소가 다 함께 있는 것인데 비해 사물놀이는 음악위주로 되어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전통음악어법으로 작곡한 새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새 작품의 형태도 악보에 그려진 서양 식 작품처럼 모든 음이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은 정해져 있지만 각 악기의 가락은 연주자가 자기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도록 <틀을 짠>작품인 것이다. 어느 것이나 실내용의 음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악 연주의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음량이나 템포를 훨씬 밀도 있게 죄면서 긴장감을 더해가서 절정에 이르도록 하는데 청중을 몰아의 상태인 엑스타시의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처음 사물놀이를 접한 청소년들도 한번 연주로 사물놀이를 좋아하게 되고 외국의 타악 연주자들도 사물놀이를 최고의 타악앙상불로 평가하여 오늘날 사물놀이는 세계적인 음악이 되었다. 1995년 당시 외국인으로 사물놀이를 배운 사람이 10000명에 이르렀고 매년 200셋트이상의 사물놀이 악기가 수출되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사물놀이의 파급효과는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초․중․고등학교에 사물놀이패가 등장하고 직업적으로 사물놀이를 연주하는 단체의 수도 상당히 많게 되었다. 그 만큼 사물놀이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풍물 즉 농악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학생들이 많지만 사물놀이를 모르는 학생들은 없을 정도로 사물놀이가 풍물을 대신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또 사물놀이를 가깝게 생각하는 학생들은 그것이 국악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자연 국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사물놀이가 국악으로 취향을 옮겨주는 매개역할도 하게 되었다. 사물놀이의 긍정적 파급효과는 너무나 엄청나서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사물놀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물놀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대개 사물놀이 때문에 기존 농악을 버렸다는 것이고 농악의 참 멋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놀이는 음악적인 효과를 노리다 보니까 빠르고 기교적인 가락에 치중한 나머지 흐드러지는 멋이나 저정거리는 맛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여유와 죄고 푸는 흐름이나 연극적인 재미도 퇴색해 버렸다. 허 허 웃고 한 잔 마시며 즐기는 풍물이 아니라 숨을 죽이고 긴장하며 감상하는 한 단위의 음악작품이 되어버렸다. 사물놀이는 그렇게 새로 태어난 새로운 공연물이기 때문이다. 사물놀이가 인기를 끌고 대단한 기세로 퍼져나가니까 사물놀이를 활용한 새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83년 8월에 발표된 강준일 작곡의 -피아노와 사물(四物)을 위한 모음곡-“열두거리”는 굿의 열두거리를 연상케하는 작품으로 1)Prologue, 2)굿거리, 3)잦은 가락, 4)진쇠, 5)소릿가락, 6)청배가락, 7)부정놀이, 8)도살풀이, 9)터 벌림, 10)엇중모리, 11)진쇠, 12)올림채, 13)당악 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86년 박범훈이 작곡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신모듬”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연주하는 음악을 그대로 살리면서 국악관현악과 어울리도록 만든 작품이다. 사물놀이는 국악관현악이 있어서 한층 부드러워지고 국악관현악은 사물놀이와 조우하면서 훨씬 신나는 음악을 만들어 간다. 지휘자의 통제를 받으며 연주하는 식이 아니라 지휘자가 음악을 타고 춤을 추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음악 그 자체가 대단한 역동성을 가지고 스스로 흘러가고 있다. 사물놀이의 힘이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김덕수패 사물놀이는 초창기부터 외국의 음악가들과 즉흥연주를 통해 만나는 improvization을 자주 시도했었다. 특히 외국에 가서 공연 할 경우 그 곳의 유명한 연주자들과 같은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그런 음악행위를 자주 했다. 한국에서도 째즈그룹 “레드 선”과 함께 연주회를 여러 번 했는데 안숙선이 수궁가 한 대목을 노래하고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레드 선”이 함께 연주한 즉흥음악은 연주효과도 좋았고 그 연주의 실황음반도 호평을 받았다. 김덕수패 사물놀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면서 어떤 악기, 어느 나라 음악인들과도 만나면서 크로스오버라고도 하고 퓨젼이라고도 하는 그런 음악활동을 많이 하였다.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성공하자 많은 사물놀이 팀이 만들어져서 직업적인 사물놀이 팀으로 활동하게 된다. 국립국악원에서는 김용배를 끌어들여 사물놀이팀을 만들었고, 사설 단체로도 ‘두레패’, ‘진쇠’, ‘두드락’ 등 많은 직업 사물놀이 연주단체가 출범하여 활동하게 된다. 이후 사물놀이는 대부분의 국악단체에 만들어지게 되고 각급 학교에도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팀을 만드는 일이 많아져서 사물놀이가 옛날의 농악을 대신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수백 수천의 사물놀이 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사물놀이를 활용한 새로운 음악이나 작품들도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다. 4. 사물놀이 황제 김덕수 펠레가 축구의 황제라면 김덕수(1952년 생)는 사물놀이의 황제이다. 그가 이끄는 사물놀이는 가는 곳마다 청중을 열광케 하고 음악가와 문화계인사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음악을 가지고 세계무대를 강타한 김덕수는 이미 세계적인 음반회사와 공연기획 회사들이 받들어 모시는 음악가가 되었고 수100차에 달하는 해외활동으로 많은 애호가와 사물놀이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나는 1981년 6월 이들의 유네스코 회관 초청 연주회의 평을 쓰면서 “이 팀이야말로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의 잠재력을 12분 가지고 있는 권투선수와 같다”고 하면서 세계무대에서 각광 받을 날을 예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들은 그 이듬해 6월 일본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10월과 11월에는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청중을 뒤집어지게 하였고 그래서 일거에 세계적인 그룹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댈라스에서 열렸던 “세계타악인협회 ‘82년 대회(PASIC-'82)"에서의 연주는 사물놀이의 개성미와 높은 수준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듣는 이들로 하여금 한국음악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김덕수패 사물놀이는 세계 곳곳의 유명연주회장에서 뿐만 아니라 현해탄의 선상이나 뮌핸의 무기창고, 시부야거리, 뉴욕의 센트럴파크, 예루살렘 통곡의 벽, 심지어는 북한 땅에서도 판을 벌였고 그들을 매료시켜 사물놀이의 소리를 잊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세계를 누비며 사물을 두드리고 사물을 가르친다. 김덕수는 해외에서 사물놀이 캠프를 열 때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나서 “하나아 두울 세엣 네엣”을 외우면서 우리 식으로 숨쉬기를 하도록 가르친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을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라고 하는데 지금 사물노리안은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연간 한국에서 나가는 사물놀이 악기만 해도 200세트이상이고 10000여명의 사물노리안이 한국의 악기를 가지고 사물놀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음반도 ‘83년 미국에서 나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폴리그램,EMI,CBS,BBC등 세계적인 음반회사들이 다투어 CD와 LD를 제작하여 수 십장의 앨범이 나왔다. 정말 한국음악의 세계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화인가를 본때 있게 보여주는 본보기들이다. 사물놀이의 영향력은 가히 핵폭탄에 비교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78년 김덕수 패 사물놀이는 등장하자마자 파문이 일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파문은 파도로 변하여 전국의 청소년들을 사로잡았고 연주장마다 구름 떼 같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여파로 수십 개의 직업 사물놀이패가 생기고 수백 개의 사물놀이 팀이 창단되었다. 웬만한 직장과 학교 등에도 사물놀이가 생겨나고 매년 벌이는 사물놀이 힘겨루기 세계대회에는 200여 개의 팀이 출전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기세라 아니할 수 없다. 사물놀이는 우리의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연물이다. 우리의 창조정신이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이었듯 이들의 창조행위도 철저히 전통을 학습(學習)하고 적공(積供)하여 통달한 다음 새로운 상황에 맞는 현재의 전통음악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전통의 상황이란 자연의 형태와 같이 우리의 생활 속에 열린 상태로 조금은 느슨하게 있던 것이다. 풍물을 치는 사람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장소나 용도도 다양하고 시간도 일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풍물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악기편성으로 일정한 조건하에서 감상하도록 감상용의 공연음악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분명 전통의 풍물놀이와는 다른 창작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짠 김덕수는 작곡가이다. 또 그는 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이고, 팀을 이끌어 가는 리-더이자 지휘자이며, 각종 공연을 기획 연출하는 기획자 연출자이다. 옛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냥 명인(名人)이지만 요즘 식으로 따지면 작곡가이고, 연주가이고, 지휘자이고, 연출자이고, 기획자이며 또한 교육자란 말이다. 김덕수가 이렇게 큰일을 하고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사당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과 폭발하는 힘은 모두 남사당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 김문학은 김덕수가 5살때 남사당에 합류시켜 양도일 등 당대 최고 명인들에게 기예를 배우게 했다. 그래서 그는 7살 되던 해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고 12살에는 동경올림픽 문화행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국악예술학교(1971년 졸)에서 국악전반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철저하게 남사당의 엘리트 과정을 밟은 셈이다. 종합예인집단인 남사당은 척박한 전통사회의 토양에서도 들풀처럼 그들의 예능을 무기로 살아왔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항상 팔리는 예능, 우수한 기술, 대중적이고 현재성이 강한 무엇을 해야했다. 그 동안 김덕수가 황량한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개척의 꿈을 키우고 영토를 넓혀 갈 수 있었던 것도 다 남사당 기질 덕분이다. 그는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조금도 물러 설 줄 모른다. 초창기 멤버 김덕수 김용배 이강수 최종실 중 김용배가 떨어져나가는 큰 충격이 왔을 때에도 잠시만 슬퍼하고 휘청거렸을 뿐 곧장 강민석을 영입하여 전보다 못지않은 앙상블을 이루어 내는 강인함을 보였다. 남사당의 후예 김덕수는 이제 세계 사물놀이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우리의 토속문화를 세련시켜 이 시대의 우리문화를 만들었고, 이 시대의 한국 창작예술계에 좋은 창작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의 창작방법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것을 내 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철저히 익혀서 저절로 새것이 나오도록 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수제천이나 산조를 능가하는 작품을 쓴 작곡가가 없는 국악계에 김덕수는 농악보다 더 밀도 있고 훌륭한 사물놀이를 작곡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다 남사당에서 물려받은 전통문화유산을 올바로 계승한 때문이다. 김덕수는 그러한 기질 때문에 세계적인 외국음악가들과 어울리거나 100명 넘는 큰 오케스트라와 협연 할 때에도 “기죽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그다. 한참 같이 연주를 하다가 보면 저절로 그들이 우리 사물놀이의 굿거리나 덩덕궁이 장단 안으로 싸여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의 세계적인 인기는 대단하다. 그를 스승으로 떠받드는 제자들만 해도 미국 캐나다에 70여명 유-럽에 50여명 일본에 약 5000여명 등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 수는 각 지부와 지역캠프를 통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 국내의 제자도 수백 명에 이르고 이들이 결성한 사물놀이 팀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언제나 겸손하고 남사당의 후예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가 외국 공연장에서 돼지머리를 삶아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도, 그들에게 한국말로 구호를 하게 하는 것도 또 그들에게 한국악기를 사용하게 하는 것도 다 그 나름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숱한 해외공연에서도 우리음악을 헐값에 넘긴 적이 없고 상업적인 제의를 받아드린 적도 없다. 그는 각국의 최고가는 공연장, 최상의 귀가 모이는 곳을 선택했고 일류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고집을 부렸다. 꽉 짜인 스케줄로 해외 연주를 하고 돌아온 김덕수는 말한다. “서양의 재즈음악에 열광하던 사람들도 우리의 풍물가락 앞에서는 경탄을 아끼지 않았어요. 남사당의 진정한 예인으로 남기 위해 가락을 정리 기록할 생각입니다. 이제 겨우 우리가락에 눈을 떠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매년 10만Km이상 연주 여행을 하며 우리가락의 세계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김덕수 그의 말은 겸손하지만 그의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사물놀이 음악의 창시자 김덕수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은 바로 溫古而知新의 작곡방법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다. 남사당에 뿌리를 둔 뚜렷한 예술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국악계의 지도자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그가 필요로 하는 새 음악 현재의 공연물을 연출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 갈 것이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국악가요가 없는 한국의 노래문화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고대국가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노래문화를 다양하게 발달시켰다. 전통음악으로 따지면 각 지방에 특징 있게 발달한 민요와 그 민요를 바탕으로 발달한 무가(巫歌)들, 잡가종류, 가곡, 가사, 시조, 제사에 사용되는 악장(樂章), 시창, 송서, 판소리, 범패 등 엄청난 양의 노래문화가 발달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우리네의 생활관습이 일을 하거나 놀거나 심지어는 혼자 있을 때에도 노래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있기 때문에 발달한 것들이다. 모심을 때에도 노래하면서 모심고 김맬 때에도 노래하면서 김을 맸다. 상여를 메고 나갈 때나 터를 다질 때에도 노래를 부르곤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가곡을 하거나 시조를 부르고 시창이나 송서를 하는 것도 예사였다. 종교적인 의식은 그것이 굿이든 절에서 하는 재(齋)이든 심지어 유교식 제사인 종묘나 문묘 제사에도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의 노래문화는 그렇게 기능이 생활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것이었고 내용도 다양하고 수준 또한 높았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의 노래문화는 어떤가?전통사회 시절에 사용되었던 많은 생활의 노래들은 사라져 버렸다. 김매기소리나 상여소리 같은 토속민요가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잡가나 가곡과 시조 같은 노래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위축되었다. 무가(巫歌) 역시 굿이 사라지니까 없어지고 있다. 판소리나 잡가 종류는 국악전공자들이 하는 종류가 되어 어느 정도 그 전승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노래문화는 옛날과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져 버렸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래와 직장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60대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와 20대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 성악가들이 부르는 노래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다르다. 이런 오늘날의 노래문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래는 서양민요를 가져다가 가사만 한국어로 번역한 것들이 많다. 이런 경우 서양말에 맞도록 작곡된 음악구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해 부르면 곡의 강약과 가사의 강약이 어긋나서 노래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곡은 서양음악언어로 되어있는데 가사는 한국어로 불러야 하니까 서로 맞지 않아 부르기도 어렵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음악시간에 배우는 노래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잘 부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대학원 다닐 때 어느 중․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중학교 1학년들에게 ‘노래는 즐겁다’는 단원을 가르쳤는데 쉽고 재미있는 노래여서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잘 배웠다. 나는 학생들이 완전히 배웠다고 생각하고 그 노래로 실기시험을 보게 했는데 의외로 그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음정 박자는 정확하게 부르지만 가사가 갖는 내용과 억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러 학생이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시험을 보기 때문에 9번째 학생 차례가 되었을 때 유행가를 해 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그 무렵 유행했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유행가를 했는데 눈을 감고 온 몸을 비비 꼬면서 매우 실감나게 유행가를 하는 것이었다. 음악시간에 가르친 ‘노래는 즐겁다’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되게 불렀던 학생이 그냥 듣고 배운 ‘섬마을 선생님’은 기막히게 잘 표현하며 불렀다는 말이다. 내가 가르친 교과서의 서양민요는 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유행가는 왜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서양민요는 음악언어가 우리말과 맞지 않아서 표현이 잘 안된다. 그렇다면 표현이 잘 된 유행가는 우리말과 잘 맞는 음악언어로 되어있다는 얘기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유행가가 처음 발달하게 된 것은 일본사람들에 의해서이다. 한국에 축음기를 팔기 위해서 다양한 한국음악의 음반을 만들고 신상품으로 유행가를 내 놓았는데 일본민요 선율에 트로트리듬을 붙인 유행가는 금방 인기를 얻으며 보급되었다. 일본민요의 음악언어는 우리의 민요언어와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본어와 우리말의 어순(語順)이 같기 때문에 강약의 흐름이 서로 같고 가사를 발음할 때 시김새하는 것도 서로 같다.그래서 일본민요선법에 트로트리듬을 붙인 우리 가요는 왜색가요나 트로트가요라 불리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쉽게 수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지금 젊은이들은 미국 팝송스타일의 가요를 주로 부르고 있다. 음악언어로 보면 팝송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말 가사로 노래하면 가사의 액센트가 어긋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를 노래한다면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와 같은 식이 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노래의 가사처리가 얼마나 우습게 되어있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 유행했던 통키타 가수들의 노래는 포크가요라고 하는데 그 포크의 뜻이 우리민요가 아니고 서양민요라는 뜻이다. 학교에서 서양민요를 배웠고 교회에서 서양민요 식의 찬송가를 부르며 음악언어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중가요는 일본민요 언어로 된 트로트가요, 미국 팝송 식으로 된 신세대의 가요, 서양민요 식으로 된 포크가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악가요가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국악가요라는 말이나 국악동요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긴 한다. 그러나 그런 노래들을 따져보면 음악언어는 우리민요나 판소리와 같은 우리 음악언어가 아닌데 국악악기로 반주한다거나 국악인들이 음악행위를 주도한다고 하여 그런 용어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악가요나 국악동요가 되자면 악기에 상관없이 음악언어가 국악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음악의 성격을 나타내는 척도는 바로 음악언어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문화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나 진정한 국악가요가 거의 없다고 하는 내 주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가곡이라고 하는 많은 노래들도 대부분 서양음악언어로 작곡했기 때문에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음악언어로 볼 때 한국 전통음악과 같은 계통이 아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래문화 중 우리음악언어로 작곡된 노래는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음악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언어인데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음악언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전통음악과 같은 우리 음악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 국악가요가 없는 음악문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세계의 음악이 된 판소리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면서 세계의 음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이 판소리를 잘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지식도 꽤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판소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지 그 이상을 잘 모르고 있다. 이번 강의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최소한의 판소리 상식을 갖게 하고 판소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 판소리의 토양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판소리의 자생력이란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의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의 생성발달은 철저히 자연 발생적이고 우리의 생활이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누구의 특별한 아이디어나 국가적인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요자인 일반 대중과 공급자인 음악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판을 짜서 한판 노는 농악을 ‘판굿’이라 하고 그런 식으로 추는 춤을 ‘판춤’이라 하고 그런 식의 염불을 ‘판염불’이라 하니까 ‘판소리’도 한 판으로 짜서 판놀음에서 부르던 소리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도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도 그렇고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도 그렇다.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긴 이야기를 노래로 연출하며 듣는 이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 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로 보일 정도이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하긴 판소리는 전라도 무속 출신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무속 출신 아닌 사람이 판소리를 할 경우 ‘비가비(非甲)’라 하여 실력을 낮추어 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권삼득처럼 ‘비가비’이면서도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되면 ‘양반광대’라고 하여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비’란 동류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 동류란 무속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판놀음 기원설’도 있고 ‘무가 기원설’도 있는데 또 다른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그런 이야기꾼들의 구연 솜씨는 대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바로 판소리로 연결 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판소리는 그렇게 이야기라는 문학적 요소와 노래라는 음악적 요소와 연출이라는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져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는 국악은 곧 판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82년도에 전남대학교에 국악과를 만들고 초대 국악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라도 시골에 민요채집을 가서 “저는 국악하는 사람 최종민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러먼 판소리 잘 허시것네요”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국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판소리 판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주 대사습이나 남원 춘향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데 그들 대부분이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라고 보아도 된다. 전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판소리를 들으며 뿜어내는 열기는 자연 “얼씨구” “조오타”와 같은 추임새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추임새 하는 수준이 서울의 국악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향제 때에 남원 광한루원에 모이는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청가의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이 나오면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그래서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판소리 명창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전라도 출신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간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판소리의 큰 흐름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릿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시조나 가곡 같은 노래들은 청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개인의 수양이나 교양을 위하여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수양과 관련되는 철학과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며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그런 음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런 노래와 달리 판소리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수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상품의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발달한 판소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는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 영조30년 1754)에 “가사 춘향가 2백귀”라는 것이 있고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때의 문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에 판소리나 줄타기 땅재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8세기 무렵이나 19세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판소리가 불리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국가가 장려하는 음악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패트론(후원자)이 있었을 턱도 없고 순전히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소리를 팔면서 살아야 하는 광대들이 어떤 소리를 어떻게 하면서 판소리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런 과정을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는 음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교적인 덕목으로 낙이불음(樂而不淫)한 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도 뒤집어 보면 정말 즐거운 것은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수양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하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변강쇠타령․강릉매화전․왈자타령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야한 얘기나 횡재하는 얘기, 신선의 얘기 등 그 당시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들려줌으로서 한 바탕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 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판소리가 차츰 인기를 얻고 독립된 공연물로 확산되니까 판소리를 좋아하는 수용층도 다양해지고 판소리 광대들도 세련되어져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젊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를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횡재하는 얘기에다가 형제의 우애를 내용으로 하는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된다. 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으젓하고 젊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판소리의 이야기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편되면서 음악의 내용도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언어를 받아드렸고 이 모든 것이 청중․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신재효의 광대론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도리화가 등 30여편에 달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읍성 앞에 신재효가 살던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 있고 그 바로 앞에 신재효의 호를 딴 동리국악당(桐里國樂堂)이 있다. 동리 신재효는 그 만큼 뚜렷한 판소리에 업적을 쌓았던 인물이어서 “한국의 쉐익스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 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이 춘향가를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으로 구분하여 사설을 정리한 것이고 남자만 부르던 판소리를 여자도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가 진채선이란 여자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서 경복궁 낙성연에서 ‘방아타령’등을 부르게 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그 진채선 이후에 허금파 강소향등의 여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신재효이기 때문에 판소리와 관련된 많은 얘깃꺼리가 전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광대가는 “고금에 호걸문장 절창으로 지어내어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하면서 도연명이나 백낙천 같은 이들의 대단한 작품들도 다 허황사설(虛荒辭說)이라면서 차마 못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려천지(蘧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광대란 말은 본래 가면극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던 말이다. 양반광대 또는 각시광대 같은 경우는 가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고성오광대 가산 오광대하면 가면놀이나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 판소리하는 명창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이 경우도 판소리 명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대란 말도 앞에 다른 말을 얹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진짜광대”․“또랑광대”․“화초광대”․“아니리 광대” 같은 말이 있기 때문인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는 소위 말하는 진짜광대이다. 그러나 크게 이름이 나지 않고 어떤 조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량이 우수하지 못한 광대는 또랑광대라고 비하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물이나 팔아 먹고사는 광대는 화초광대라고 한다. 또 소리 중심으로 수준 높게 판소리를 하지 않고 재담이나 늘어놓으며 이야기만 계속하는 광대는 아니리 광대라고 한다. 이런 광대들은 바람직한 광대가 아니다. 그래서 신재효는 광대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지만 광대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사설은 이런 것이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그냥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시대의 광대들은 즉석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짜서 부르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창조의 역량중에서 가사를 짜는 문학적 역량을 사설치례라는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이라는 것인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득음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한다는 것은 음악의 언어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고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제’는 그러한 음악내용을 실제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기교와 발성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는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 나야 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 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의 광대론이다. 4. 음악가들의 ‘득음(得音)’ 이야기 ‘득음’이란 말은 판소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음을 얻는다” 또는 “소리를 얻는다”가 되어서 마치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득음이란 우선은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음악에 필요한 소리를 충분하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득음은 발성문제만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득음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득음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악언어의 구조를 훤히 알아서 가장 합리적인 표현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오장에서 나는 소리”란 입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고 “농낙하여 자아낼 제”란 자유자재로 멋지게 꾸며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니까 득음이란 그냥 소리만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속’을 훤히 알고 합리적으로, 멋지게, 온몸으로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득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득음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실제 음악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득음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만큼 득음은 음악가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음악가들은 그 득음을 위해서 각기 독특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흔히 <독공>이라고 하여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장기간의 연습도 있고 ‘100일 공부’처럼 집중적으로 온통 연습에만 매달리는 방법도 있다. 장우벽(1735~1809)은 영조 때 활약한 가곡의 대가인데 매일 인왕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장안을 굽어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고 김계선(1891~1943)같은 대금의 명인은 매일 새벽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 대금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연습할 때에는 같은 음악을 반복하여 연습하는데 대개는 신발을 벗어 놓고 조금만 조약돌을 모아다가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또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하면서 연습하여 조약돌이 신 하나가득 수북하게 쌓이면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그 만큼 계속 같은 음악을 반복 연습하는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능통하게 되고 또 ‘음악 속’도 훤하게 알게 되어 무슨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힘과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배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달리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들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하여 득음 하였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동진 명창만 하드라도 100일 공부한 얘기가 유명하다. 박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운 다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소리선생도 하고 조그만 자리의 소리도 하면서 조금은 방탕하게 한동안 지냈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활을 크게 반성하고 고향에 돌아가 100일 공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부친에게 그러한 결심을 얘기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부탁해놓고는 혼자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소리만 하는 맹훈련이었다. 그런데 판소리 명창들의 훈련방법은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누적되어 병이 나게 마련이다. 박 명창도 그렇게 맹훈련을 하는 중에 몸이 붓고, 이가 솟고, 목이 잠기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비란 것이 말이 쉽지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소리하다가 산에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앓아 눕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오직 득음에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며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 썼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몸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박동진도 마지막에는 소리는커녕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마침 박동진의 부친이 혹시나 하고 찾아오셨더라 는 것이다. 박동진은 평소에 그럴 때에는 인분 거른 물을 마시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부친에게 인분 거른 물을 가져다 달라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셨는데 정말이지 금방 몸의 부기가 빠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백일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박동진 명창은 이 백일공부를 통하여 득음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그 전과는 훨씬 다른 생활태도와 오직 판소리에만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대 명창이 된 것이다. 함동정월이라는 가야금의 명인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다. 함 여사가 김명환씨와 함께 살 때에는 식전에 한 바탕 오전에 두 세 바탕 식으로 거의 종일을 가야금 산조를 몇 바탕씩 타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활이 온통 연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함 명인은 보통 사람보다 왼팔이 더 굵고 강하게 발달했고 그녀가 타는 가야금은 줄을 보통 가야금 보다 훨씬 되게 죄어 줄을 고르기 때문에 다른 가야금 연주자들은 그 가야금을 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만큼 늘 같은 곡을 반복하여 타면서도 계속 그 음악의 삼매경에 들어가 음악의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늘 새로운 음악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가들의 경우 연습을 한다는 것이 무슨 장단을 지키고 곡조를 익힌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산조라는 음악 속에 들어가 장단과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죄이고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풀고 또 죄이고 풀고 하면서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음악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공력을 쌓아 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생활이고 도(道)이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득음을 하고 음악가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상에 접근해 갔던 것이다. 득음에 대한 일화는 판소리 명창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자기 귀에도 안 들리던 소리가 나중에는 그 폭포 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들렸다는 얘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이 음악가들의 득음과 관련한 얘기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국악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소개하였다. 5. “이면”이라는 용어의 의미 국악에서는 “이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면에 맞는다”든지 “이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한자(漢字)는 理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대개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데 엎드리어 땅을 치면서 통곡하여야 할 대목인데 그 소리를 그냥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향가를 창극으로 하는데 춘향을 남자로 하고 이도령을 여자로 했다면 그런 것도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하면 좀 복잡해진다. 판소리에서 좋은 소리인지 좋지 않은 소리인지를 따질 때에도 이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는 그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이 일종의 미학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천리만리”라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천리”는 좀 짧게 부르고 “만리”는 더 길게 “마아아아알리”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놀보가 흥보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막 내쫓는 것이니까 ‘우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고 흥보가 쫓겨 나갈 때에는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대목이니까 ‘계면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는다. 말하자면 슬픈 대목에서는 슬픈 소리로 부르고 기쁜 대목에서는 기쁜 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극적인 흐름이 ‘어사 출도’ 대목처럼 바쁘게 도망가고 법석을 떨 때에는 그런 극적 상황에 합당하게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고 한가하게 광한루에 올라 사방 경치를 살펴보는 ‘적성의 아침 날’ 같은 대목에서는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런 상황을 거꾸로 생각하여 ‘어사 출도’ 대목을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고 ‘적성의 아침 날’을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장단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도 이면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가사의 내용이나 극적인 상황에 맞게 소리를 짜고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면에 맞는 소리”란 말은 작곡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하고 연주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면이란 말의 한자는 理面보다는 裏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이면”을 깨닫게 되었다. 이면의 한자는 理面․裏面․二面을 두루 써도 될 만큼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명창들이 “이면에 맞다”라는 말도 쓰고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도 쓰고 또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쓰는데 이 세 가지의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면>이란 용어는 한문(漢文)을 많이 쓰는 전통사회 시절부터 써 온 용어이다. 분명 한자로 된 성어(成語)인데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 한자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또 어느 것이 옳은지 한자로 표기하는 예도 거의 없었다. 그냥 “이면”이란 말을 써 오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용어가 한문성어(漢文成語)인 것이 분명한 이상 한문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해 보니까 “이면”이란 말의 한문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한문이 다 해당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동안 판소리계에서 “이면”이란 말의 한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보기에 “이면”이란 말에 세 가지 한문의 뜻이 다 있다는 것일까?. 먼저 “이면”을 二面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사전 조건이라는 한 면과 그것을 나타낸 현상으로서의 한 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사(사설)라는 사전 조건을 음악으로 작곡했을 때의 현상이 서로 잘 맞으면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또 그 작품을 합당하게 창(唱)으로 표현했을 때에도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작곡이 잘 되었다든지 창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된 것”이니까 “理面에 맞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작곡이 잘 된 ‘소리 대목’을 잘 표현한 연주가 이루어졌을 때 “이면을 잘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경우의 “이면”은 한문의 裏面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맞으면 “二面이 잘 조화된 것”이고 “裏面을 잘 그린 것”이고 또 “理面에 맞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음악이란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했을 때 그 <표현된 내용>은 결국 <사전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전 조건이란 판소리의 경우 가사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 가사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춘향가의 ‘신연맞이’대목을 동초 김연수명창은 세마치라고 하는 빠른 진양조장단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같은 사설이지만 작곡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조건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해석의 문제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사전 조건>에 포함시키면 된다. 그 동안 판소리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평가 점수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면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민속악에서 “이면의 뜻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이면”이 한문성어로 ‘二面’․‘裏面’․‘理面’의 뜻을 함께 가진 포괄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조화되었을 때 “이면에 맞는 소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20세기에 출현한 새로운 공연물 <창극> 한국의 20세기는 외래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 한 세기였다. 1900년대의 시작은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중국문화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한편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서양문화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는 한 세기였다. 이런 문화의 변혁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공연물이 앞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우리의 ‘창극’이다. 창극은 ‘창(唱)’과 ‘극(劇)’이 합쳐진 공연물이다. ‘음악극’이라 말해도 좋고 ‘창악인들이 개발한 연극성이 강한 공연물’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창극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훌륭한 음악과 극을 결합시킨 공연물이 있었다. 판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는 가장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내는 수준 높은 공연물인데 한 사람의 명창(가객)과 한 사람의 고수가 공연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몇 백 년 동안 이러한 판소리를 다양하고 수준 높게 발달시켜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등이 다 그러한 판소리 작품들 아닌가?. 그런데 20세기를 맞으면서 우리네 판소리와 다른 외국 공연물이 서울에서 공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2가쯤에 해당하는 수표교 다리 건너편의 청국관에서는 중국의 전통 연극이 자주 공연되었고 1902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원각사라고 부르게 되는 서양식의 극장이나 광무대․연흥사․단성사․장안사 같은 서양식 극장에서도 일본의 신파극이나 가부키나 신연극 등이 자주 공연되었다. 이처럼 극장이 많아지고 그런 곳에서 새로운 공연물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계에 던져주는 변화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창극의 시작 1902년에 지어진 협률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 처음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식 축하 공연을 그곳에서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궁중 소속으로 있는 관기(官妓)나 예능이 뛰어난 예기(藝妓)들을 모으고 경․서도 명창이나 판소리 명창들을 모아서 다양하고 큰 공연 준비를 한다. 첫 번째의 공연은 전염병이 돌게 되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왕실이 지은 신식 극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돈을 받으며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공연물들은 기생들의 노래나 춤과 경기명창들의 재담과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배역을 나누어 하는 창극 등이 주 공연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협률사는 1906년에 문을 닫게 되고 1908년에 협률사를 내부 수리하여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하게 되는데 이 때의 운영진은 친일세력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직을 비롯한 친일 연극인들이 원각사를 무대로 신연극 등을 공연하였는데 그래도 그 곳에는 김창환 등의 명창 40명과 기생 24명이 이동백을 단장으로 하여 전속 단체를 구성하고 판소리․민속무용․창극 등을 공연하였다. 그리고 1909년 말 원각사의 전속 단체마저 폐지되자 협율사 명창들은 김창환․강용환․유공열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와 송만갑․이동백․김창룡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어 전국 순회 공연에 들어간다. 이 협률사의 공연이 전국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창극 보급에 크게 공헌하지만 1910년 한․일 합방이 발표되자 모두 공연을 중단하고 흩어지게 된다. ‘창극’이라는 이름의 유래 창극이라는 명칭도 1910년대에는 신연극(新演劇)이나 신파극에 대한 구연극(舊演劇) 또는 구파극(舊派劇)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가 되면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되고 판소리와 창극을 개발한 것이 새로운 공연물로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판소리나 창극 모두를 창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노식은 판소리의 역사를 쓰면서 「조선창극사」라고 했고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창극좌’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만들어 창극 활동을 하였다. 그러니까 창극이라는 용어는 한동안 판소리와 창극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창극이 인기를 얻고 많은 창극단이 생긴 다음 해방을 맞으면서 서양적인 것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니까 창극이라는 말 대신 국극(國劇)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여성국극단’이 생겨나게 되고 또한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연유로 현재의 국립창극단이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처음 발족할 때에는 국립국극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이라는 명칭은 197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초창기의 음악극은 판소리를 하는 남도명창들에 의하여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국관에 가서 중국의 경극 등을 자주 구경한 강용환은 원각사라는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고 판소리인들이 함께 공연할 공연물을 모색할 때에 <춘향전>을 입체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 연극에 가까운 공연물을 만든 것이다. 지금의 창극과는 훨씬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이라는 판소리를 그냥 그대로 배역만 나누어 여러 사람이 창을 하는 음악극인 것이다. 그래서 그후에 등장하는 ‘창극’이란 말이나 ‘국극’이란 말이 다 판소리인들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창극’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다른 우리 나라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경․서도 명창들이 창작 창극으로 공연한 <남촌별곡(南村別曲)>도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고 경기명창들이 만들어 공연한 <장대장타령>도 역시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창극’이라는 용어가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음악극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창극의 시발점 ‘협률사’ ‘협률사’라는 용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이화중선도 남원에 협률사가 들어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집을 뛰쳐나와 판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고 많은 명창들이 협률사의 순회공연에 대단한 감동을 받고 명창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협률사라는 명칭도 처음에는 1902년에 국고에 해당하는 왕실의 내탕금(內帑金)으로 지은 극장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송만갑의 협률사처럼 창극의 공연 단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황은 ‘협률사’라는 용어가 중국인들이 쓰는 ‘협률창희(協律唱戱)’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백현미도 협률사라는 용어의 한자가 ‘協律社’나 ‘協律司’로 쓰이고 있어서 그 뜻이 극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무슨 회사와 같은 단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조직의 한 부서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한 바 있다. 어쨌든 협률사라는 용어는 우리네의 창극이 처음 출발하는 출발점과 함께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이고 그 뜻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가능하면 협률사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창극이라는 명칭도 제대로 알고 사용하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를 위하여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창극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창극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 미래의 창극은 어떻게 가꾸어 가야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새 시대에 맞는 창극다운 창극 만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제주 한림출신 양지은씨, 목포 유달 전국국악대전 대상
    제주시 한림읍 출신 ‘미래 명창’인 양지은씨(22세)가 지난 26일 열린 제5회 목포 유달 전국 국악대전 일반부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양씨는 이번 목포 유달 전국 국악대전에서 「심청가」를 열창, 심사위원 전원의 만점을 받는 등 ‘신이 내린 목소리’란 극찬 속에 대상을 거머쥐었다. 양 씨는 그동안 국악 입문 이래 제10회 목사고을 나주 전국국악 경연대회 대상, 제2회 목포판소리 학생전국대회 대학부 최우수상, 제12회 서울 전국 국악경연 우수상, 제4회 전국 국악대제전 장려상 등을 받았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31
  • 아쟁산조를 창시하고 안중근전을 작곡한 고법의 인간문화재 정철호
    지금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가야금이나 판소리 어느 하나만 전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부하는 방식도 서양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이 음악 저 음악을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공부하곤 한다. 성악이나 기악이나 자기 분야를 작품별로 하나하나 공부하여 음악적으로 성숙해 가도록 제도가 되어있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 음악교육 제도와 다른 것이다. 옛날 음악가문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먼저 소리를 가르쳐 보고 그 다음 기악을 가르쳐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르치는 내용도 매일 비슷하면서 다른 내용을 이것저것 가르치며 ‘음악 속’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작품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작품을 고정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늘 자기 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도록 음악언어와 작품 짜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교육 받은 사람들은 스승에게 배운 작품을 똑 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성을 살려 스승의 작품과 다른 자기 것을 만들어 낼 줄 알게 된다. 이런 교육 탓에 과거의 음악가(국악인)들은 창조역량이 있었고 늘 현장에 맞는 신선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음악에 대한 관념이 바뀌고 여류 국악인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음악교육 보다 신식 교육방법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창조적으로 현장에 맞는 음악을 척척 연주하는 국악인이 아주 드물게 되었다. 정철호(1927년생)는 판소리 고법의 인간문화재다.타이틀로만 보면 그는 고수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작곡의 명수고 아쟁산조의 창시자다. 그는 해남의 음악가문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임방울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거문고도 배우고 고법도 배웠다. 음악가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예능을 두루 배운 것이다. 공부를 다 마치고 돈 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방울 단체에 있으면서 일하는 틈틈이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우고 역시 돈 버는 활동을 하면서 거문고도 배우고 고법도 배웠다. 조선창극단에 있을 때에는 오태석, 박록주, 조상선 같은 대가들과 함께 단체생활을 했는데 창극 작곡을 주로 하던 조상선이 정철호에게 작곡을 가르치기도 하고 작곡한 악상을 암기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철호도 작곡을 하게 되었고 조상선이 월북한 한국동란 이후는 창극이나 여성국극의 작창을 정철호가 도맡아 할 정도로 창작활동을 많이 했다. 지금 정철호는 고법의 인간문화재인데 그것은 과거 고법을 배우고 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얻은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를 배우고 창극 활동을 많이 했으니 저절로 얻어진 기능이기도 하다. 작창이나 작곡을 할 수 있는 것도 조상선이 작곡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소리와 기악을 배우면서 국악의 ‘음악 속’을 터득하여 음악언어를 다양하게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아쟁이라는 악기의 소리를 듣고 그것으로 산조를 짜서(작곡) 연주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철호는 전통방식으로 음악을 배웠고 음악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낼 수 있었다. 그가 특히 업적을 쌓은 분야는 시대정서를 반영한 의식 있는 노래를 많이 작곡한 것이다. 열사가 라는 작품에는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이준열사, 유관순열사, 녹두장군 전봉준 등을 내용으로 다루었는데 길지 않지만 열사들의 행적을 담는데 부족함이 없는 좋은 작품이다. ‘성자 이차돈’은 창극으로 작곡하여 성창순, 조상현, 조순애 등이 입체창으로 녹음했는데 감동적인 음반이 만들어졌다. 김대중의 ‘옥중단시’도 음반으로 제작하여 내었고 광주 민주항쟁을 다룬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는 광주 시민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작품이었다. ‘94년에는 내가 대본을 쓴 ‘안중근’에 곡을 붙여 안숙선이 노래한 신작판소리 음반을 내기도 했다. 신민요 ‘인생은 고해라’, ‘봄 타령’ 등도 작곡하여 유행하게 하였다. 정철호는 평생 음악만 하고 살아왔다. 지금 한국나이 80이지만 늘 새 작품을 하고 싶어 하고 그런 꿈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고 있다. 고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큰 무대에 나가 고수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작곡하는 일 같은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그 작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실현하며 바쁘게 산다. 정선생님을 만나보면 그의 모습이나 생각은 항상 소년 같고 꿈을 가진 희망 찬 사람 같다. 노인의 나이지만 노인이라는 느낌을 거의 가질 수 없다. 전통음악 밖에 배우지 않은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창조적인 생활을 한다. 정철호가 보여주는 이런 삶의 태도가 바로 전통음악교육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며 사는 삶이고 늘 현재의 상황에 맞는 음악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철호는 다양한 국악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풍부하게 살아가고 있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1위 국악 신동 '유태평양', "춘향가 부르다 아버지 생각에."
    --> 유태평양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 수군에서 나오는 대목' 동영상보기 유태평양 씨(19·전북대 한국음악과 2년)는 혼자였다.6월 24일 제28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입상자를 발표하는 자리.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콩쿠르였기에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터였다. 그 시간 어머니와 큰아버지 내외, 작은아버지와 사촌누나는 서울 중구 필동 서울남산국악당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금상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상이에요.’ 27일 서울 종로의 카페에서 만난 유 씨는 “꿈만 같다”면서 해맑게 웃다가도 지난해 12월 31일 지병으로 작고한 아버지 유준열 씨를 떠올릴 때마다 목이 잠겼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는 사물놀이와 판소리에 반응하는 어린 아들을 소리의 길로 이끌었다. 여섯 살 때 3시간 동안 판소리 ‘흥부가’를 완창해 ‘국악 신동’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이제 본격적인 소리꾼의 길로 가는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고 했다.“생전에 아버지는 ‘태평양, 너는 꼭 동아국악콩쿠르에서 1등 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스승인 조통달 선생님께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드렸더니 사모님께서 우시더라고요. ‘너희 아빠가 참 좋아하시겠다’ 그러시면서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인은 경연 내내 그의 곁에 있었다. 콩쿠르의 지정곡이었던 ‘춘향가’ 중 사위 잘되라고 비는 대목은 고인이 특히 좋아했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해서 목이 가더라”라는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고인은 아들이 판소리에만 갇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태평양 씨가 어렸을 때 방문한 인도에서 전통 타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고인의 권유로 태평양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프리카 타악을 배우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머니와 남동생도 함께였다.“당뇨를 앓고 있던 아버지가 4년간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더 악화됐던 것 같아요. 합병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남아공의 가족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대요. 뒤늦게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당장 짐 싸서 귀국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면서 ‘그러라고 남아공 보낸 것 아니다. 회복되면 내가 가겠다’고 하셨어요. 강인한 분이셨죠.”고인은 2000년 태평양 씨를 길러낸 경험을 담은 ‘소리하는 아이 장단치는 아빠’라는 교육서를 펴내기도 했다. 태평양 씨의 동생인 휘찬 군(16·전통예술고 2년)도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30
  • 5집 'I-Tori' 낸 피아니스트 이노경씨-서양악기 리듬에 국악선율 더해..
    --> I-Tori 유튜브에서 들어보기 피아니스트 이노경(38)씨의 행보는 현재 우리 음악에 주어진 하나의 가능성을 인상적으로 대변한다. 지난해 4집 'Match Maker' 발매 기념으로 펼쳤던 재즈 클럽 공연에서는 드럼이 아니라 장구를 동원, 새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번 5집 'I-Tori'는 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언을 하는 수준에 달한다. '토리'란 지방에 따라 각각 특색 있는 유파를 뜻한다. 그 앞에 나(I)라는 말을 달았다. 나만의 유파라는, 강한 자기 선언이다. 1999년 보스턴의 버클리(Berklee)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과 재학중 전환점이 찾아 왔다. "MIT 공대생들의 사물놀이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2001년 귀국했어요." 멈출 수 없는 길이었다.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있던 그는 2007년 울산재즈페스티벌에 가서 아르헨티나의 탱고 밴드 공연을 보고 월드뮤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레 국악의 길에 들어선 그는 자신의 음악이 세계를 지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의 발전적 행보는 전략적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또박또박 장르화할 수 있다. "4집이 국악적 장단에 재즈적 화성으로 이뤄졌다면, 5집은 서양 악기의 리듬에 국악적 선율을 합친 거죠." '애수의 소야곡' 등 트롯의 명곡을 재즈화한 2008년의 3집 'Cat Trot' 이후 구체화된 길이다. 5집은 장구, 피리, 태평소, 판소리 창에다 랩까지 가미된다. 그는 "조선 중기 학자 신광한이 쓴 한문 소설집 '기재기' 중 '최생우진기'를 랩으로 표현한 'Utopia'가 가장 중요한 곡"이라고 했다. 모 심을 때 부른 노동요 중 하나인 메나리 토리조의 '상주함창'을 자기화한 'M - Tori' 8곡 역시 독특한 자기 선언서다. 부산대 심리학과(92학번), 버클리 졸업(피아노 석사), 퀸즈칼리지에서 국악 재발견, 중앙대 국악과 석사. 일견 복잡한 그의 공부길이다. 지금은 대학 10곳의 강사, 경북대 등 2곳의 겸임 교수다. "단선율 위주의 연주에 볼륨감을, 퓨전의 완급을 보완하자는 거죠." 그가 국악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고 믿는 부분이다. 일견 위험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길이다. 피아니스트로 2010년 세종국악관현악단과 했던 작업이 그랬다. "1집 'Flower You'에 발표했던 재즈곡을 국악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연주한 자리였죠. 순환호흡법을 이용한 피리와 태평소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이번 5집이 그래서 나왔다. -->한국일보 해당기사 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관련뉴스
    2012-08-30
  • 국악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폐막…판소리 명창부 장원 (대통령상)에 강경아씨
    대한민국 국악예술인의 최고 등용문이며 국악계 권위와 정통성을 자랑하는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와 '제3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학생대회'가 판소리 명창 장원을 강경아씨가 차지하며 6월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히 성인대회와 학생대회를 통합 개최해 더욱 풍성한 경연을 보여줬으며, 밤샘콘서트 및 거리공연 등 시민들과 국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축제가 됐다.11일 전주시에 따르면 '2012 전주대사습놀이'는 전주시가 개최하고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와 전주MBC 주관으로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에 걸쳐 전주 경기전 일대를 비롯한 한옥마을에서 펼쳐졌다.다음은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본선 심사결과다. ◇ 판소리 명창 부문 ▲장원 강경아(서울 관악구 행운동) ▲차상 조희정(전북 완주군 구이면) ▲차하 현미(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 ▲참방 김태희(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장려 윤종호(전남 나주시 남평읍) ◇ 농악 부문 ▲농악 중방농악보존회(경북 경산시 중방동) ▲차상 파주농악보존회(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차하 경기 전통 화성 두레보존회(경기도 화성시 신회동) ▲참방 대구 영남 풍물 연구소(대구광역시 수성구) ▲장려 부산 구포 1동 타작소리 농악단(부산시 북구) ◇ 기악 부문 ▲장원 박종현(충북 단양군 단양읍) ▲차상 이종헌(전주시 완산구 효자3가) ▲차하 한창희(서울 서초구 서초4동) ▲참방 김은진(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 ▲장려 김영산(경북 성주시 가천면) ◇ 무용 부문 ▲장원 전수석(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차상 김기승(서울시 은평구 불광2동) ▲차하 고재현(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참방 조명호(광주 광역시 북구 중흥동) ▲장려 차준명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 가야금병창 부문 ▲장원 배한나(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차상 김영아(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차하 박은비(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참방 오나연(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장려 신아름(부산시 사상구 주례3동) ◇ 민요 부문 ▲장원 이기옥(서울시 강북구 인수동) ▲차상 김영순(서울시 노원구 월계3동) ▲차하 원은영(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2동) ▲참방 김단아(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 장려 : 함영선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 뉴시스 해당기사 더 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30
  • 국악 전주대사습 신설 '창작국악경연' 첫 우승 '소릿결'
    '제37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신설한 '2012 창작국악경연'의 첫 우승은 '소릿결'(대표 김희성)에게 돌아갔다. 총 26팀이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10팀 중 '소릿결'의 '로또 당첨을 위한 주문'(돈타령)은 심사위원단(위원장 최상화 중앙대 교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민요·판소리·정가 전공자 등이 만나 새로운 소리 결을 만든다는 뜻에서 2008년 창단된 '소릿결'은 국악 아카펠라 그룹. 지난 몇 년 간 멤버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부침은 겪었지만, 88년생 이건형 씨부터 69년생 민경아 씨까지 아우른 현 대오는 지난해 마련됐다. 본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온 '소리결'은 이번 경연이 제시한 참가자격 따라 가야금·대금·피리·장구 등을 급조해 나왔다. 김희성 대표는 "'흥보가'의 '돈타령'에서 착안했다"면서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돈 아니냐. '로또 한 방'을 통한 인생 역전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심정을 풍자했다"고 했다. 막내 이건형 씨는 "이 곡으로 2008년부터 수많은 무대를 서봤지만, 이렇게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무대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관객들 표정을 보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웃게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1등한 '소릿결'은 상금 700만원과 상패, 2등을 차지한 '그리音'은 상금 300만원과 상패, 3등을 하게 된 '불세출'은 상금 100만원과 상패를 받았다. 상금 100만원과 상패를 받는 관객상은 'Sori愛'에 돌아갔다.하지만 심사위원단은 이번 '창작국악경연'을 두고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했다. 순수 국악기(개량악기 포함)를 사용한 창작 연주곡을 대상으로 한 이번 경연은 반주가 있는 노래곡도 포함되면서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등과 같은 기존 대회와 차별성이 없어져 경연의 성격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북일보 해당기사 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30
  • 전남대 전인삼 교수 4월27일 '82회 춘향제'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
    "'동편제 춘향가' 복원 위해 4년을 매달렸어요" "동편제 판소리 5바탕중 '흥부가'와 '수궁가', '적벽가'는 전승이 활발한 반면에 '춘향가'와 '심청가'는 안타깝게 전승이 단절돼 왔는데 복원에 매달린 지 4년만에 동편제 춘향가를 발표를 하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춘향제전위원회 주최와 전남대 소리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열리는 '제82회 춘향제'(4.27~5.1)에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회를 갖는 전인삼 교수(판소리ㆍ전남대 국악과)는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틈틈이 복원에 매달렸다"는 전 교수는 "동편제 춘향가는 시조인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봉술 명창으로 이어졌다"면서 "1971년 박봉술 명창(1922∼1989)이 녹음만 남겨놓았지만 제자양성이 전혀 안되는 바람에 전승이 끊어졌다"고 말했다.특히 전 교수는 "남원지역에 전승되는 '열녀춘향수절가'와 박봉술 명창의 춘향가는 거의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는 데 완벽하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소신있게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광남일보 해당기사 더 보기
    • 국악정보
    • 국악관련뉴스
    2012-08-30

공연소식 검색결과

  • 광주시립창극단, 11월 1일~2일 러시아 소치 제1회 ‘아시아 국제 페스티벌’ 참가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광주시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애, 이하 창극단)이 오는 11월 1일부터 2일까지 이틀 동안 러시아 소치 시리우스 영재센터가 주관하는 ‘아시아 국제 페스티벌’ 공연에 초청되어 창극 ‘흥보가’를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 대표로 창극단이 초청되어 진행되는 공연으로 창극 ‘흥보가’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아시아 국제 페스티벌’은 매년 아시아 국가 공연단이 참여하여 아시아의 멋과 흥을 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올해 첫 선을 보인다. 페스티벌이 열릴 장소인 러시아 소치 시리우스 영재센터(Sirius park of science and art)는 지난 소치올림픽 당시 경기장으로 사용된 공간을 과학·수학 영재 육성을 위한 센터로 개조한 곳으로 본 행사는 센터 내 1,200석 규모의 공연장(Big hall)에서 열릴 예정이다. 페스티벌에 선보일 작품은 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작품인 창극 ‘흥보가’이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로 형제간의 우애를 다뤄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작품으로 알려진 ‘흥보가’는 지난 4월 창극단이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 새롭게 각색한 창극 ‘흥보가’를 광주시민들에게 선보인바 있다. 당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은 작품으로 평가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과 박수를 받았다. 이번 공연은 페스티벌을 위해 새롭게 각색된 버전으로 진행된다. 원작에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해학적 대사들이 많았다면 각색된 버전에서는 대사보다는 전통 춤 등 시각적 요소에 힘을 실었다. ‘달타령’ 등 우리 민요를 러시아 노래로 바꾸는 등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는 조정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는데 치중했다. 이번 행사는 창극단이 한국 최초로 러시아 소치에 초청된 전통문화예술단체라 의미가 남다르다. 러시아 소치는 2014년 동계올림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곳이지만 왕래가 잦은 도시는 아니었기에 이번 창극단 초청공연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전통문화는 물론 광주광역시와 소치라는 도시를 서로 알릴 교류의 장이 될 것이다. 창극단은 이번 러시아 소치 ‘아시아 국제 페스티벌’과 함께 11월 5일(화)에는 모스크바 민족회관에서 ‘광주시립창극단과 함께하는, 어울마당’ 공연을 진행한다. 이 공연은 러시아에서 거주 중인 한인들과 현지인에게 우수한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을 알릴 뜻깊은 무대를 마련하였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공연소식
    • 해외
    2019-10-28
  • 10월 26일 서울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이난초 춘향가 - 김세종제 장소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 지도보기 날짜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시간 오후 3시 티켓료 20,000원 출연진 ▶ 이난초 프로필 ▶ 김청만 프로필 ▶ 이태백 프로필 문의전화 02-2280-4114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2MG3tlR
    • 공연소식
    • 서울
    2019-10-15
  •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해녀탐정 홍설록'
    공연명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해녀탐정 홍설록>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날짜 2019.09.06~09.08 시간 평일 20시 / 주말 15시 티켓료 R석 30,000원 S석 20,000원 A석 10,000원 출연진 정지혜,박희원,김은경,김부영, 이승민, 강나현 외 5명 문의전화 070-4407-8552 공연정보 더보기 https://han.gl/KHzGl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해녀탐정 홍설록> 일제강점기, 제주 바다에서 펼쳐진 해녀들의 목숨을 건 항일운동!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이였던 제주해녀항일 운동을 바탕으로 한 작품! 한국판 셜록홈즈, 홍설록이 펼치는 이야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예매문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02) 3668-0007 인터파크 티켓 1544-1555
    • 공연소식
    • 서울
    2019-08-08
  • '소리꾼 이봉근과 함께하는 김대성 창작음악 연주회' - 8월 8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사랑을 주제로 ‘지나간 아픔 저편’, ‘이별을 위한 인연’ 등 12곡 국내 초연 ● 판소리 어법과 서양식 기법을 더해 Star 소리꾼 이봉근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무대 마련 오는 8월 8일, 한국음악을 바탕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곡가 김대성과 젊은 소리꾼 이봉근이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 노원문화재단(이사장 김승국)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노원문화재단 기획공연 <소리꾼 이봉근과 함께하는 김대성 창작음악 연주회>를 개최한다. ▶ 이봉근 프로필 이번 연주회에서 김대성 작곡가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연인 간의 사랑을 노래한 ‘매화산조’, 세월호 참사 이후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이별 후’ 등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작품 열 두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지나간 아픔 저편(정진권 시)’, ‘이별을 위한 인연(김대성 시)’, ‘나그네(김승국 시)’ 등이 초연을 앞두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대성 작곡가의 ‘매화산조’, ‘다랑쉬’, ‘삶의 불꽃’도 개작해 초연된다. 가야금과 타악을 위한 독주곡인 ‘매화산조’는 매화나무 아래서 만난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곡으로 가야금 독주에 타악 반주를 더했다. 제주에 있는 ‘다랑쉬 오름’에서 이름을 따온 곡인 ‘다랑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함과 동시에 다랑쉬에서 벌어졌던 제주 4.3항쟁의 슬픈 역사를 위로하는 마음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삶의 불꽃’은 동해안 별신굿 장단 중 ‘드렁갱이’ 장단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사용해 서양의 어법을 적극 수용했다. 이 곡은 신명나는 장단으로 연주회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작곡가 김대성은 1991년부터 민요, 풍물, 무속음악 등 한국음악을 바탕으로 관현악곡, 협주곡,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뮤지컬 <아리랑>, 발레 <명성황후>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소리꾼 이봉근은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장르를 넘나들며 국악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여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통적인 판소리 어법과는 다른 서양식 기법을 더한 창작곡을 선보여 소리꾼 이봉근의 새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대성 작곡가는 “실험정신이 충만한 소리꾼 이봉근이 이번 창작곡들을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되고 설렌다”며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만큼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고, 공연을 즐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원문화재단 기획공연 <소리꾼 이봉근과 함께하는 김대성 창작음악 연주회>는 전석 10,000원이며, 노원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https://www.nowonart.kr/kr/)에서 예매할 수 있다. 또한 노원문화예술회관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공연 선예매 및 할인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 02-2289-3400
    • 공연소식
    • 서울
    2019-07-23
  •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제비씨의 크리스마스' - 7월 27일~28일 세종문화회관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제비씨의 크리스마스' 장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지도보기 날짜 2019년 7월 27일~28일 시간 오전 11시, 오후 3시 티켓료 30,000원 출연진 정지혜, 강나현, 이승민, 김승진, 김조현, 설동호, 심운정 문의전화 02-745-5862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2SfjaTh
    • 공연소식
    • 서울
    2019-07-12
  • 6월 22일 서울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최호성 심청가 - 강산제 장소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 지도보기 날짜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시간 오후 3시 티켓료 20,000원 출연진 ▶ 최호성 프로필 문의전화 02-2280-4114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2Kb8GD8
    • 공연소식
    • 서울
    2019-06-11
  • [롯데콘서트홀] 엘 토요 콘서트 - 다이내믹 서울 / 소리 고영열 출연
    공연명 엘 토요 콘서트 - 다이내믹 서울 장소 롯데콘서트홀 날짜 2019년 6월 8일 토요일 시간 오전 11시 30분 티켓료 전석 3만원 출연진 소리 고영열 대금 최민 지휘 이규서연주 디토오케스트라진행 강석우 공연정보 "주사위가 던져지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 주사위 굴려가며 신나게 세계여행을 즐기던 부루마불 보드판 속 세계 주요 도시를 음악으로 만난다. 추억의 게임 부루마불을 클래식 공연으로 재구성하여 게임에 등장하는 도시들을 테마로 한 음악을 만나는 <부루마불 클래식>! 부루마불 클래식의 마지막 여행은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도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다. 조선시대부터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서울에서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은 전통의 소리와 선율을 최근 KBS 불후의 명곡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젊은 소리꾼 고영열과 남한의 대금과 북한의 대금을 조합한 '통일대금'을 관객들에 선보일 황호준이 풍성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표현한다. 프로그램 아리랑 랩소디 통일대금 협주곡 '꿈꾸는 광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전래동요 '새야새야' 북 하망연 (대장금 OST) 아리랑 환상곡 문의전화 1544-7744 예매 http://www.lotteconcerthall.com/kor/Performance/ConcertDetails/257959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공연소식
    • 서울
    2019-05-28
  • 이남행 완창판소리 '정광수제 수궁가' - 6월 15일 서울 전통문화예술공연장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이남행 완창판소리 '정광수제 수궁가' 장소 서울 종로구 전통문화예술공연장 날짜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시간 오후 3시 티켓료 5,000원 (수궁가 가사집) 출연진 ▶ 이남행 프로필 ▶김청만 프로필 ▶ 강형수 프로필 ▶ 고정훈 프로필, 유미애, 최수자, 조숙연, 이소연, 해설 한덕택 문의전화 010-3235-9760 공연정보 더보기
    • 공연소식
    • 서울
    2019-05-22
  • 황세희 판소리 발표회 '향성' - 6월 1일 충남 계룡 사계고택 은농재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황세희 판소리 발표회 '향성' 장소 충남 계룡 사계고택 은농재 ▶ 지도보기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였던 사계 김장생이 낙향하여 거주한 고택이다. 충남 계룡시에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이다) 날짜 2019년 6월 1일 (토요일) 시간 오후 7시 티켓료 무료초대 출연진 ▶ 황세희 프로필, 이승백, ▶ 윤이나 프로필 ▶ 박자영 프로필, 정효진, 우선희 기타 2019충남문화재단 신진예술가 창작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황세희의 이번 판소리 발표회 ‘향성’은 2014년 한옥문화공간에서 열린 판소리 발표회 ‘태담(胎談)’에 이은 두 번째 개인 독주회이다. 프로그램 1,단가 사철가 2, 판소리 눈대목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3, 남도소리 육자배기 4, 찬조해금연주 5, 토속민요 아기 어르는 소리 6, 창작판소리 우현 돌맞이가(황세희 작창, 김영희 사설) 7, 실내악 곡 용추(황세희 작창, 우선희 곡) 8, 계룡이여 비상하라(위촉 창작 초연, 이병욱 작곡, 서거정 시) 9, 이 땅이 좋아라(이병욱 작곡) 10, 남도민요 강강술래
    • 공연소식
    • 대전,충청
    2019-05-15
  • 5월 25일 서울 국립극장 '오민아 심청가 - 강산제' 완창판소리 공연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오민아 심청가 - 강산제 장소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 지도보기 날짜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시간 오후 3시 티켓료 20,000원 출연진 ▶ 오민아 프로필 문의전화 02-2280-4114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2WEPNez
    • 공연소식
    • 서울
    2019-05-13

국악동영상 검색결과

국악인프로필 검색결과

  • 권가연 - 판소리
    ☆ 권가연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영남대학교 국악과 졸업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졸업 및 음악학 박사과정 수료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이수자 활동 경력 현재 영남소리프로젝트 대표젊은소리패 '도화' 팀원 수상 경력 2017년 제22회 완산전국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국회의장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onHnNYnky-U [권가연 영상프로필]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22-08-08
  • 소덕임 - 시조, 판소리
    ☆ 소덕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시조창 수련과정ㅣ학력 백제예술대 전통예술과 졸업전북무형문화재 제14호 시조창 이수자전북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활동 경력 전북국악협회 부지회장, 온누리예술단 대표 역임2019년~ (사)한국국악협회 전북지회장 수상 경력 2005 제13회 강릉단오제 제38회 시조경창대회 대상 장원 (문화부장관상)2015 제16회 전국국악대제전 국창 권삼득 판소리부문 권삼득상 (국회의장상)2020 제3회 완주예술상 수상2021 제34회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국악 부문 수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8-01
  • 최소리 - 국악타악, 타악연주가
    ☆ 최소리 프로필 (서울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고수, 국악타악, 타악연주 수련과정ㅣ학력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 (국악타악 전공)독일 괴팅엔대학교 교환학생 (음악학 공부)대전시무형문화재 제17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활동 경력 이탈리아 파니칼레음악제, 덴마크 오후스페스티벌, 캐나다 뉴뮤직콘서트, 네덜란드 월드미니멀 뮤직페스티벌, 오스트리아 클라슈프렌페스티벌, 대만 웨이우잉 아트페스티벌 등 국제무대 연주국립국악원 금요공감, 천차만별 콘서트, 통영국제음악제 초청연주 등타악기로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그려내는 '소리퍼커션' 대표 수상 경력 2016 제36회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최우수상 홈페이지ㅣSNS https://www.sori-percussion.com [소리퍼커션 공식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czFttuN6LWw [소리퍼커션 (SORI PERCUSSION) – 無, 장단] 기타 한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소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다양한 공동작업을 통하여 한국 타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7-30
  • 김지영 - 판소리
    ☆ 김지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진봉규, 한농선, 성우향, 송순섭 선생 사사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중앙대학교 및 동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졸업 활동 경력 청주 극단꼭두광대 창립2022년 10번째 흥보가 완창판소리 공연 수상 경력 2000년 여수전남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입상2000년 종로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장원2002년 완산전국국악대제전 명창부 우수상2005년 국립극장 창작판소리경연대회 입상 (백두산다람쥐)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wliP13_zaHk [한농선제 흥보가 1부]https://youtu.be/NTYNN5u3Q7s [한농선제 흥보가 2부] 기타 논문 : 2007 한농선의 삶과 예술연구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22-07-25
  • 오서영 - 판소리
    ☆ 오서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소월 임화영 선생 사사우석대 간호대학 졸업 활동 경력 2022년 4월 김세종제 춘향가 완창발표 수상 경력 2016년 제21회 완산 전국국악대제전 신인부 대상 2016 제7회 장수논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신인부 대상2019년 제11회 청주 직지 전국국악대제전 판소리 부분 장원2020 제29회 땅끝 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 신인부 대상 2020 제25회 한밭국악전국대회 일반부 판소리 최우수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hxlT_SIzOHc [천자뒷풀이 (소리 오서영,고수 조성문)] 기타 여섯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임화영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나 사정으로 인해 중단했다.간호사로 일하며 다시 소리 공부에 매진하여 각종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노력파 소리꾼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7-22
  • 정호영 - 판소리
    ☆ 정호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조영자, 김영자 선생 사사전주예술고등학교 졸업우석대학교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2019 정광수제 수궁가 4시간 완창판소리 현재 ‘국악예술단 고창’ 단장 수상 경력 2018 제18회 익산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국무총리상) 홈페이지ㅣSNS https://blog.naver.com/artgochang [국악예술단고창 네이버블로그]https://www.instagram.com/k_art_gochang [국악예술단고창 인스타그램]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xgsaFsZp-8c [산도깨비, 소금장수] 기타 국악예술단 고창은 국악의 성지인 고창의 옛 명성을 되살리고 신재효 선생의 뜻을 세계에 알리고자 국악을 전공한 젊은 국악인들이 뜻을 모아 2009년 창단한 예술단체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7-12
  • 윤현명 - 피리연주가
    ☆ 윤현명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태평소, 피리연주가 수련과정ㅣ학력 정재국, 최경만, 윤형욱, 최명화, 박승희, 오영미, 신경환, 이상동, 나영선 선생 사사 광주예술고등학교 졸업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 활동 경력 퓨전국악밴드 ‘올라’ 및 전통국악실내악단 '율' 단원 수상 경력 제14회 빛고을전국국악경연대회 기악 일반부 대상 홈페이지ㅣSNS https://ko-kr.facebook.com/hyeonmyeong.yun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JfFstLavDKc [토요상설공연 - 조아람 판소리, 윤현명 피리산조 무대 하이라이트]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7-06
  • 김다은 - 판소리
    ☆ 김다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전남대학교 졸업 및 동대학원 활동 경력 현재 광주시립창극단 창악부 상임단원전남과학대학교 겸임교수 수상 경력 2021 제12회 장수논개판소리경연대회 명창부 대상 (국회의장상) 홈페이지ㅣSNS https://han.gl/cKJvM [광주시립창극단 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22-06-22
  • 방수지 - 판소리
    ☆ 방수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전남대학교 국악과 졸업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전남무형문화재 제29-2호 동편제 춘향가 이수자 활동 경력 여성민요그룹 '여음' 대표국악 POP밴드 '올라' 동인 수상 경력 제11회 화순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종합대상 (국회의장상)제22회 해남땅끝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0WbYaN_XHNM [양마에TV - 판소리란 무엇일까요]https://youtu.be/vkbv5ASwRI4 [난감하네] 기타 여음 (音) - 방수지, 조아람, 김혜지, 안지영, 전도연'여음'은 남도민요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의 민요를 안무와 소품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흥과 멋을 보다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라,마,바
    2022-06-22
  • 박진선 - 판소리
    ☆ 박진선 프로필 (1993년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주소연, 김수연 선생 사사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 활동 경력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원 역임향산 주소연 판소리보존회 이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퓨전국악앙상블 이음 멤버 수상 경력 2012 제11회 빛고을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종합대상 (국회의장상)2015 제17회 고흥 동초김연수전국판소리대회 일반부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uzUOGHAvJ9E [인터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라,마,바
    2022-06-17

관련사이트 검색결과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