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국악정보 검색결과

  • 풍류를 즐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풍류(風流)의 전통 국악을 아는 사람들 간에는 “풍류를 한다.”고 하면 영산회상을 연주하며 노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거문고를 비롯해서 대금․해금․세피리․단소․양금․가야금․장구 등으로 편성되는 악기를 가지고 상영산부터 중영산․세령산․가락덜이․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까지 한 바탕 연주하는 것을 줄풍류라하고 그런 음악하는 것을 ‘풍류한다’고 일러 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에 따라서 연주하는 곡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가락이나 분장법이 다르긴 하다.남도지방에서 연주되는 향제 줄풍류에는 밑도드리가 중간에 들어가고 뒷풍류라고 하는 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와 굿거리가 들어가서 규모도 커지고 더 흥겹게 연주한다. 풍류를 하며 노는 모임에서는 시조나 가곡을 부르기도 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춤을 출 수도 있다. 그런데 춤을 출 때에는 반주하는 음악이 줄풍류가 아니고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를 연주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전승되는 풍류의 음악에는 현악영산회상(重光之曲)을 거문고 중심의 세악편성으로 연주하는 줄풍류와 관악영산회상(表正萬方之曲)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대풍류가 있다. 또 시조나 가곡도 역시 풍류의 중요한 레퍼토리이다. 풍류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 근거는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다다른다. 최치원은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고 하면서 풍류라는 현묘한 도를 儒․佛․道 三敎의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치원이 파악한 삼교의 내용이란 유교는 충성과 효도를 실천하며 接化群生하는 가르침이요 불교는 악행을 막고 선행을 힘써 행하여 복 받도록 하는 가르침이며 도교는 無爲에 處하여 不言을 가르치는 道라는 것이다. 그 런데 이러한 三敎의 내용이 풍류라는 현묘한 도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현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의 명칭이 풍류라는 것이다. 풍류의 정의나 내용은 三敎(儒․불․道)의 핵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풍류를 행하던 무리가 바로 풍월도(風月徒) 또는 풍류도(風流徒)라 일컫던 화랑도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랑이라는 화랑이 죽어서 비문을 지으면서 최치원이 풍류의 근원에 대하여 설명을 하게 된 것이다. 화랑들이 지켰던 세속오계에 보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유교적인 것이 있고 살생유택이라는 불교적인 것도 있다. 또 명산 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하는데 자연을 가까이 하며 천지의 기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도교의 무위자연하며 양생하는 사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보면 풍류는 우리나라의 현묘한 道인데 이것을 실천하던 무리가 화랑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풍류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또는 하나의 道로서 우리문화의 근원이 되는 무엇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동식도 한국사상 또는 한국종교의 근원을 풍류로 본 적이 있고 송항룡도 풍류는 최치원이 파악한 한국의 고유사상이라고 한 바 있다. 이러한 풍류가 후세에는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음악을 즐기며 멋스럽게 사는 하나의 도로 전승되게 된다. 좋은 술을 빚어 놓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한 판 풍류판을 벌인다고 하면 음악은 물론이요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기생도 곁드리고 그래서 일상의 자기를 떠나 천인합일(天人合一)하는 망아(忘我)의 경지를 맛보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차(茶)와 고려청자 같은 것이 발달하고 조선시대에 정자(亭子)가 많이 지어지며 율각(律閣)이나 율계(律契)가 유행한 것도 다 풍류가 생활화 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풍류남아 하면 멋을 알고 돈을 잘 쓰고 예술도 아는 그런 남자를 연상하게 되어 있고 풍류객하면 풍류음악을 잘하는 음악애호가 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풍류라는 말이 음악에 남아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풍류의 의미도 음악을 통해서 재조명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의 고유한 사상이 신라시대에는 화랑도 같은 제도를 낳았고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서는 멋스런 생활을 발달시켰었는데 지금은 음악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말이다. 금(琴)은 금야(禁也)라 금지사심야(禁之邪心也)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를 하는 것은 사특한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내용인데 옛날 선비들이 남긴 거문고 악보에 자주 눈에 띄는 구절이다. 선비들이라고 하여 하루종일 계속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쉴 때에는 거문고를 끌어 당겨 “슬기둥 뜰- ”하며 풍류음악을 한다는 것이다. 그냥 쉬면 사특한 마음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줄풍류의 음악들은 그런 정신이 발달시킨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하되 마음속에 일어나기 쉬운 욕심스러운 것을 다 덜어낼 수 있도록 음악에서도 덜어낼 수 있는 음은 다 덜어내고 기교가 아닌 마음으로 음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늘이 준 나의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도를 음악을 통하여 실천해 보는 것이다. 이복기성(以復其性)이라던지 천인합일(天人合一)등의용어가 풍류음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일에 잡착하여 악착같이 사는 사람은 풍류를 알 수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삶에 찌든 현대인에게서는 풍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기업인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힌 관료들은 풍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사회는 한 동안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런데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시 풍류스러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동차로 온 가족이 교외로 나들이를 한다든지 보다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짓는 것 등은 풍류의 정신이 나타나고 있는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생활 틀에 박힌 일과를 벗어나서 자유와 자연과 새로운 생활체험을 모색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참모습을 생각해 보고 자기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던 풍류의 욕구가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음악을 접목시켜야 참 풍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더 멋스러운 생활전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9-05
  • 남해안별신굿
    --> 동영상으로 남해안별신굿 자세히 보기 자료출처--> 한국민속신앙사전 --> 남해안별신굿 다음카페 바로가기 집필자 : 오진호 (吳振昊) 정의 거제·통영 지역을 중심으로 해안마을과 도서지역에서 행하여지는 마을굿. 이 굿은 1987년 7월 1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로 지정되었다.내용이 지역에서는 세습무에 의해 별신굿·오구새남굿·도신굿 등이 행해지는데 대대로 정씨·박씨·이씨·김씨·노씨 집안이 대표적으로 단골판을 현성하였다. 정씨는 거제도, 이씨는 통영 욕지도 및 인근 섬지역, 김씨는 한산도를 중심으로 단골판을 주도했으며 광복이후 거제신청과 통영신청이 통영으로 합쳐지면서 이 지역의 무가사설 및 무관(춤)이 통일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아키바 다카시(秋葉隆)가 쓴 『조선민속지(朝鮮民俗誌)』에 거제도 별신대(別神竿)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내용은 소략하지만 오늘날 남해안별신굿과 동일하다. 이 굿의 제보자로 언급되는 무부 정철주는 현재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인 정영만(鄭暎晩)의 증조부이다. 이후 1967년 문교부 문화재관리국의 마을 제의에 관한 설문지 조사(이 자료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연차적으로 발간되었으며, 경남과 부산 지역의 자료는 2003년 『한국의 마을제당 제7권(경남ㆍ부산편)』으로 발간되었다)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상남도편(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篇)』에 1968년 사량도 양지리 능량동의 별신굿 무부 박경삼의 제보로 굿의 제차가 소개되어 있다. 본격적인 조사보고서로는 문화재관리국편의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무의식편(巫儀式篇)』 「통영지방의 무의식」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별신굿뿐 아니라 도신과 오구새남굿의 무악(巫樂)·무구(巫具)·무가(巫歌)사설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후 남해안별신굿은 1987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초대 보유자로 정모연(鄭模蓮)이 지정되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당시 활동하고 있던 정모연·고주옥(高珠玉)·박복개·박복률 등이 타계해 전승의 어려움을 겪다가 정모연의 기능을 정영만이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해안별신굿은 보통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행해지며, 요즘은 2일 정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굿의 진행순서 및 석별 진행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들맞이 당산굿 : 마을에 도착한 일행이 길군악을 연주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도착한 것을 알리는 거리이다. 제차는 길연주, 청신악, 삼십삼천, 청신악, 넋노래, 허배, 대너리, 말미, 천근, 불림, 법성, 삼현, 공사, 수부,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2. 굿장모댁 부정굿 : 굿장모(굿을 하는 동안 마을을 대표하는 제관)댁에 들러서 이 집의 부정을 씻는 절차이다. 제차는 청신악, 넋노래, 허배, 대너리, 조너리, 푸너리, 제석노래, 제만수, 삼현, 공사, 수부,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3. 산신제(위만제) : 마을의 굿장모와 이를 보조하는 마을사람 1~2명이 당산에 올라가 마을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차로 제물을 차려 제사를 모신 뒤 밤을 새운다. 4. 일월맞이(칠성굿) : 묵은해를 잘 보냈으니 돌아오는 해도 잘 보내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는 굿이다. 제차는 칠천수, 청신악, 삼십삼천, 넋노래, 허배, 대너리, 말미, 천근, 맘자심, 제석노래(칠천수), 공사, 제석노래, 제만수, 삼현, 수부,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5. 골맥이굿 : 일월맞이가 끝나면 메구를 치며 삼한대를 앞세우고 바닷가의 용왕굿을 하기 위한 장소로 내려온다. 6. 용왕굿 : 사행용왕신에게 바람을 막아주고 배의 안전과 만선의 풍어를 기원하는 굿이다. 이때 마을의 각 가정에서는 조상상을 차린다. 제차는 청신악, 삼십삼천, 넋노래, 허배, 대너리, 말미, 천근, 불림, 법성, 삼현, 공사, 수부,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7. 부정굿 : 굿청의 부정을 씻고 제단을 정화하는 굿이다. 제차는 굿장모댁 부정굿과 동일하다. 8. 가망굿 : 가망할매에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어업과 농사의 풍요를 비는 굿이다. 제차는 부정굿과 동일하다. 9. 제석굿 : 제석신에게 재수를 기원하는 굿으로, 제차는 부정굿과 같다. 10. 선왕굿(서낭굿) : 팔도선왕(서낭)을 다 불러 모셔서 동네 평안과 자손들의 무사를 기원하는 굿이다. 제차는 청신악, 대너리, 선왕풀이, 동살풀이, 조너리, 푸너리,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11. 큰굿1) 손굿(1) 지동굿 : 동태부신령(마을의 시조)을 위한 굿이다. 제차는 청신악, 넋노래, 허배, 올림채 1ㆍ2ㆍ3장, 말미, 대너리, 천근, 대너리, 천근, 대너리, 천근,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2) 손님풀이 : 마마(손님)에 걸리지 않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제차는 대너리(징), 신가구연 순이다. 2) 고금역대 :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이다. 제차는 불림, 염, 맘자심 순이다. 3) 황천문답 : 평소에 지은 업보에 따라 지옥과 극락으로 가니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도록 권장하는 굿이다. 제차는 불림, 염, 천근, 맘자심 순이다. 4) 축문 : 인생의 무상함과 망자의 제사 방법을 기록한 축문을 읽는다. 제차는 불림, 염, 맘자심 순이다. 5) 환생탄일 :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염불과 설법을 듣고 공역을 쌓으면서 지극정성으로 빌면 환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차는 불림, 염, 천근, 맘자심 순이다. 6) 시왕탄일 : 저승을 관장하는 열시왕을 모셔놓고 발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제차는 염불장단, 접탄일, 불림, 염, 법성, 올림채 1ㆍ2ㆍ3장 순이다. 7) 대신풀이 : 돌아가신 선대무당들을 추모하는 굿이다. 제차는 수부, 맘자심 순이다. 12. 군웅굿 : 장군과 동네에 공로가 있던 분들을 모셔놓고 동네 평안과 명복을 기원하는 굿으로 공사가 없다. 제차는 청신악, 넋노래, 허배, 대너리, 조너리, 푸너리, 제석노래, 제만수, 삼현, 수부, 맘자심, 송신악 순이다. 13. 시석(송신굿) : 모든 잡신과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동참시켜 풀어먹이는 굿이다. 용왕굿을 할 때 차렸던 조상상의 제물을 바다에 던진다. 이때 던지는 밥을 용왕밥이라고 한다. 순서는 제석놀이, 제만수, 육갑풀이(육십갑자), 맘자심, 개기(메구나리) 순이다. 14. 띠뱃놀이 : 동네의 묵었던 액을 띠배에 실어 멀리 보내는 굿이다. 마을에 따라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도 탈굿(탈놀음)인 중광대, 해미광대, 망석놀림이 있었으나 현재는 잘 하지 않는다. 남해안별신굿의 굿제차는 크게 잔삭다리굿과 큰굿으로 나눌 수 있다. 잔삭다리굿은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이며 이때의 무녀는 큰머리를 쓰지 않고 조너리·푸너리·제석노래·제만수 등의 장단을 쓴다. 잔삭다리굿과 큰굿에도 속하지 않는 굿제차 중에서 일월맞이, 용왕굿은 ‘석을 크게 잡는다’고 하며 무녀는 큰머리를 쓰고 주로 말미·불림 장단을 사용한다. 지동굿, 손님풀이, 고금역대, 황천문답, 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을 묶어서 남해안별신굿에서는 큰굿이라 말한다. 무녀는 큰머리를 쓰고 무가는 서사무가와 교술무가가 중심이 된다. 손님풀이는 강남에서 온 손님의 노정기를 그린 서사무가이며 고금역대·황천문답·축문·환생탄일·시왕탄일은 기원과 교훈적인 내용의 교술무가이다. 남해안별신굿의 장단은 2소박 5박자의 말미·불림이 특징적인데 동해안별신굿의 청보3장과 구조가 같다. 무가의 선법은 육자백이 토리이나 전라도지역의 육자백이 토리처럼 시김새를 강하게 주지 않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메나리토리의 느낌이 난다. 악기구성에서 대금·피리·북 등이 쓰이는 것은 전라도 및 경상도 남부지역의 무속음악의 공통적인 특징이나 장구의 크기와 치는 법은 경상도지역 무속음악과 비슷하다.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도 무속의 성격과 전라도 무속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근 남해군·사천시·고성군·진해시·마산시 등지에서도 별신굿을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제ㆍ통영 지역의 별신굿과 유사한 형태가 연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9-03
  • 도심속의 어울한마당, 대전역 광장과 서대전시민공원에서 펼쳐진다.
    음악공연을 매개로 원도심 활성화를 추진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대전역 광장과 서대전시민공원에서 펼쳐진다. 다음달 1일 대전역 광장에서는 국악 공연이 선 보이는 ‘도심 속의 어울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공연은 대전에서 국악보존과 계승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밭 국악예술단이 무용과 모듬북 타악기 연주를 펼친다. 이날 공연 무대에서는 한국전통 창작무인 소고춤과 경기민요가 올려진다. 경기민요는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권이 포함된 지방민요로 맑고 경쾌하며 깨끗한 느낌을 선사한다. 또 전통 타악기 그룹인 ‘두드림’에서 모듬북 합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피날레는 색소폰과 함께하는 풍류 노래방이 열려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이 연출된다. 다음달 2일 서대전시민공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풍경이 있는 즐거운 음악회'는 15인으로 구성된 유은호 빅밴드가 무대에 올라 귀에 익은 가요와 팝을 연주한다. 해당기사 더 보기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0361
    • 국악정보
    • 국악관련뉴스
    2012-09-01
  • 세계의 음악이 된 판소리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면서 세계의 음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이 판소리를 잘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지식도 꽤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판소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지 그 이상을 잘 모르고 있다. 이번 강의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최소한의 판소리 상식을 갖게 하고 판소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 판소리의 토양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판소리의 자생력이란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의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의 생성발달은 철저히 자연 발생적이고 우리의 생활이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누구의 특별한 아이디어나 국가적인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요자인 일반 대중과 공급자인 음악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판을 짜서 한판 노는 농악을 ‘판굿’이라 하고 그런 식으로 추는 춤을 ‘판춤’이라 하고 그런 식의 염불을 ‘판염불’이라 하니까 ‘판소리’도 한 판으로 짜서 판놀음에서 부르던 소리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도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도 그렇고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도 그렇다.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긴 이야기를 노래로 연출하며 듣는 이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 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로 보일 정도이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하긴 판소리는 전라도 무속 출신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무속 출신 아닌 사람이 판소리를 할 경우 ‘비가비(非甲)’라 하여 실력을 낮추어 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권삼득처럼 ‘비가비’이면서도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되면 ‘양반광대’라고 하여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비’란 동류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 동류란 무속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판놀음 기원설’도 있고 ‘무가 기원설’도 있는데 또 다른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그런 이야기꾼들의 구연 솜씨는 대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바로 판소리로 연결 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판소리는 그렇게 이야기라는 문학적 요소와 노래라는 음악적 요소와 연출이라는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져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는 국악은 곧 판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82년도에 전남대학교에 국악과를 만들고 초대 국악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라도 시골에 민요채집을 가서 “저는 국악하는 사람 최종민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러먼 판소리 잘 허시것네요”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국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판소리 판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주 대사습이나 남원 춘향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데 그들 대부분이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라고 보아도 된다. 전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판소리를 들으며 뿜어내는 열기는 자연 “얼씨구” “조오타”와 같은 추임새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추임새 하는 수준이 서울의 국악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향제 때에 남원 광한루원에 모이는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청가의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이 나오면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그래서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판소리 명창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전라도 출신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간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판소리의 큰 흐름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릿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시조나 가곡 같은 노래들은 청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개인의 수양이나 교양을 위하여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수양과 관련되는 철학과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며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그런 음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런 노래와 달리 판소리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수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상품의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발달한 판소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는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 영조30년 1754)에 “가사 춘향가 2백귀”라는 것이 있고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때의 문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에 판소리나 줄타기 땅재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8세기 무렵이나 19세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판소리가 불리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국가가 장려하는 음악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패트론(후원자)이 있었을 턱도 없고 순전히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소리를 팔면서 살아야 하는 광대들이 어떤 소리를 어떻게 하면서 판소리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런 과정을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는 음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교적인 덕목으로 낙이불음(樂而不淫)한 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도 뒤집어 보면 정말 즐거운 것은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수양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하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변강쇠타령․강릉매화전․왈자타령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야한 얘기나 횡재하는 얘기, 신선의 얘기 등 그 당시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들려줌으로서 한 바탕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 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판소리가 차츰 인기를 얻고 독립된 공연물로 확산되니까 판소리를 좋아하는 수용층도 다양해지고 판소리 광대들도 세련되어져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젊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를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횡재하는 얘기에다가 형제의 우애를 내용으로 하는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된다. 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으젓하고 젊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판소리의 이야기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편되면서 음악의 내용도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언어를 받아드렸고 이 모든 것이 청중․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신재효의 광대론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도리화가 등 30여편에 달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읍성 앞에 신재효가 살던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 있고 그 바로 앞에 신재효의 호를 딴 동리국악당(桐里國樂堂)이 있다. 동리 신재효는 그 만큼 뚜렷한 판소리에 업적을 쌓았던 인물이어서 “한국의 쉐익스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 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이 춘향가를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으로 구분하여 사설을 정리한 것이고 남자만 부르던 판소리를 여자도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가 진채선이란 여자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서 경복궁 낙성연에서 ‘방아타령’등을 부르게 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그 진채선 이후에 허금파 강소향등의 여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신재효이기 때문에 판소리와 관련된 많은 얘깃꺼리가 전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광대가는 “고금에 호걸문장 절창으로 지어내어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하면서 도연명이나 백낙천 같은 이들의 대단한 작품들도 다 허황사설(虛荒辭說)이라면서 차마 못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려천지(蘧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광대란 말은 본래 가면극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던 말이다. 양반광대 또는 각시광대 같은 경우는 가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고성오광대 가산 오광대하면 가면놀이나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 판소리하는 명창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이 경우도 판소리 명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대란 말도 앞에 다른 말을 얹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진짜광대”․“또랑광대”․“화초광대”․“아니리 광대” 같은 말이 있기 때문인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는 소위 말하는 진짜광대이다. 그러나 크게 이름이 나지 않고 어떤 조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량이 우수하지 못한 광대는 또랑광대라고 비하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물이나 팔아 먹고사는 광대는 화초광대라고 한다. 또 소리 중심으로 수준 높게 판소리를 하지 않고 재담이나 늘어놓으며 이야기만 계속하는 광대는 아니리 광대라고 한다. 이런 광대들은 바람직한 광대가 아니다. 그래서 신재효는 광대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지만 광대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사설은 이런 것이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그냥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시대의 광대들은 즉석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짜서 부르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창조의 역량중에서 가사를 짜는 문학적 역량을 사설치례라는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이라는 것인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득음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한다는 것은 음악의 언어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고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제’는 그러한 음악내용을 실제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기교와 발성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는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 나야 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 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의 광대론이다. 4. 음악가들의 ‘득음(得音)’ 이야기 ‘득음’이란 말은 판소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음을 얻는다” 또는 “소리를 얻는다”가 되어서 마치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득음이란 우선은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음악에 필요한 소리를 충분하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득음은 발성문제만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득음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득음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악언어의 구조를 훤히 알아서 가장 합리적인 표현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오장에서 나는 소리”란 입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고 “농낙하여 자아낼 제”란 자유자재로 멋지게 꾸며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니까 득음이란 그냥 소리만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속’을 훤히 알고 합리적으로, 멋지게, 온몸으로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득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득음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실제 음악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득음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만큼 득음은 음악가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음악가들은 그 득음을 위해서 각기 독특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흔히 <독공>이라고 하여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장기간의 연습도 있고 ‘100일 공부’처럼 집중적으로 온통 연습에만 매달리는 방법도 있다. 장우벽(1735~1809)은 영조 때 활약한 가곡의 대가인데 매일 인왕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장안을 굽어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고 김계선(1891~1943)같은 대금의 명인은 매일 새벽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 대금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연습할 때에는 같은 음악을 반복하여 연습하는데 대개는 신발을 벗어 놓고 조금만 조약돌을 모아다가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또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하면서 연습하여 조약돌이 신 하나가득 수북하게 쌓이면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그 만큼 계속 같은 음악을 반복 연습하는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능통하게 되고 또 ‘음악 속’도 훤하게 알게 되어 무슨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힘과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배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달리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들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하여 득음 하였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동진 명창만 하드라도 100일 공부한 얘기가 유명하다. 박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운 다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소리선생도 하고 조그만 자리의 소리도 하면서 조금은 방탕하게 한동안 지냈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활을 크게 반성하고 고향에 돌아가 100일 공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부친에게 그러한 결심을 얘기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부탁해놓고는 혼자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소리만 하는 맹훈련이었다. 그런데 판소리 명창들의 훈련방법은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누적되어 병이 나게 마련이다. 박 명창도 그렇게 맹훈련을 하는 중에 몸이 붓고, 이가 솟고, 목이 잠기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비란 것이 말이 쉽지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소리하다가 산에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앓아 눕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오직 득음에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며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 썼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몸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박동진도 마지막에는 소리는커녕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마침 박동진의 부친이 혹시나 하고 찾아오셨더라 는 것이다. 박동진은 평소에 그럴 때에는 인분 거른 물을 마시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부친에게 인분 거른 물을 가져다 달라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셨는데 정말이지 금방 몸의 부기가 빠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백일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박동진 명창은 이 백일공부를 통하여 득음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그 전과는 훨씬 다른 생활태도와 오직 판소리에만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대 명창이 된 것이다. 함동정월이라는 가야금의 명인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다. 함 여사가 김명환씨와 함께 살 때에는 식전에 한 바탕 오전에 두 세 바탕 식으로 거의 종일을 가야금 산조를 몇 바탕씩 타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활이 온통 연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함 명인은 보통 사람보다 왼팔이 더 굵고 강하게 발달했고 그녀가 타는 가야금은 줄을 보통 가야금 보다 훨씬 되게 죄어 줄을 고르기 때문에 다른 가야금 연주자들은 그 가야금을 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만큼 늘 같은 곡을 반복하여 타면서도 계속 그 음악의 삼매경에 들어가 음악의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늘 새로운 음악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가들의 경우 연습을 한다는 것이 무슨 장단을 지키고 곡조를 익힌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산조라는 음악 속에 들어가 장단과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죄이고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풀고 또 죄이고 풀고 하면서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음악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공력을 쌓아 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생활이고 도(道)이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득음을 하고 음악가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상에 접근해 갔던 것이다. 득음에 대한 일화는 판소리 명창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자기 귀에도 안 들리던 소리가 나중에는 그 폭포 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들렸다는 얘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이 음악가들의 득음과 관련한 얘기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국악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소개하였다. 5. “이면”이라는 용어의 의미 국악에서는 “이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면에 맞는다”든지 “이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한자(漢字)는 理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대개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데 엎드리어 땅을 치면서 통곡하여야 할 대목인데 그 소리를 그냥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향가를 창극으로 하는데 춘향을 남자로 하고 이도령을 여자로 했다면 그런 것도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하면 좀 복잡해진다. 판소리에서 좋은 소리인지 좋지 않은 소리인지를 따질 때에도 이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는 그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이 일종의 미학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천리만리”라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천리”는 좀 짧게 부르고 “만리”는 더 길게 “마아아아알리”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놀보가 흥보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막 내쫓는 것이니까 ‘우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고 흥보가 쫓겨 나갈 때에는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대목이니까 ‘계면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는다. 말하자면 슬픈 대목에서는 슬픈 소리로 부르고 기쁜 대목에서는 기쁜 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극적인 흐름이 ‘어사 출도’ 대목처럼 바쁘게 도망가고 법석을 떨 때에는 그런 극적 상황에 합당하게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고 한가하게 광한루에 올라 사방 경치를 살펴보는 ‘적성의 아침 날’ 같은 대목에서는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런 상황을 거꾸로 생각하여 ‘어사 출도’ 대목을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고 ‘적성의 아침 날’을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장단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도 이면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가사의 내용이나 극적인 상황에 맞게 소리를 짜고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면에 맞는 소리”란 말은 작곡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하고 연주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면이란 말의 한자는 理面보다는 裏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이면”을 깨닫게 되었다. 이면의 한자는 理面․裏面․二面을 두루 써도 될 만큼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명창들이 “이면에 맞다”라는 말도 쓰고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도 쓰고 또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쓰는데 이 세 가지의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면>이란 용어는 한문(漢文)을 많이 쓰는 전통사회 시절부터 써 온 용어이다. 분명 한자로 된 성어(成語)인데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 한자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또 어느 것이 옳은지 한자로 표기하는 예도 거의 없었다. 그냥 “이면”이란 말을 써 오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용어가 한문성어(漢文成語)인 것이 분명한 이상 한문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해 보니까 “이면”이란 말의 한문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한문이 다 해당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동안 판소리계에서 “이면”이란 말의 한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보기에 “이면”이란 말에 세 가지 한문의 뜻이 다 있다는 것일까?. 먼저 “이면”을 二面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사전 조건이라는 한 면과 그것을 나타낸 현상으로서의 한 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사(사설)라는 사전 조건을 음악으로 작곡했을 때의 현상이 서로 잘 맞으면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또 그 작품을 합당하게 창(唱)으로 표현했을 때에도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작곡이 잘 되었다든지 창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된 것”이니까 “理面에 맞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작곡이 잘 된 ‘소리 대목’을 잘 표현한 연주가 이루어졌을 때 “이면을 잘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경우의 “이면”은 한문의 裏面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맞으면 “二面이 잘 조화된 것”이고 “裏面을 잘 그린 것”이고 또 “理面에 맞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음악이란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했을 때 그 <표현된 내용>은 결국 <사전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전 조건이란 판소리의 경우 가사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 가사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춘향가의 ‘신연맞이’대목을 동초 김연수명창은 세마치라고 하는 빠른 진양조장단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같은 사설이지만 작곡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조건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해석의 문제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사전 조건>에 포함시키면 된다. 그 동안 판소리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평가 점수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면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민속악에서 “이면의 뜻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이면”이 한문성어로 ‘二面’․‘裏面’․‘理面’의 뜻을 함께 가진 포괄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조화되었을 때 “이면에 맞는 소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20세기에 출현한 새로운 공연물 <창극> 한국의 20세기는 외래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 한 세기였다. 1900년대의 시작은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중국문화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한편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서양문화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는 한 세기였다. 이런 문화의 변혁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공연물이 앞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우리의 ‘창극’이다. 창극은 ‘창(唱)’과 ‘극(劇)’이 합쳐진 공연물이다. ‘음악극’이라 말해도 좋고 ‘창악인들이 개발한 연극성이 강한 공연물’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창극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훌륭한 음악과 극을 결합시킨 공연물이 있었다. 판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는 가장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내는 수준 높은 공연물인데 한 사람의 명창(가객)과 한 사람의 고수가 공연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몇 백 년 동안 이러한 판소리를 다양하고 수준 높게 발달시켜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등이 다 그러한 판소리 작품들 아닌가?. 그런데 20세기를 맞으면서 우리네 판소리와 다른 외국 공연물이 서울에서 공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2가쯤에 해당하는 수표교 다리 건너편의 청국관에서는 중국의 전통 연극이 자주 공연되었고 1902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원각사라고 부르게 되는 서양식의 극장이나 광무대․연흥사․단성사․장안사 같은 서양식 극장에서도 일본의 신파극이나 가부키나 신연극 등이 자주 공연되었다. 이처럼 극장이 많아지고 그런 곳에서 새로운 공연물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계에 던져주는 변화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창극의 시작 1902년에 지어진 협률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 처음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식 축하 공연을 그곳에서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궁중 소속으로 있는 관기(官妓)나 예능이 뛰어난 예기(藝妓)들을 모으고 경․서도 명창이나 판소리 명창들을 모아서 다양하고 큰 공연 준비를 한다. 첫 번째의 공연은 전염병이 돌게 되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왕실이 지은 신식 극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돈을 받으며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공연물들은 기생들의 노래나 춤과 경기명창들의 재담과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배역을 나누어 하는 창극 등이 주 공연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협률사는 1906년에 문을 닫게 되고 1908년에 협률사를 내부 수리하여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하게 되는데 이 때의 운영진은 친일세력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직을 비롯한 친일 연극인들이 원각사를 무대로 신연극 등을 공연하였는데 그래도 그 곳에는 김창환 등의 명창 40명과 기생 24명이 이동백을 단장으로 하여 전속 단체를 구성하고 판소리․민속무용․창극 등을 공연하였다. 그리고 1909년 말 원각사의 전속 단체마저 폐지되자 협율사 명창들은 김창환․강용환․유공열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와 송만갑․이동백․김창룡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어 전국 순회 공연에 들어간다. 이 협률사의 공연이 전국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창극 보급에 크게 공헌하지만 1910년 한․일 합방이 발표되자 모두 공연을 중단하고 흩어지게 된다. ‘창극’이라는 이름의 유래 창극이라는 명칭도 1910년대에는 신연극(新演劇)이나 신파극에 대한 구연극(舊演劇) 또는 구파극(舊派劇)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가 되면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되고 판소리와 창극을 개발한 것이 새로운 공연물로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판소리나 창극 모두를 창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노식은 판소리의 역사를 쓰면서 「조선창극사」라고 했고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창극좌’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만들어 창극 활동을 하였다. 그러니까 창극이라는 용어는 한동안 판소리와 창극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창극이 인기를 얻고 많은 창극단이 생긴 다음 해방을 맞으면서 서양적인 것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니까 창극이라는 말 대신 국극(國劇)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여성국극단’이 생겨나게 되고 또한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연유로 현재의 국립창극단이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처음 발족할 때에는 국립국극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이라는 명칭은 197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초창기의 음악극은 판소리를 하는 남도명창들에 의하여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국관에 가서 중국의 경극 등을 자주 구경한 강용환은 원각사라는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고 판소리인들이 함께 공연할 공연물을 모색할 때에 <춘향전>을 입체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 연극에 가까운 공연물을 만든 것이다. 지금의 창극과는 훨씬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이라는 판소리를 그냥 그대로 배역만 나누어 여러 사람이 창을 하는 음악극인 것이다. 그래서 그후에 등장하는 ‘창극’이란 말이나 ‘국극’이란 말이 다 판소리인들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창극’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다른 우리 나라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경․서도 명창들이 창작 창극으로 공연한 <남촌별곡(南村別曲)>도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고 경기명창들이 만들어 공연한 <장대장타령>도 역시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창극’이라는 용어가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음악극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창극의 시발점 ‘협률사’ ‘협률사’라는 용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이화중선도 남원에 협률사가 들어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집을 뛰쳐나와 판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고 많은 명창들이 협률사의 순회공연에 대단한 감동을 받고 명창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협률사라는 명칭도 처음에는 1902년에 국고에 해당하는 왕실의 내탕금(內帑金)으로 지은 극장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송만갑의 협률사처럼 창극의 공연 단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황은 ‘협률사’라는 용어가 중국인들이 쓰는 ‘협률창희(協律唱戱)’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백현미도 협률사라는 용어의 한자가 ‘協律社’나 ‘協律司’로 쓰이고 있어서 그 뜻이 극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무슨 회사와 같은 단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조직의 한 부서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한 바 있다. 어쨌든 협률사라는 용어는 우리네의 창극이 처음 출발하는 출발점과 함께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이고 그 뜻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가능하면 협률사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창극이라는 명칭도 제대로 알고 사용하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를 위하여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창극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창극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 미래의 창극은 어떻게 가꾸어 가야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새 시대에 맞는 창극다운 창극 만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의 본질적 차이
    나는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글(한문)을 외우지 않으면 아침을 차려주시지 않을 정도로 매일 한문공부를 독려 하셨다. 그 덕분에 한문을 배운 것이 나의 일생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후회스러워 한다. 한문은 그 글 자체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깨달음의 양이 축적되어 간다. 어쩌면 글을 통하여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기 때문에 옛날 선비들은 끼니를 굶으면서도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나의 한문경험은 나의 음악생활에도 전이(轉移)되어 음악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재미로 음악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악은 한문과 통하는 면도 많지만 체험을 계속할수록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는 참 행복하게 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있을 당시 동료들과 함께 중국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은 중국어가 우리말과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말의 70%이상이 한문성어이기 때문에 중국말과 한국말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언어의 어법은 전혀 다른 것이 중국말과 한국말의 관계였다. 말과 음악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한다는 것이 나의 시각이고 악학궤범의“노래는 말을 길게 하여 음률에 맞춘 것이다.”라는 구절도 그러한 나의 생각과 같은 맥락이므로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를 깨달으면서 바로 중국음악어법과 한국음악어법의 차이를 깨닫게 되어 꽤 큰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중국말은 성조(聲調)가 있다. 사성(四聲)이라 하여 네 가지 성조로 나뉘는데 1성 2성 3성 4성하는 것이 바로 그 성조라는 것이다. 성조는 중국어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같은 소리라도 성조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마”라도 성조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뜻이 달라지면 한문의 글자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그냥 한글로 “마”라고만 써 놓으면 중국어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반드시 성조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그 만큼 성조가 중요한데 그 성조는 따지고 보면 음의 높낮이(高低)와 관계가 깊다. 4성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다섯 높이의 음을 편의상 계명의 ‘도’‘레’‘미’‘화’‘솔’로 대신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성은 ‘솔’‘솔’과 같은 식이어서 제일 높은 음역이고 2성은 ‘미’에서 ‘솔’쪽으로 밀어 올리는 소리이다. 3성은 ‘레’‘도’‘화’쯤으로 휘어져 내려오다가 올라가는 소리이고 4성은 ‘솔’‘도’와 같이 고음에서 저음으로 꺾어 내리는 소리이다. 결국 4성은 음의 높낮이(Pitch)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중국말은 같은 “마”라도 1성은 媽로 어미를 의미하고 2성은 麻로 삼베를 의미하고 3성은 馬로 타는 말을 의미하고 4성은 입구(口)두개 밑에 말마(馬)자를 쓴 글자로 꾸짖을 마 욕할 마로 읽는다. 그러니까 성조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의”라는 음도 마찬가지이다. 1성은 衣로 옷을 가리키고 2성은 夷로 오랑캐를 뜻하고 3성은 椅로 의자를 뜻하고 4성은 意로 마음에 의도한 뜻을 의미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 들었을 때에는 음의 고저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도 고저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중국의 방송을 들어 보라. “땅 땅 다다당 땅 땅 당 땅” 하면서 온통 한 박 단위로 진행한다. 우리음악의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중국음악어법의 작품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문묘제례악이 바로 그런 작품인데 그 음악은 하루 종일 黃 - , 南 - , 林 - 하는 식으로 같은 길이로만 연주한다. 다른 길이는 일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악보를 만들 때 길이를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율명(律名)만 적어놓으면 악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어떤가? 같은 소리라도 길이가 달라지면 뜻이 달라진다. 길게 “장-”하면 長이나 壯등의 글자를 써서 어른이나 씩씩한 것을 뜻하게 되고 짧게 “장”하면 場과 같은 글자를 써서 장소를 뜻하게 된다. 말하자면 같은 소리라도 길고(長) 짧음(短)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그래서 음악도 장단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한국음악은 장단만 있으면 되는 음악도 있다. 농악이 바로 그런 음악이다. 단-따 단-따 단-따 다단- / 다단- 다단- 단-따 다단- / 하고 쳐 나가는데 그 자체로서 훌륭한 음악이 된다. 장음과 단음의 비율은 2 : 1쯤 되는 것이어서 우리음악의 진행내용은 온통 장음과 단음의 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농악은 장단만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이지만 노래도 가곡이나 시조는 5박 계통 장단과 8박 계통 장단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이 다 장음과 단음의 결합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처럼 중국음악이 고저중심의 음악인데 비하여 한국음악은 장단중심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의 음악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화하는 과정도 고저중심의 음악어법이 장단중심의 음악어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려 때 들어온 보허자(步虛子)나 낙양춘(洛陽春)이 그런 식으로 한국화한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전통음악 가운데 중국음악어법의 음악과 한국음악어법의 음악을 구별하는 것은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같은 유교제례의 음악이지만 문묘제례악은 중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한 음악이고 종묘제례악은 한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한 음악이다. 세종 때에는 유교음악을 중국식으로도 작곡할 수 있었고 한국식으로도 작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한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할 수 있는 음악가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어법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음악어법을 발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데 그런인식이 부족한듯하여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것은 우리말과 중국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동기이고 정간보를 만든 것은 그런 말을 바탕으로 발달하는 우리음악과 중국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서양말과 우리말의 다른 점을 아는 것이고 그런 말을 바탕으로 발달하는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의 다른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글의 소중함이나 국악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국악정보
    • 자료실
    2012-08-31
  • [지음지교를 꿈꾸며] 가야금 아쟁 명인 백인영 씨-전위적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
    --> 백인영 명인 홈페이지 즉흥 연주 단짝 국악-양악 ‘불꽃’ 25년 신명의 판 즉흥 연주의 대가로 꼽히는 가야금과 아쟁 명인 백인영 씨(66). 그가 자신의 ‘지음지교’로 꼽은 사람은 뜻밖에도 국악인이 아닌 전위적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55)다. 전북 남원에 거처를 두고 활동하는 임 씨는 두 사람을 함께 인터뷰하고 싶다는 기자의 얘기에 서울 방배동에 있는 백 씨의 교습소까지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를 본 백 씨의 얼굴은 임 씨의 깎은 머리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무대에서는 눈치만으로도 상대가 가려는 방향을 알지요. 국악인 중에 애드리브(즉흥 연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은 동창 씨 말고는 없습니다.” 백 씨의 말에 임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국악은 다른 음악에는 없는 깊은 시김새(양악의 꾸밈음 격) 때문에 굉장히 개성이 강하고 ‘파워풀’합니다. 형님이 아쟁으로 지이잉 한번 긁으면 이 멜로디로 충분하거든요. 서양은 멜로디가 힘이 약하고 뻣뻣해서 막 겹쳐주면 멋있게 들려요. 그런데 국악은 멜로디가 부닥치면 서로의 멜로디를 죽입니다. 그래서 전 국악인과 협연할 때는 철저하게 장단과 분위기를 맞추는 역할만 합니다. 장구보다는 피아노 코드로 빵빵 장단을 때려주면 분위기가 살죠.”(임동창) 피아노를 연주하는 임 씨가 어떻게 국악기 연주자와 단짝이 됐을까.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열다섯 살에 불현듯 클래식 음악을 독학으로 시작했다는 임 씨는 이후 ‘자신만의 음악’을 찾는 길을 걸었다. 그 길에 양악과 국악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오히려 음악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국악에 있다고 믿는 그는 국악인과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86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백 씨의 가야금 아쟁 발표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 씨의 고향 선배인 최동선 당시 서울시립대 음대 교수가 2학년생이던 임 씨와 같이 공연해 보라고 추천했고 임 씨는 백 씨의 가야금 산조를 현악 4중주로 편곡해 지휘했다. 최 교수의 설득에 서른 살에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임 씨의 음악적 수준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던 인연은 11년 뒤인 1997년 임 씨가 진행을 맡은 EBS 라디오 국악 프로그램 ‘임동창 피아노 풍류방’ 코너에 백 씨를 초대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제가 살던 안성 집에 국악 명인들을 불러 대화도 하고, 연주도 하는 프로그램이었죠. 3년 동안 내로라하는 국악 대가들을 다 만났는데 신명 넘치는 연주자로는 백 선생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1998년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둘이 공연한 즉흥 연주회는 반응이 좋아 이듬해 미국 뉴욕 링컨센터 공연으로 이어졌다. 당시 공연장에 붙어 있던 공연 포스터를 백 씨는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두 사람 외에 신영희 판소리 명창, 김청만 씨(판소리고법 인간문화재)가 함께 무대에 섰다. 백 씨는 “어찌나 신나게 했던지 예정된 공연 시간을 20분이나 넘겨 벌금을 물었다”며 웃었다. 임 씨는 “형님의 독보적인 즉흥 연주는 솔직함에서 나온다. 솔직함에서 그런 신명이 나오고 뛰어난 테크닉이 뒷받침되면서 수준 높은 즉흥 연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상찬했다. 백 씨는 “임 선생은 피아노가 아니라 ‘거문고 금’자를 붙여 ‘피아금’을 친다고 해야 한다. 임 선생처럼 다양하게 음악을 섭렵하고 국악을 국악인보다 더 잘 이해하는 피아니스트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다음 무대는 기약하기 어렵다. 지난달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 연주회에서 짧게 호흡을 맞춘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휴대전화도 없는 임 씨는 불쑥 잠적하기 일쑤인 데다 백 씨의 건강도 좋지 않다. 백 씨는 지난해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현재 식이요법으로 치료 중이다. 인터뷰 내내 환했던 백 씨의 얼굴은 임 씨가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다”며 갈 채비를 서두르자 어두워졌다. 그 표정이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동아일보 김성규 기자 --> 기사 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29
  • 여류가객 변진심 (최종민의 국악칼럼)
    시조보급에 앞장 선 여류가객(歌客) 변진심한 집에 딸이 다섯이라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입을 딱 벌릴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여자아이들이 한 집에서 클 수 있을까?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8남매 10남매를 둔 가정이 많았고 여러 형제나 여러 자매가 함께 크는 경우가 많았다. 시조명창으로 여류 가객으로 크게 활동하는 변진심도 딸이 많은 집의 셋째 딸이다. 무엇보다 딸 다섯이 다 국악을 했다는 것이 화제가 될 만하다. 첫째는 변금자로 가야금을 전공하여 전주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둘째는 변영숙으로 역시 가야금을 전공했는데 딸 셋도 모두 국악을 시켜 ‘가야랑’이라는 연주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셋째가 변진심이고 넷째는 거문고를 전공한 한양대학교 변성금교수이다. 그리고 다섯째 역시 해금을 전공하고 서울대 등에서 가르치는 변종혁이다. 위로 오빠가 하나 있고 다음으로 내리 딸이 다섯인데 이처럼 모두 국악을 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이들은 부모가 국악인이어서 국악을 한 것도 아니다. 부모는 음악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들이다. 다만 집에 피아노가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았고 모두들 어린 나이 때 유치원을 다니게 한 것이 예능을 일찍이 개발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큰 언니 금자는 중학교 과정까지 무용으로 전주에서 날렸다. 헌데 키가 작으니까 무용보다는 가야금이 유리하겠다하여 전주여고 2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하게 된 것이 가야금 전공으로 굳어졌다. 맏언니가 가야금을 하니까 그 밑으로는 자연스레 모두 가야금을 배우게 되어 넷째까지 모두 가야금을 잘 하게 되었다. 그 큰 언니가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국립국악원의 최충웅 등에게 배우고 대학의 여러 교수들에게도 배우는 동안 국악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어 동생들을 줄줄이 국악전공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다. 변성금은 전주에서 성심여중을 나왔는데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진학시켰다. 언니에게 가야금을 배워 가야금을 잘 했기 때문에 가야금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고2 때 학교에서 손 모양을 보고 거문고를 하는 것이 좋겠다 하여 전공을 바꾸었는데 거문고로 두각을 나타내어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장학생으로 졸업한 다음 전주우석대학교 교수로 가 있다가 지금 모교인 한양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 아래 변종혁은 아예 초등학교 학생인 것을 서울로 전학시켜 나중에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해금을 전공하고 국립국악원에 연주단원으로 있다가 지금은 대학에서 제자들 가르치는 일과 연주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변진심은 1954년생이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해서 유명했다. 고등학교 때는 방송에도 나가고 학교행사에서도 독창을 하곤 했다. 시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노래를 잘 했기 때문이다. 전주에 장상철이라는 분이 학원을 내어 가야금 거문고 시조 등의 국악을 가르치면서 발표회를 준비할 때인데 기악은 출연자가 많았지만 시조를 부를 출연자는 마땅치 않을 때였다. 고1학생인 변진심이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한 달 밖에 안 되었지만 공연무대에 세웠다. 그 때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를 불렀는데 끝나니까 어른들이 “월하 월하” 하면서 시조의 명인 김월하 같은 소리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이 후 변진심은 월하라는 시조의 명인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본인이 시조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 시조나 가곡을 공부하는 국악과로 진학할 생각을 해 봤지만 그런 것을 전공할 수 있는 국악과가 얼른 눈에 띄지 않았고 본인도 국악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때였다. 그래서 그냥 성악으로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1973년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의 국립국악원에서 제2회 전국국악경연대회가 열렸을 때 변진심은 비전공부문으로 나가서 판소리, 경기창, 서도창 등의 출연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더욱 시조나 가곡과 같은 정가에 관심을 많이 가질 때였는데 둘째 언니가 “성금이와 종혁이 두 어린 동생들을 서울로 데려다 놨는데 마음이 안 놓이니 진심이 네가 가서 밥도 해 주고 동생들 좀 돌봐라”해서 ‘74년 8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오자마자 처음 찾아 간 곳이 김월하선생님 댁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시조를 했더니 “목소리 참 좋다”하시면서 제자로 받아 주셨다. 김월하선생이 ’73년에 여창가곡의 보유자 되고 고등학생인 김영기와 이승윤을 전수생으로 삼은 지 3개월 되었을 때였다. 변진심은 두 동생들을 돌보면서 가야금 개인지도로 약간의 돈을 벌어서 월하선생님에게 학채를 드리고 꾸준히 여창가곡을 공부했다. 그렇게 2년여 지났을 때 큰 언니(금자)가 와서 “앞으로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니 다시 복학하여 교사자격증을 받도록 해라”하면서 복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변진심은 다시 전주로 내려가서 성악으로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를 3년 후배들과 함께 ‘80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곧 바로 충남 서산 대산중학교를 시작으로 전북 김제 북중과 여자 상업고등학교 음악교사를 ’84년까지 했다. 그 무렵 뉴질랜드의 웰링턴 대학에서 성악과 국악을 다 하는 변진심을 교환학생으로 초청하겠으니 오라고 했지만 가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좀 남는 일이다. 교직에 있으면서도 김월하선생에게 꾸준히 공부하여 ‘86년에 여창가곡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87년부터는 국악예술학교에 정가 강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주당 12시간을 맡아 3일간 학교에 나가 가르쳤다. 그 때 가르친 학생들 중 최진숙, 오정해, 강경아, 조주선 등은 판소리 전공학생들이었지만 지금까지 사제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 후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강사도 하고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의 여창가곡 강사도 오래 했다. 경연대회에도 몇 번 나갔다. ‘82년 국립국악원 대회 때는 1등인 금상을 받았었고 ’95년에는 제6회 KBS국악대경연대회 정가부문 금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1년에 한 명씩 시상하는 KBS국악대상 가악상을 받았다. 그 동안 변진심 정가발표회만 3회를 했고 수 없이 많은 무대에서 여창가곡이나 시조를 공연했다. 음반도 CD 두 장을 냈는데 변진심 정가선집이 그것이다. 얼마 전에는 조금 새로운 시도로 기존의 서양 식 노래로 불리어지는 ‘성불사의 밤’같은 가사를 시조곡조로 불러서 발표회도 하고 음반도 만들었다. 지금은 전남대, 한양대, 추계예대 등에 나가 가르치는 한 편 과천문화원의 시조사범으로 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국악FM방송 ‘국악이 좋아요’프로에 나가 매주 한 번씩 시조를 가르친 것이 10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변진심의 시조에 익숙한 애청자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시조공부가 여창가곡 공부로 이어졌고 ‘91년에 다시 시조공부를 더 하게 되었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둘째 언니(영숙)가 시조와 가사·가곡을 잘 하는 김호성에게 변진심을 데리고 갔다. 평소에 언니와 잘 아는 사이여서 찾아간 것이었는데 노래를 해 보라하여 여창가곡 “버들은 실이되고 ~ ”로 시작하는 이삭대엽을 불렀더니 목이 좋고 꿋꿋하게 잘 부른다고 칭찬했고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정기연주회에 김호성이 남창가곡을 하고 변진심이 여창가곡을 하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시조를 지도해 주기 시작하여 변진심은 경제시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현재 시조의 판도는 석암(石庵) 정경태(鄭坰兌)가 악보와 함께 보급한 석암제가 전국으로 보급되어 경제(京制)시조는 배우는 사람이 드물정도가 되었다. 말하자면 석암제가 절대 우세하고 경제는 위축되었다. 변진심은 경제시조를 보급하고 선양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경제시조보존회를 만들고 2006년 2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창단공연을 했다. 시조공연도 과거와 달리 완창공연이라 하여 평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우조시조, 중허리시조, 사설지름시조, 온지름시조, 우조지름시조, 반각시조 등 12가지 시조를 전부 들려주는 식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변진심은 여창가곡의 가객이지만 시조보급에 발 벗고 나선 사람이 되었다. 본인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점이 많아 딸과 아들도 국악을 하도록 유도했다. 딸은 대금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아들은 지금 가곡전공으로 추계예술대학 국악과를 다니고 있다. 본인은 숙대 앞에 경제시조보존회 회관을 만들어 놓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제자들을 위해 매일 출근하여 시조와 가곡을 가르친다. 과천문화원에 가는 일이나 전남대 출강 국악방송에 가는 일 공연 일정 등 엄청나게 바쁜 스케줄이지만 전혀 피곤한 줄 모르고 행복하게 정가의 가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초에는 남편과 함께 한라산 백록담을 등반하고 올 정도로 건강하고 가끔 부부가 늦은 밤에 집에서 술을 한 잔씩 할 정도로 화목하게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소망을 물으니 경제시조를 잘 살리고 보급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스승인 김월하처럼 장학금을 많이 마련하여 더 많은 정가전공자들을 양성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변진심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최 종민 --> 최종민의 국악세상 (사진출처 : 국악방송)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29
  • 국악에도 '비트박스'가 있다! 구음의 명인, 마지막 동래 기생 유금선씨..
    --> KBS 뉴스 동영상으로 보기 <앵커 멘트>입으로 악기 소리를 내면서 하는 연주를 요즘 음악에선 '비트박스'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 국악에도 '비트박스'가 있습니다. 이름은 달라서, '구음'이라고 하는데요. 김기흥 기자가, 이 구음의 명인을 만났습니다. 김 기자, 저는 구음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어떤 느낌일까 참 궁금한데요,어땠습니까?<기자 멘트>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애간장 녹이는 소리라고 하면 될까요? 구음은 단순히 입으로 악기 소리를 흉내 내는 것 이상의 그 무언가를 담고 있었는데요. 구음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동래 기생의 그 소리를 지금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16일, 공연을 하루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었는데요, 40년 만에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긴장감으로 꼼꼼히 무대를 점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얼씨구 잘 친다" 입으로 전통악기 소리를 만들어 내는 구음보유자, 유금선 씨, 흥겨운 장구소리에 입에선 절로 구음이 흘러나오는데요<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장단에 딱딱 맞춰서 치니까 잘 치는 것이에요. (장구는) 가락만 친다고 해서 잘 치는 게 아니에요." 전통악기 뿐 아니라 기타소리까지 입으로 음표를 짚어가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고 공연 전 최종 리허설이 진행됐는데요, 무대에 오르면 언제나 50년 전, 그 날로 돌아가곤 합니다.<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20대 초반~35세까지는 화려했어요. (당시에는) 교양을 갖추고, 가무도 갖춘 사람이 귀한 손님의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있었어요." 열다섯의 나이로 기생조합이었던 권번에 입소하며 기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돈도 많이 벌었어요. 한 시간을 놀아도 50시간, 100시간으로 늘려서 전표를 끊어주는 사람도 있고, 쩨쩨한 사람들은 딱 즐긴 시간만큼만 끊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 그녀의 구성진 노랫가락은 인기와 부를 채워줬지만, 한껏 흥이 오른 자리가 끝난 뒤, 기생이라는 신분이 가져다주는 서글픔은 피해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혼자서 흐느껴 울 때도 있었어요. 내 처지와 상대방 처지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너무 사랑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만 우는 거죠." 결혼 생활 22년,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가슴에 묻고, 이제는 후학양성에 힘쓰며 살아가는 소리꾼 유금선 씨. 지난 17일,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서울에서 열렸는데요,<녹취> "(젊었을 때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어도, 꾸미면 봐줄 만했는데, 이제는 나이 먹고 늙어서 (화장도) 잘 안 돼요."<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오늘 잘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밖에 없어요." 기예를 갖춘 동래 기생의 삶과 더불어 동래학춤 구음을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관람객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홍은주 (서울시 연희동): "굉장히 멋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요." 동래 학춤과 풍물소리, 청아한 금선씨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빼어난 춤사위를 뽐내는 것으로 첫 무대의 막이 열렸습니다. 국내 최고의 구음보유자답게 가요를 악기 소리로 반주해 부르는 솜씨가 일품이었는데요, 분위기에 따라, 춤사위에 따라 목소리 하나로 각종 악기를 꺼내오는 구음에 관람객들 역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참 꿈 많았던 15세 소녀가 갈고 닦은 소리는 그녀의 일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합니다.<인터뷰> 김운태 (채상소고춤 명인): "누구도 흉내를 못 내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몸에서 흐르는 춤사위는 단순한 것 같지만 그분만이 가진 독특함이 있어요. 유금선 씨만의 유일성,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결혼과 함께 유흥가를 떠났다가 사별 후에 다시 유흥가로 돌아오던 날, <녹취> "그 옛날 자신을 흠모했던 그 남자가 손님으로 와 있었다. ‘너 왜 나왔노?’ 하는 질문이 쓰라려 눈길을 돌리는데 언뜻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보였다. 유흥가로 다시 온 제가 미워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불렀다. 그리고 한없이 울었다. " 지나간 그녀의 세월에 관람객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인터뷰> 이금자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공연이) 매우 좋았어요. 유금선 씨의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고, 속에 있는 한이 분출되는 느낌도 받았고요. 내 속에 있는 것도 같이 이끌어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기분이 좋지요. 공중에 붕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에요." 다시 한 번 태어난다면 대명창이 되고 싶다는 유금선 씨. 앞으로도 좋은 소리 기대합니다.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29
  • 군산의 마지막 권번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 할머니
    "기생질 허고 싶어 시집서 두 번 도망쳤지" [인터뷰] 군산의 마지막 권번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 할머니동네 회갑연에 초대되어 헌수를 도와주는 김난주(좌) 45세 때 모습. 윤기 흐르는 머리가 시선을 끈다.(1971년) 칼바람이 볼을 때리던 지난 2011년 12월 15일. 군산의 마지막 권번(가무를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는 곳)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85) 할머니를 찾았다. 60년 가까이 이웃으로 살아온 김 할머니 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 끝 집이었다. 좁고 짧았지만, 6~7가구가 오무래 오무래 살던 골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떠나고 김 할머니네 한 집만 남아 고요가 흐르는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금방 갈아놓은 먹물처럼 번들번들하던 기와지붕이 세월의 풍상에 시달리다 깨지고 탈색되어 마음을 짠하게 했다. 대문을 여는 순간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생'을 천시하던 시절 김 할머니 댁은 동네에서 조카 이름을 딴 '정선이 고모네 집'으로 통했다.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는 어른들은 '난주네 집'이라 불렀으며, 아이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금단의 구역으로 '기생네 집'이라고도 했다. 누가 들을까 봐 쉬쉬하면서. "안녕하셨어요?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랑가···. 그랴 맞어, 나는 누군가 했제.(웃음) 추운 날 어쩐 일이당가. 어여 안으로 들어와. 우리 집을 다 찾아오고, 참말로 별일이네!" 꼬부랑 할머니가 된 김 할머니는 처음엔 "누구랑가?"하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3초도 지나지 않아 알아보고는 반가워하며 안방으로 잡아끌었다. 김 할머니는 예상대로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옛날에는 친정어머니와 장애인 남동생, 조카 둘, 해서 다섯 식구였다. "그전에는 마당에 장독대랑 샘이랑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네요." "그~라제 조카사위가 고쳐줬어. 그나저나 웬 날이 이렇게 추워, 다리 밑에 거지들 모다 안 얼어 죽었는지 모르겠네. 그쪽은 차니께 이리~이리 아랫목으로 내려오라고. 커피 타줄까? 여그 귤도 하나 먹어보고. 참, 점심은 먹었능가?"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목소리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해학과 풍자가 깔려있고, 끌리듯 당기듯 튕기듯 하면서도 애틋함이 묻어났다. 약간의 수다스러움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월매가 야밤에 찾아온 이몽룡을 반기는 대목을 떠오르게 했다. 평생을 소리(唱)와 함께 살아왔으니 그 여운이 어찌 남아있지 않으랴. "가시네 때 '바람피던' 생각만 나고 못 살겠드라고" ▲ 일본어 교육을 받는 일제강점기 권번 기생들.(김중규의 <군산역사 이야기> 스캔) 김난주(金蘭珠)는 본명으로 1927년 전북 순창 산골에서 태어났다. 예능에 기질을 타고난 그는 어려서부터 기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까지 '바람'을 피웠단다. 이곳저곳으로 가무를 배우러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강권으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남원의 안(安)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디, 남편은 집에서 글이나 읽는 학자였어. 그리도 어떻게 혀. 그럭저럭 살다 보니께 애기를 하나 낳았는디 어렸을 때 죽어 버렸어. 가시네 때 바람피던(가무 배우던) 생각만 나고 못 살겠드라고. 기생질 허고 싶어서 도망쳤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스스로 생과부를 택한 김난주는 스물두 살 되던 해 군산으로 이사한다. 변두리에 방 두 개를 얻어 친정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곧바로 소화권번에 입소하여 이기권, 김준섭 등에게 판소리와 장구를 배웠다. 그때 만난 장금도(84, 민살풀이 전승자)와는 6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김난주 20대 모습. 우리 소리가 좋아서 기생이 되려고 했다고. 김난주는 동료들에게 '타고났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구음(口音) 구사를 잘했다. 춤을 추거나 악기를 배울 때 입으로 "나니나~ 나~나니~ 나리룻···" 하며 장단을 맞추다가 그 자체가 음악이 된 구음은 춤판이나 잔치판 등의 흥을 돋워주는 최고의 반주가 되었다. 스물네 살부터는 명월관, 근화각, 동해루, 쌍성루 등 큰 요릿집은 물론, 잔칫집으로 '밤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권번의 원칙은 4년을 마치고 시험을 거쳐 허가증을 받아야 하지만 워낙 목(소리)이 좋고 장구 솜씨가 뛰어나 권번에서 눈감아주었다. 김난주 인기는 대단했다. 집에서 곱게 화장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권번소속 예기 양성소에서 보낸 인력거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월관 방마다 영화배우 닮은 김난주를 찾는 손님이 넘쳐났고, 마루에서 '뽀이'(boy)들이 서로 당기는 바람에 저고리가 찢어지기도 했다. "팁은 한 시간에 기본 2원이었제.(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6원) 그러나 두 시간 놀고도 50시간 100시간으로 달아주는 고마운 손님도 있었어. 이런 얘기는 쪼까 거시기 헌디, 손님이 연애를 걸어오기도 혔는디, 마음에 들믄 잠자리를 하기도 했제. (웃음) 하룻밤 사랑이 10년, 30년,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었응께. 그란디 지금은 다 흘러간 꿈이 돼야 뿌렀어!" 다섯 식구 '가장'으로 살아온 인생... 상갓집에서 초대 받기도 ▲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인 20대 후반 김난주의 모습. 김난주는 동네에서도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 인기 영화배우였던 이경희와 빼닮은 미인으로 알려졌었기 때문. 동료 기생들은 물론 요릿집 손님들은 영화배우 이경희 언니가 행차했다고 반기며 서로 옆에 앉히려고 다툼이 일기도 했다. 20대에 가장이 된 김난주는 열심히 노력했다. 인기 '짱'이었던 그는 1년 남짓 모은 돈으로 'ㄱ'자 기와집도 장만하고. 몸이 불편한 남동생도 장가를 들였다. 친정어머니 수발도 극진히 했다. 조카를 둘이나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올케가 남편(동생)과 젖먹이 딸 둘을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있다고 하지만, 직장과 집, 양쪽으로 시달려야 했다. 올케가 없는 빈자리를 메워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조카들 엄마 노릇을 하면서 애처롭게 살아왔다. 그래도 결혼해서 50대 중반이 된 조카들이 엄마처럼 대한단다. ▲ 충청도 광천 부잣집 환갑잔치 마당에서 장구로 흥을 돋우는 김난주.(1973년) 1960~1980년대 김난주는 주로 환갑이나 잔칫집에서 초청을 받고 외출을 나갔다. 동료 기생 2~3명이 함께 가서 자식들이 차례로 부모에게 술잔을 올릴 때 옆에서 도와주며 유창한 선율로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을 받으시오"로 시작하는 권주가를 불렀다.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헌수(獻壽)가 끝나면 차일이 쳐진 마당에서 놀이판이 한바탕 벌어졌다. 놀이판에서는 장구, 북, 창, 구음 등으로 분위기를 잡아주었고, 손님들과 환갑을 맞은 본인이 소반에 팁을 놓아주며 흥을 돋우었다. 군산뿐 아니라 김제, 부안, 전주, 이리(익산), 충청도 등지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1박을 해야 하는 충남 대천이나 광천, 부여 등에는 친구이자 민살풀이 일인자인 장금도와 함께 다녔는데, 군산에서 왔다는 기생들을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이 잔칫집 마당을 가득 메웠다. 상가(喪家)에서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내지만, 망자가 생전에 벼슬을 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출상하는 날 기생을 불렀다. 애절한 소리로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의 친구도 되어주고 길잡이도 돼주기 때문이었다. 기생이 요령잡이를 한다는 소문이 초상마당에 돌면 서로 상두꾼을 하려고 모여들었다. 머리에 흰 끈을 질끈 동여맨 기생이 상여에 올라 요령을 흔들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만가를 선창하며 이끄는 꽃상여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였으며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옛날 나비들도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어!" ▲ 1960년대 중반 여름 피서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맨 앞이 장금도. 세월의 변화는 물의 흐름과 같아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40대 후반부터는 외출(잔칫집 행사)이 잦아졌다. 미제 깡통문화에 길들여진 한량들로 세대교체 되면서 우리의 전통 창(唱)에서 벗어나 신식가요를 즐기는 손님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구음 구사가 뛰어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악기 다루는 솜씨가 능숙해지고 창법도 원숙해지면서 50~60대에는 학원을 개설해서 후배를 가르치기도 하고, 선후배 기생들과 모임을 만들어 내장산, 속리산 등으로 야유회를 다니며 덧없는 세월에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호호백발이 된 김난주 할머니가 기억하는 기생 동료는 민살풀이 일인자 장금도를 비롯해서 금선이, 옥주, 채선이, 혜영이, 난영이, 도심이 등. 그러나 대부분 죽거나 타지로 나가 살고, 장금도만 군산에 살면서 전화로 소식도 전하고 사는 얘기도 나눈단다. 권번에 발을 늦게 들여놓아 기생 경력이 짧지만, 애틋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남자도 몇 된다고 털어놓는 김난주 할머니. 그러나 "지금은 시든 꽃이 돼 뿌렸고, 그 옛날 날아들던 나비들도 모두 저 세상 사람 되었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오마이뉴스 기사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28
  • 권오춘 국어고전문화원 이사장의 양평 한옥 초은당
    다섯 번 옻칠한 대청… 그 위에서 사뿐사뿐 선비춤 드디어 초은당에 간다. 여러 자리에서 여러 입으로 분분하게 소문이 나부꼈던 집이다. 옻칠을 아홉 차례나 하면서 돈을 종이처럼 처발랐다느니, 한강 이남의 경복궁이라느니, 부석사 무량수전의 살림집 버전이라느니! 과격하고 선정적인 소문들이었다. 금강송을 켜 옻칠한 대문 앞에 서니 얼굴에 잔뜩 웃음을 문 주인이 고무신 발로 뛰어나온다. 신만 고무신이 아니다. 명주 누비 바지저고리에 역시 솜 두고 누빈 조끼를 입었다. 지난해 파주 헤이리의 한 축제에서 그가 추는 선비춤을 구경한 적 있다. 한옥에 한복 입고 살면서 선비춤을 추는 사람. 신명 많고, 입담 좋고, 생각 굳은 이 집 주인 권오춘(61) 국어고전문화원 이사장이다. 그는 지금 전통문화의 르네상스를 위해 앞장서서 달리는 중이다. 소득 3만 달러가 되면 다들 전통정신을 찾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막상 한옥과 한복과 한식과 전통공예가 다 사라지면 큰일 날 일 아니냐며 자신의 삶으로 철저하게 한국인의 문화를 지키겠노라고 선언한 사람이다. 먼저 집 이야기부터! 초은당이 앉은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야트막한 언덕이다. 눈앞에 북한강 줄기가 펼쳐지고 뒤로는 둥두렷한 산이 막아서 있다. 좌우로는 거인의 두 팔인 양 산줄기가 흘러내려와 집터를 포근하게 껴안는 형국이다. 풍수를 모르는 까막눈의 입에서도 ‘배산임수’ ‘좌청룡우백호’ 같은 말이 절로 튀어나올 길지다. 원래 이 집은 문화재 전문위원이기도 한, 홍근옥 명지대 공예과 교수가 박물관을 할 요량으로 맘먹고 지었다고 한다. 도집례(都執禮·의례를 맡아보는 사람)는 봉정사 극락전, 백제문화단지 같은 국보급 문화재를 복원했던 인간문화재 최기영 선생이 맡았다. 그런데 짓는 중에 그만 외환위기가 터졌다. 급히 새 주인을 물색하던 홍 교수와 마땅한 한옥을 찾고 있던 권 이사장이 만났다. “이 집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계약하자고 했어요. 당시 집사람은 미국에 머물던 중이었는데 전화로 상의했더니 한옥에 살겠거든 이혼하자고 하데요. 금방 설득할 일은 아니다 싶어 일단 계약부터 했지요.” 그때가 2004년이었다. 당시 사지 말라던 부인이 이젠 팔지 말라고 한다니, 그의 설득 작업이 효과가 있었던 듯싶다. 그러나 아직 100% 성공은 아니다. 부인은 잠실의 아파트에 살고 양평집엔 사랑주인만 일주일에 삼사 일씩 혼자 내려와 맥반석 구들 위로 군불 때면서 살고 있다. 한옥이 현대 한국인에게, 특히 살림을 맡은 안주인에게 얼마나 천대 받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실이다. “한옥에 살면 불편한 줄 알지만 막상 익숙해지면 심신이 아주 편안해져요. 이렇게 과학적이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건축양식이 있었던가 새삼 놀랍니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구들이 만난 것도 그렇지만, 창호지·문얼굴·창호의 치수 같은 것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는지요. 한옥은 우주 철학을 포괄하는 집이에요. 추녀의 원·기둥과 마루와 방 마루의 네모, 지붕의 세모가 합해 원방각(圓方角) 천지인(天地人)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한복 또한 마찬가지예요. 집과 옷이 우주 원리에 두루 부합해요. 사람도 소우주니 집에 들어앉으면 성품이 활달해질 수밖에! 그러면서 또 언행은 신중하게 만들거든요.” 초은당 지붕은 여느 한옥과는 다르다. 처마가 길게 빠져나와 기와지붕이 내려앉은 모습이 새가 비상하는 형상이되 이건 까막까치 같은 잡새의 날개가 아니다. 적어도 독수리나 봉황쯤은 될 듯하다. “처마가 긴 것은 고려시대 건축양식이랍니다. 남성적이고 우람하지요.” 그 한옥을 그냥 두지 않고 그는 공들여 옻칠을 했다. 그냥 옻칠 정도가 아니라 인간문화재 옻칠장인 정수화씨를 초빙해 기둥엔 아홉 번, 바닥엔 다섯 번씩 덧발랐다. 초은당은 그래서 마루장도 기둥도 빛을 반사하는 거울면이 됐다. “옻칠은 세계에 자랑할 우리 보물입니다. 옻칠을 제대로 하면 불에 타지도 않고 원적외선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나온답니다. 옻나무로 차를 달여 먹으면 조기엔 암도 치료할 수 있대요. 유리컵에 우유를 담아놓으면 하루를 넘기지 못하지만 옻칠한 나무 컵에 우유를 담으면 일주일을 가도 상하지 않는 걸 내 눈으로 봤으니깐요.” 그의 한옥과 한복 예찬은 기운차고 재미있고 격조 있고 끝 간 데를 모른다. 그는 안동권씨 부정공파 35대 손으로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태생적으로 선비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다. 10여 년 전에는 하회 마을 인근 구담 마을에 60칸짜리 ‘구담정사’를 장만해 어머니를 모셨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곳 양평의 북한강 물길은 안동의 낙동강까지 닿았었다. 배를 타고 그렇게 흘러간 기록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금 여기 양수리 북한강가 초은당 앞을 맴도는 전통문화의 물길이 안동 하회에 이르러 구담정사까지 흘러가기를 그는 꿈꾼다. 초은당은 본채 27칸, 별채 3칸 해서 모두 서른 칸의 집이다. 깔고 앉은 대지는 3300㎡(1000평). 마당 초입에는 들어서는 사람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의 향나무를 심었다. 또 봉화에서 가져온 금강송을 심었고, 마당으로 올라서는 계단은 문경에서 실어나른 목화문석으로 만들었다. 들여다보면 돌 속에 목화 송이가 툭툭 벙근다. 대문 앞엔 한쪽엔 초(招), 다른 쪽엔 은(隱)이라고 새겨진 와당을 박아넣었다. 초은은 숨어있는 사람을 부른다는 의미의 당호이고, 집주인 권오춘의 호다. 한복 입고 한옥에 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몇 해 전 그는 영남춤의 명인인 박경랑 선생을 모셔와 선비춤을 배웠다. 손이 오면 거울같이 윤나는 대청에서 그는 너울너울 선비춤을 춘다. 지난가을엔 바깥 담을 새로 둘렀다. 거기엔 검은 빛이 감도는 보령 오석을 썼다. “산성을 쌓는 방식으로 담을 쌓았어요. 담장 위에 늘어놓은 흙인형은 인연 깊은 도예가 박종식이 만들어서 구운 겁니다. 인간의 벼라별 동작이 다 담겨 있지요. 봄이 오면 바닥에 조선꽃들을 심을 겁니다. 바닥에 깔린 벽돌도 박종식의 작품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모두 한국 전통 문양을 벽돌 위에 복원한 겁니다.” 지면이 모자라 그의 한국문화 사랑을 일일이 기록하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중앙일보 기사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2-08-28

공연소식 검색결과

  • 9월 14일~22일, 전통 바탕으로 색다른 창작 무대 이어가는 국립국악원 기획공연 ‘공감시대’ 선보여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이 전통을 바탕으로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창작 예술가들의 기획공연 <공감시대>를 오는 9월 14일(수)부터 10월 20일(목)까지 총 10회에 걸쳐 풍류사랑방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감시대> 공연은 각 월별 장르별 무대로 꾸며, 성악과 기악 분야의 연주자를 중심으로 구성한 9월과 무용과 연희 분야로 꾸민 10월 공연으로 색을 달리해 선보인다.판소리합창으로 듣는 소리극 ‘판소리아지트놀애박스’정가 창법으로 듣는 서양가곡과 90년대 가요 리메이크 ‘장명서×안정아’9월 공감시대의 첫 무대는 전통 성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 공연 두 작품으로 문을 연다. 14일(수) 첫 무대에서는 소리꾼 박인혜가 직접 각색과 연출, 작사, 작창, 음악감독까지 맡아 최근 다양한 무대를 통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판소리 합창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의 눈대목을 모아 선보인다. 15일(목)에는 젊은 가객 안정아와 장명서가 정가 창법을 통해 들려주는 서양 가곡과 90년 가요 등을 리메이크해 성큼 다가온 초가을 밤의 편안한 휴식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이것은 국악인가, 중동 음악인가? 국경 넘나드는 그룹 ‘TAAL’자유로운 즉흥의 하모니, 시나위로 형식 넘나드는 ‘앙상블시나위×김덕수’국악으로 색다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두 단체의 9월 20일(화) 무대도 눈길을 끈다. 파키스탄의 전통음악인 까왈리(Qawwali)에 우리 전통음악인 경․서도소리를 더해 국경을 넘나드는 그룹 ‘TAAL’의 무대에서는 두 음악의 환상적인 조화를 통해 탄생한 색다르고도 놀라운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이어서 장구의 김덕수 명인과 함께하는 앙상블시나위의 무대에서는 즉흥이라는 주제로 하모니를 이뤄가는 ‘길 위의 시나위’를 통해 음악적 형식을 넘어 쏟아내는 흥과 신명을 자유롭게 펼쳐낼 예정이다.익숙한 듯 생소한 전통 악기로 빚은 매력적인 음악‘한솔잎’의 철현금과 운라, ‘정영범’의 비파, ‘윤은화’의 양금9월 21일(수) 무대에서는 철현금, 비파, 양금 등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악기들이 빚어내는 색다른 음악을 소개한다. 섬세하면서도 힘과 절도가 느껴지는 철현금과 운라,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비파, 박진감 넘치는 타악기와 화려한 선율을 들려주는 현악기의 멋을 품은 양금과의 만남이다. 철현금 및 운라연주자 및 창작자 한솔잎과 우리나라의 첫 남성 비파 연주가인 정영범, 대표 양금 연주자 윤은화가 함께한다.바이올린, 하프 등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만나 전하는 색다른 성음‘SaaWee’(바이올린×장구), ‘줄앙상블’(해금×비올라), ‘1247’(가야금×하프)9월 22일(목) 무대는 유럽과 미국을 주 무대로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예술가들의 무대다. 가야금과 하프의 만남 ‘1247’, 해금과 비올라의 조화 ‘줄앙상블’, 바이올린과 장구가 만나 다채로운 음악을 표현한 ‘SaaWee’가 무대에 오른다. 이 세 팀은 국립국악원에서 국내외 국악 콘텐츠 홍보 등을 위해 제작한 뮤직비디오 <국악人프로젝트>에서 발굴한 단체로 화면을 벗어나 실제 무대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국립국악원 기획공연 <공감시대> 9월 공연은 9월 14일(수)과 15일(목), 그리고 20일(화)부터 22일(목)까지 총 5회에 걸쳐 19시 30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누리집(http://www.gugak.go.kr)과 전화(02-580-3300)로 예매 가능하다. 전석 2만원 (문의 02-580-3300)
    • 공연소식
    • 서울
    2022-09-02
  • [무료초대] 국립국악원 주말 여름밤 무료 야외공연 ‘우면산별밤축제’ 8월 27일 / 9월 3, 17, 24일
    □ 국립국악원이 늦여름 밤 열기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야외 공연 ‘우면산별밤축제’를 선보인다. □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오는 8월 27일(토)부터 9월 24일(토)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무대에서 기획공연 ‘우면산별밤축제’를 4회에 걸쳐 선보인다.□ ‘우면산별밤축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탄탄한 음악성과 대중성으로 무장한 국악 단체들이 출연해 바쁜 일상과 코로나 등으로 지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올해는 창작 연희를 비롯해 국악과 미디어아트의 협업 무대, 신명나는 국악 밴드 등 관객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진다.동해안별신굿의 색다른 변신‘젊은 무속연희패 사니’의 <축원&풍어>□ ‘우면산별밤축제’의 첫 무대에는 국가무형문화재인 ‘동해안별신굿’의 전승교육사와 전승자들로 구성된 ‘젊은 무속연희패사니’가 올라 이번 공연을 위해 동해안별신굿을 새롭게 꾸민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사한다. 흥겨운 무가(巫歌)와 화려한 무무(巫舞)로 공연을 찾은 관객의 소원 성취와 안녕을 기원한다.60여명의 연희꾼이 선사하는 생동감 넘치는 연희 판‘한누리 연희단’의 삼도풍물 <숨바람 굿>□ ‘우면산별밤축제’의 두 번째 무대에서는 60여명의 대규모 연희꾼으로 구성된 ‘한누리연희단’이 삼도(서울·경기·영남·호남)의 농악 중 대표적인 장단들을 선별해 구성한 공연을 선보인다. 비나리와 판굿을 시작으로 악기별 놀음까지, 마당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고 치유와 위로를 선사한다.국악과 미디어아트가 만난 이색적인 공연‘국립국악원 창작악단X김소라·최희영X이석’의□ 국악 창작곡에 미디어아트를 더해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공연도 ‘우면산별밤축제’의 세 번째 무대에 선보인다. 4곡의 창작 국악곡과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ComPlex, 가다 등 2곡을 들려준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지휘자인 박상후의 지휘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타악 솔리스트 김소라가 연주하고,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작곡가인 최희영, 비주얼 디렉터 이석이 함께 한다.판소리, 풍물 등 전통연희에 현대적 색채를 더하다‘풍물밴드 이상’□ ‘우면산별밤축제’의 마지막 무대는 수준 높은 퍼포먼스로 JTBC <풍류대장>에서 TOP5 까지 진출해 대중을 사로잡은 ‘풍물밴드 국악이상’이 출연한다. 비나리, 사랑가, 비상, 액맥이타령 등 총 9곡을 중심으로 판소리, 풍물 등을 한데 엮어 흥겨움이 넘치는 다양한 무대로 이번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 ‘우면산별밤축제’는 오는 8월 27일(토)부터 9월 24일(토)까지 9월 10일(토)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무대에서 선보인다. 예매는 8월 17일(수) 오후 2시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국립국악원 누리집(http://www.gugak.go.kr)을 통해 그 다음 주 공연을 예약할 수 있다.관람료는 무료초대. 문의 (02-580-3300)
    • 공연소식
    • 서울
    2022-08-17
  • 7월 12일~8월 13일 국립부산국악원 - 2022 영남춤축제 '춤, 보고싶다'
    춤의 물결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지역 대표 춤축제!7월 12일(화) 특별강연 / 13일(수) 개막공연 / 16일(토) 학술대회 / 23일(토) 청靑,뿌리춤전 / 28일, 8월 4일(목) 전통vs창작 □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은 7월 12일(화)부터 8월 13일(토)까지 한달간, 무더위의 정점에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춤꾼들의 열린 무대, 2022 영남춤축제 <춤, 보고싶다>를 개최한다. □ 2022 영남춤축제 <춤, 보고싶다>는 ‘춤은 경상도’라는 예술적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지역 대표 춤축제로서 교류와 화합을 통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풍성한 공연과 함께 강연, 학술대회,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맛깔나는 영남춤축제,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시간! □ 2022 영남춤축제의 전야제로 진옥섭(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노름마치』 저자) 명사의 특별강연 <영남춤, 올리고 싶다>가 12일(수) 오후 7시30분 예지당에서 진행된다. 이번 강연에서는 “내 춤판의 반이 영남춤”이라는 진옥섭의 입김 서린 육성으로 듣는 영남지역 명무(名舞)들의 옛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며, 축제에 앞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축제의 재미를 더한다. 영남춤의 명맥을 잇는 ‘이음’무대 <영남춤, 사계(四季)> / 7월 13일(수) 오후 7시30분 □ 이번 축제의 개막공연은 영남지역 명무들의 멋과 예술혼을 후학들과 나누는 무대이다. 원로예술인 석봉스님(국가무형문화재 아랫녘수륙재 보존회장/법고춤), 김진홍(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보유자/동래한량춤), 김온경(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보유자/산조춤), 이윤석(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보유자/고성허튼춤) 등과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연주단이 함께 무대에 올라 진정한 영남춤의 흥과 신명을 선보인다. 영남지역 대학 무용과 젊은 예술인들의 꿈과 희망의 무대 <청靑, 뿌리춤전> / 7월 23일(토) 오후 5시 □ 23일(토) 연악당에서 펼쳐지는 ‘청靑, 뿌리춤전’은 지역 대학 무용학과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젊은 춤꾼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무대이다. 올해 영남춤축제 5주년을 맞이하여 영남지역의 경상국립대학교(태평무), 계명대학교(천개의 바람), 국립창원대학교(우리 춤의 원류(源流)_두물머리(兩水里)), 부산대학교(진도북놀이), 부산여자대학교(鶴-놀음)가 참여한다. 전통과 창작의 동시대적 소통을 염원하는 무대 <전통vs창작> / 7월 28일(목), 8월 4일(목) 오후 7시 30분 □ 한편, ‘전통vs창작’은 전통춤의 원형과 이를 소재로 재해석된 창작춤이 한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28일(목)은 ‘정재’를 주제로 전통춤 ‘박접무’, ‘포구락’과 창작춤 ‘날개, 짓다 나비, 짓다(안무: 김성수)’, ‘問門:문을 묻다(안무: 손효진)’를 선보이며, 8월 4일(목)은 ‘영남춤’을 주제로 전통춤 ‘진주교방굿거리춤’, ‘통영검무’와 창작춤 ‘물밑소리(안무:최현지)’, ‘그리고, 홀(안무:이도영)’ 이 공연된다. 특히, 창작춤 무대는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안무를 맡아 정재와 영남 춤 레퍼토리 확장에 앞장서고자 한다. □ 이 밖에도 16일(토) 연악당에서는 국립부산국악원과 영남춤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학술대회 ‘2022 영남춤의 맥을 찾아서’가 진행된다. ‘영남지역 무속 연희의 예술적 동시대성’을 대주제로 삼아 펼쳐지는 이번 학술대회는 우리 문화의 원류이자 근간이 되는 무속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여 한국 춤문화의 창조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온 몸이 들썩들썩! 영남춤축제, 옴팡지게 즐기는 방법! □ 공연 관람은 취학아동 이상으로 연악당 공연은 S석 2만원, A석 1만원, 예지당 공연은 전석 1만원이다.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5시에 시작하며, 예매는 국립부산국악원 누리집(http://busan.gugak.go.kr) 온라인예매 및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특히, 한달간 펼쳐지는 영남춤축제에서는 ‘춤사랑 묶음티켓’을 판매한다. 구매자에게는 기존 관람료 대비 60% 할인을 적용하며 ‘행열도 미니 잔세트(5회권)’ 또는 ‘나전칠기수첩(3회권)’을 선물한다. 문의) 051-811-0114.
    • 공연소식
    • 부산,경남
    2022-07-08
  • 광주에 오면 꼭 봐야할 공연! 광주국악 상설공연 - 광주공연마루 (10월 매주 화~토)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국악세계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글로벌 K컬처 플랫폼 '리틀코리아' ▶ http://koreanculture.kr 1. 공연명 : 광주국악 상설공연2. 장소 : 광주공연마루3. 날짜 : 2021년 10월 (매주 화~토)4. 시간 : 오후 5시5. 티켓료 : 무료초대6. 문의 : 062-613-8379/83727.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3a6GxIt◆ 출연진 :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광주시립창극단, 굿패마루, 루트머지, 소리화, 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예락, 올라 등
    • 공연소식
    • 광주,전라
    2021-10-05
  • 광주에 오면 꼭 봐야할 공연! 광주국악 상설공연 - 광주공연마루 (8월 매주 화~토)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국악세계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글로벌 K컬처 플랫폼 '리틀코리아' ▶ http://koreanculture.kr 1. 공연명 : 광주국악 상설공연2. 장소 : 광주공연마루3. 날짜 : 2021년 8월 (매주 화~토)4. 시간 : 오후 5시5. 티켓료 : 무료초대6. 문의 : 062-613-8379/83727. 공연정보 더보기 ▶ https://bit.ly/3xo5x72◆ 출연진 :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광주시립창극단, 굿패마루, 루트머지, 소리화, 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예락, 올라 등
    • 공연소식
    • 광주,전라
    2021-08-04
  • 안숙선 이야기창극 `두사랑` - 4월 5,6,7일 서울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안숙선 이야기창극 `두사랑` 장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일시 2019년 4월 5일~7일 (3일간) / (금20시 / 토19시 / 일15시) 티켓료 무료초대 ★ 3월 7일(木)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신청 가능 (선착순 마감) 출연진 ▶안숙선 프로필 ▶권송희 프로필, 고수희, 이지나 문의전화 02-960-0714 공연정보 더보기 ▶https://goo.gl/ep9TTr 판소리 명창 안숙선의 무대인생 62주년을 기념하는 이야기 창극 <두 사랑>은 자신의 삶과 예술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깊은 영향을 끼쳤던 두 스승, 만정(晩汀) 김소희와 향사(香史) 박귀희로부터 받은 깊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린 시절 남원에서 처음 전통음악을 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안숙선이 우리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시절, 서울로 올라와 만정과 향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워커힐, 국립창극단에서 활약하던 시절, 변함없는 애정과 진심어린 당부를 남기며 두 스승은 세상을 떠나고, 전통의 보존과 창작은 물론, 이제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전통예술교육에도 힘쓰는 안숙선의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전 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무대 밖 이야기를 들려준다. 안숙선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타고난 좋은 성음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역을 도맡으며 일약 창극 명인으로 자리 잡았다. 1986년 이래 시작한 판소리 5바탕 완창은 그 횟수가 작년까지 무려 29회에 이르며,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안숙선은 이번 이야기창극 <두 사랑>에서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독백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장면에 맞는 판소리는 물론, 가야금병창, 소고춤 등 다채로운 예술적 기량을 펼친다. 본 공연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학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1년 여에 걸쳐 진행된 안숙선과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이 제작총괄과 극본을, 판소리 ‘필경사 바틀비’, 판소리 ‘오셀로’ 작품 등에 참여한 임영욱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 공연소식
    • 서울
    2019-03-08
  • 10월 10~11일 올림픽공원 K-아트홀 - 국악단소리개 '취향:소리에 취하다' 공연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취향:소리에 취하다'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K-아트홀 ▶ 지도보기 날짜 2018년 10월 10일~11일 시간 오후 8시 티켓료 VIP석 50,000원, R석 30,000원 출연진 ▶ 이영광 프로필 ▶ 서명희 프로필, 윤정민, 김하람, 김훈, 김익수, 고현영 등 문의전화 070-7705-3590 프로그램 1. 바람의 향 (징시나위) - 바람을 상징하는 징, 그리고 다양한 금속 악기는 혼돈과 질서를 부여한다. 다양한 리듬과 섬세한 음악적 구조로 짜여져 있는 곡이다.2. 애향 愛香 (사랑가) - 대표적인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과 춘향이의 사랑 이야기를 전통 장단 위에 재즈의 화성과 연주기법으로 덧붙여 재구성된 곡이다.3. 화향 花響 (가야금, 장구 협연) - 전통 타악기와 현악기의 낯 설은 만남과 그 속에서 피는 새로움을 표현한곡이다. 두드림의 공명을 통한 삶의 혼돈 그 속을 때론 강렬하게 때론 은은하게 뚫고 나오는 가야금 선율의 생명의 꽃빛을 상징한다.4. 잔치 饗 (동서양 악기의 협연) - 36/8박(2·3박 혼합박자)의 길군악칠채 장단 위에 Am코드진행의 즉흥 재즈 연주가 더해져 삶의 다양함을 표현한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국악 재즈곡이다.5. 소리개 Dream - 해무가 가득한 바다 위 거친 파도를 견디고 이내 동이 트면 희망찬 순항의 꿈을 이야기한다. 전통타악 연주자들과 재즈 뮤지션들의 협연곡으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즉흥의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6. 이향 離香 (이별가) - 삶이란 만남이 있으면 이별, 죽음 등의 헤어짐이 있나니...삶의 회자정리... 우리 전통소리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7. 비혼 飛魂 (씻김) - 진도 씻김굿을 재구성한 곡으로 진양조, 중모리, 굿거리 등 다양한 장단과 소리에 피아노, 콘트라베이스의 화성이 함께 더해진 곡으로 모든 이의 맺힌 한을 풀어내는 듯한 유장한 가무악 퍼포먼스다.8. 향취 響醉 (사물놀이) - 씨앗에서 그 작은 싹이 올라옴에도 보이지 않는 삶의 투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곡이다. 雲雨風雷(운우풍뢰)를 상징하는 전통 타악기를 통하여 삶의 강인한 생명과 환희를 讚頌(찬송)한다.9. 이바디 (축제) - 이바디는 축제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신명나는 전통음악과 재즈 연주자들의 협연 그리고 다양하고 역동적인 연희놀음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축제의 마당을 보여준다.
    • 공연소식
    • 서울
    2018-09-28
  • [9월 5일 한국문화의집] 담담풍류_김일구 명인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담담풍류 김일구 명인 장소 한국문화의집 날짜 2018.09.05 (수) 시간 오후 8시 티켓료 전석 만원 출연진 김일구 문의전화 02-3011-1720 공연정보 더보기 ▶ http://goo.gl/G85h5m 담담풍류 말씀 담(談) = 말씀 언(言) + 불꽃 염(炎) 놋화로에 뭉근하게 타오르는 불을 끼고 앉아 벗과 함께 나누는 풍류정담(風流情談) 운치 있는 사랑방에 둘러앉아 허물없는 벗들과 정담을 나눠가는 시공(時空)속의 풍류객이 되어 문화계 명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공연을 감상하는 렉처콘서트이다. 2018년 담담풍류의 두 번째 무대는 판소리, 아쟁, 가야금, 거문고, 창극에 이르기까지 전통예술의 전 분야에 두루 능한 이 시대 최고의 명인 김일구 선생을 초청하여 전통예술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국악 인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예술세계와 수련 과정을 들여다보고, 향후 국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김일구 선생이 직접 판소리, 김일구류 아쟁산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뿐만 아니라 한갑득류 거문고산조까지 연주하며 다재다능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김일구류 아쟁산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판소리 심청가 中 눈 뜨는 대목 김일구 金一球, 1940년 김일구 명창은 8살 때부터 소리길에 들어섰다. 공대일, 김상룡, 장영찬, 정권진, 성우향 명창 문하를 거치면서 소리를 익혔고, 특히 박봉술 선생으로부터 <적벽가>를 사사 받아 송흥록 – 송광록 -송우룡 – 송만갑 - 박봉술로 이어지는 계보의 적자가 되었다. 또한 장월중선 문하에서 아쟁을, 원옥화 문하에서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한갑득 문하에서 거문고 산조를 익혀 판소리는 물론 아쟁, 가야금, 거문고 연주까지 다재다능한 예인으로 꼽힌다. 여성국극단 반주자와 여러 곳의 국악원 강사를 거쳐 국립창극단, 국립국악원에서 활동한 그는 성음이 좋아 판소리 사설의 전달이 명료하고 드라마틱한 목소리와 해학적 연기로 판을 장악해가는 능력이 뛰어나 귀 명창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또한 그는 스승 장월중선에게 전수받은 가락을 바탕으로 약 25분정도 추가하여 발전된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정립하였다. 각 장단마다 청이 변하는 변청가락과 변화무쌍한 음색의 조화가 특징인데, 이를 두고 故 최종민 선생은 “김일구의 아쟁은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평한 바 있다. 여든을 앞두고도 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 김일구 선생은 100여 회의 판소리 완창 발표회, 1,000여 편의 창극, 전통예술 공연 무대에 올라 활발히 활약하고 있으며, 전문예술법인 온고을소리청 대표로 국악예술인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 공연소식
    • 서울
    2018-08-23
  • [10월 13일] 거문고 허윤정 - 예술의전당 2017 클래식 스타 시리즈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예술의전당 2017 클래식 스타 시리즈 - Stage 2: 거문고 허윤정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지도보기 날짜 2017년 10월 13일 (금) 시간 오후 8:00 티켓료 R석 5만원 | S석 4만원 | A석 3만원 출연진 거문고: ▶허윤정 프로필 | 아쟁, 장구: ▶ 이태백 프로필 | 소리: ▶ 유태평양 프로필 | 고수: ▶ 김태영 프로필 | 대금: ▶ 이아람 프로필 | 타악기: 황민왕 | 기타: 오정수 문의전화 02-580-1300 공연정보 더보기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28491 경계를 허무는 전통과 컨템포러리 국악의 만남 “거문고 허윤정”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올해 <클래식 스타 시리즈>에서도 국악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10월 13일(금)에는 퓨전국악밴드로 활동하며 참신한 연주와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는 거문고 주자 허윤정이 선보이는 색다른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1부는 거문고의 음색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정통 국악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허윤정의 깊이 있는 연주와 울림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2부에서는 퓨전국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 무대가 펼쳐진다. 허윤정이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악에 재즈를 더한 연주로 주목받고 있는 블랙스트링(거문고 허윤정, 대금 이아람, 타악기 황민왕, 기타 오정수)이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국악의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관객들은 다양한 종류의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홀을 가득 채우는, 그야말로 소리의 향연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소리 유태평양, 고수 김태영, 대금 이아람, 타악기 황민왕, 기타 오정수, 아쟁/장구 이태백 등이 출연하여 거문고 주자 허윤정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연주자 소개 허윤정은 전통음악과 창작음악, 현대음악, 아방가르드와 즉흥음악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독보적인 연주자로, 전통 음악에 대한 끝없는 탐구, 수련과 더불어 21세기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총 30 여회 이상 개인 독주회를 가졌고, 특히 해외에서 허윤정 자신만의 음악세계와 거문고를 알리는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해외 연주가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허윤정은 이러한 협업에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연주가이다. 2007-2008년 뉴욕 Asian Cultural Council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뉴욕에서 활동한 허윤정은, 이 후 더욱 활발하게 해외 연주가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뉴욕의 색소포니스트 Ned Rothenberg, John Zorn, 첼리스트 Erik Friedlander, 베이시스트 Mark Dresser, 타악기주자 Satoshi Takeishi, Susie Ibarra 등과 교류하고, 영국의 재즈 클라리넷 연주가 Arun Ghosh, 재즈 색소포니스트 Tim Garland, 피아니스트 Gwilym Simcock, 퍼커셔니스트 Asaf Sirkis 등과 협연하였으며, 폴란드 Oleś Brothers, 이스라엘의 월드뮤직 스타 Idan Raichel, 일본의 즉흥음악 베이시스트 Tetsu Saitoh, 바이올리니스트 Kita Naoki,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과 협업하였다. Cuban Nomadic Project를 통해 쿠바 국립 오페라극장의 Gloria Casas Azqui(소프라노), Carlos Alberto Laurencio Milian(바리톤), 젊은 쿠바 4인조 재즈그룹 Grupo Aire de Concierto, 뉴질랜드의 밴드 “The Jac”과 협연하였다. 올 가을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K-Music Festval에서 영국의 Northumbrian pipes 연주가인 Kathryn Tickell과의 협연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하고 실력 있는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는 허윤정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음악적 깊이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연주자와 교육가로서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프로그램 거문고 산조 Geomungo Sanjo 인당, 청의바다 Indang, Sea of Sim Cheong 육자배기 Southern folk song, Yukjabaegi 복선 Underplot 소리의 시선 Sound Perspective 흐르는, 떠가는 Flowing Floating (밴드: Black String) 외 다수
    • 공연소식
    • 서울
    2017-09-21
  • 5월 2일~5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어린이 국악뮤지컬 '용궁으로 간 토끼'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공연명 : '용궁으로 간 토끼'2. 장소 : 대전 만년동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지도보기3. 날짜 : 2017년 5월 2일~5일4. 시간 : 2일 4일 오전 11시, 3일 5일 오전 11시 오후 2시 5. 티켓료 : 5,000원6. 문의 : 042-270-85837. 공연정보 더보기 ▶ http://bit.ly/2oXqKTP◆ 시놉시스 : 『죽을병에 걸린 용왕에게 특효약이라는 토끼의 간을 찾으러 육지로 올라간 자라는 훈련대장을 시켜준다고 거짓말을 하며 토끼를 용궁으로 데리고 온다. 토끼의 간을 먹여야 살 수 있다는 용왕의 말을 들은 토끼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낸다. 용궁음악이 별로 좋지 않다며 육지의 춤과 음악이 용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다고 한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자라는 토끼를 바로 죽이지 않고 육지음악을 들어보자며 대결을 벌인다. 누가누가 이기려나1?? 한 치도 양보 없는 육지음악과 용궁음악의 한 판 승부1! 지금 용궁 속으로 같이 가보자~』
    • 공연소식
    • 대전,충청
    2017-04-21

국악동영상 검색결과

  • [퓨전국악 동영상] 효녀 심청이 - 퓨전국악그룹 '화양연화'
    화양연화는 재즈피아니스트 강윤숙을 주축으로 구성된 퓨전국악그룹으로 판소리와 장구, 가야금, 대금, 비올라, 피아노, 드럼, 베이스 등 국악과 클래식, 재즈분야를 아우르는 단체로 2020년 임방울국악제 퓨전국악 부문경연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인생에서 꽃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의미처럼, 화양연화는 국악을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편곡해 아름답고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 보컬 ▶ 이은비 프로필
    • 국악동영상
    • 신국악
    • 퓨전(크로스오버)
    2022-12-16
  • [국악동영상] 판소리 적벽가 中 새타령 - 소리 안이호, 고수 고정훈
    ▶ 안이호 프로필 ▶ 고정훈 프로필 병사들의 억울한 죽음을 대변해주는 대목으로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도망을 가다가 자신을 둘어싼 새소리에 죽은 군사들의 울음이 떠올라 뉘우치며 탄식하는 내용이다.
    • 국악동영상
    • 민속악(성악)
    2022-09-13
  • 뺑덕이 - 퓨전국악그룹 브이스타 (VSTAR)
    브이스타는 2012년도에 결성된 퓨전국악그룹이다.오디션 프로그램 "TVN 코리아 갓 텔런트"에서는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가 이름을 알렸으며,그 후 박칼린 감독과의 인연으로 버라이어티 쑈 카붐을 함께 했다. 2021 jtbc풍류대장에 출연하여 독보적인 색깔을 보여주었고 브이스타는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 현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그룹이다.
    • 국악동영상
    • 신국악
    • 퓨전(크로스오버)
    2021-11-01
  • 세계에 울려퍼진 BTS ‘대취타’…국악 르네상스 열리나? 국악·대중문화, 글로벌서 윈윈 해야
    슈가 신곡으로 전통음악 관심 폭증사극 세트 고집하고 뿌리에 천착뮤비 유튜브 조회수 8000만 뷰 퓨전 사극 영화 한 편인 듯, 조선 궁궐과 저잣거리에서 폭군과 천민이 1인 2역으로 교차하는 흥미로운 대립 구도 속에 도전적인 랩 가사가 중독적으로 되풀이된다. 유려한 한국적 영상미와 함께 뮤직비디오 영상을 가득 채우는 건 시원하게 울리는 전통음악 대취타 연주다. BTS 멤버 슈가가 ‘어거스트 디(Agust D)’란 이름으로 지난달 22일 발표한 신곡 ‘대취타’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이번 주 빌보드 차트 톱 커런트 앨범 세일즈 76위,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5위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도 올라 세계 팝 음악 시장 양대 차트에 진입한 한국 최초의 솔로 가수가 됐다. 전 세계 아미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뮤직비디오는 단숨에 유튜브 조회 수 8000만 뷰에 육박했고, 아미의 리액션 동영상도 70만 뷰를 넘어섰다. 아미들은 고유의 한국미에 “오 마이 갓”을 연발하고, “울려라 대취타” 후렴구를 따라 하며 함께 리듬을 탄다. 전통 궁중음악 ‘대취타’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음원을 제공한 국립국악원은 4년 전 영상이 2주 만에 몇백 뷰에서 14만 뷰로 폭증하자 제목을 영어로 바꾸고 영어자막까지 넣으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샛노란 철릭(天翼)에 남색 허리띠를 두르고 꿩 깃 초립을 쓴 취타대의 위용에 “드디어 찾았다. 오리지널 사운드가 이런 거구나. 한국 문화는 정말 흥미롭다” “BTS 덕에 한국문화를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관련뉴스
    2020-06-14
  • 상령산 - 대금 김상준, 거문고 고보석 (김상준의 대금연주회 '화이부동')
    고즈넉한 긴호흡의 '평조 다스름'으로 시작된 이번 무대의 첫 곡은 '상령산'이다. 거문고와 함께하는 평조회상으로 대금 연주자 김상준은 마치 '취태령지곡'의 상령산을 연주하듯 멋스럽게 풀어서 연주하는 ‘풀가락’으로 휘몰아 칠 것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해탈의 자유를 표현 할 수 있듯이, 김상준은 오늘 원가락을 넘나들며 풀어서 연주한다는 ‘해탄’ 가락을 선보인다. ▶ 김상준 프로필 ▶ 고보석 프로필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 [National Gugak Center]
    • 국악동영상
    • 정악
    • 궁정악.풍류
    2018-04-02
  • [연합뉴스 TV ] 사마르칸트 국제 민족음악 축제서 환호 받은 '국악'
    65개국이 출전한 경연대회에 한국 국악팀 '풍류'가 무대에 올라 레기스탄 광장 무대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 국악동영상
    • 기타
    • 다큐.강의.정보
    2016-01-21
  • [불교명상(Buddhist Meditation)] 道 명상음악 모음선
    [불교명상(Buddhist Meditation)]道 명상음악 모음선 1-11집(Full Album)01 道 명상음악 01집-마음을 여는 선음악(대금합주곡)-01-청산에 머물다 가리라(00:01)02-02-산에 삶(05:16) 03-03-도(10:01) 04-04-무제(15:19) 05-05-염불승(19:49)06-06-창량사(25:26) 07-07-이 마음 빈 들이여(30:38) 08-08-서산에 해는 지고(35:52)09 道 명상음악 02집-마음을 여는 선음악(대금.피리합주곡)-01-님을 보내며(39:28)10-02-매화(43:32) 11-03-백년심(47:33) 12-04-산마루에 올라(51:50)13-05-돌난간에 누워(56:37) 14-06-가을날의 회포(01:01:26)15-07-홀로 앉아서(01:05:43) 16-08-고향에 돌아온다(09:42) 17-09-그림자를 보고(01:14:37) 18-10-꿈을 깨고서(01:19:25) 19 道 명상음악 03집-마음을 여는 선음악(대금,색소폰합주곡)-01-심우송(01:23:22)20-02-산유화(01:27:45) 21-03-도의 마음(01:31:23) 22-04-늦가을(01:35:03)23-05-제행무상(01:39:31) 24-06-어머님을 보내며(01:43:58)25-07-색시공(01:47:56) 26-08-무심(01:52:09)27 道 명상음악 04집-마음을 여는 선음악(국악과 현악과의 만남)-01-천년의 세월(01:56:00) 28-02-일체 수월(01:59:27) 29-03-육도 만행(02:02:54) 30-04-심우송(02:06:53) 31-05-산은 스스로 푸르고(02:11:16) 32-06-밤 길(02:16:00) 33-07-꿈속에서(02:20:42) 34-08-달밤에 홀로(02:24:38)35 道 명상음악 05집-마음을 여는 선음악(대금연주곡)-01-한오백년(02:29:01)36-02-서동의노래(02:32:16) 37-03-티끌같은 이마음(02:34:41) 38-04-봄에는 꽃피고(02:37:13) 39-05-가을소리(02:39:47) 40-06-바람결 노래(02:41:43)41-07-청학동의가을(02:43:59) 42-08-묻노니 자네는 누구인가(02:47:46)43-09-정선아리랑(02:50:06) 44-10-山(02:52:04) 45-11-작은길(02:56:23)46-12-山中의 맛(02:59:33) 47-13-山노래(03:02:19)48 道 명상음악 06집-마음을 여는 선음악(대금.가야금합주곡)-01-선정(禪定)(03:04:25)49-02-산으로 돌아가는길(03:10:14)★ 50-03-홀연히 나를 알아보니(03:14:29)-중략-115 道 명상음악 11집-마음을 여는 선음악(플릇합주곡)-B05 선(07 30:40)
    • 국악동영상
    • 민속악(종합.무용)
    • 굿.무악.종교
    2015-04-15
  • 가야금병창 심청가 中 올라간다 ~ 방아타령 - 이선
    ▶ 이선 프로필 가야금병창 이선, 고수 한성수
    • 국악동영상
    • 민속악(성악)
    • 판소리.병창.창극
    2014-03-01
  • 창극 심청전 中 황성 올라가는 대목 - 남상일, 서정금, 김학용
    ▶ 남상일 프로필 ▶서정금 프로필 ▶김학용 프로필
    • 국악동영상
    • 민속악(성악)
    • 판소리.병창.창극
    2014-01-20
  • 박혜련 가야금병창 독주회
    박혜련 - 제35회 전국 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대상 대통령상 수상 (2011년)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프로그램 - 가야금산조'합동정월류' - 단가'죽장망혜' - 판소리 심청가 中 '황성올라가는 대목 ~ 심봉사 눈뜨는 대목' - 25현가야금병창을 위한 '가야송' 작곡:박범훈 고수:정준호
    • 국악동영상
    • 민속악(성악)
    • 판소리.병창.창극
    2013-03-13

국악인프로필 검색결과

  • 이슬이 프로필 - 가야금병창
    ☆ 이슬이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천주미, 안숙선 선생 사사단국대학교 국악과 가야금전공 졸업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 가야금병창전공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전수자 활동 경력 안숙선 판소리보존회 회원가야금병창단 잇;고(琴) 단원 수상 경력 제5회 칠곡 향사 가야금병창전국대회 대상 (국회의장상)제42회 전국탄금대 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가야금병창 최우수상제19회 대한민국 가야금병창 대제전 명인부 최우수상제48회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대회 가야금병창 일반부 차하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tWScdNWBhyk [심청가 中 횡성 올라가는 대목]https://youtu.be/Ou_VqMlNWAA [심청가 中 심봉사 눈 뜨는 대목]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3-04-05
  • 윤현명 프로필 - 피리연주가
    ☆ 윤현명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태평소, 피리연주가 수련과정ㅣ학력 정재국, 최경만, 윤형욱, 최명화, 박승희, 오영미, 신경환, 이상동, 나영선 선생 사사 광주예술고등학교 졸업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 활동 경력 퓨전국악밴드 ‘올라’ 및 전통국악실내악단 '율' 단원 수상 경력 제14회 빛고을전국국악경연대회 기악 일반부 대상 홈페이지ㅣSNS https://ko-kr.facebook.com/hyeonmyeong.yun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JfFstLavDKc [토요상설공연 - 조아람 판소리, 윤현명 피리산조 무대 하이라이트]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22-07-06
  • 방수지 - 판소리
    ☆ 방수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전남대학교 국악과 졸업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전남무형문화재 제29-2호 동편제 춘향가 이수자 활동 경력 여성민요그룹 '여음' 대표국악 POP밴드 '올라' 동인 수상 경력 제11회 화순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종합대상 (국회의장상)제22회 해남땅끝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0WbYaN_XHNM [양마에TV - 판소리란 무엇일까요]https://youtu.be/vkbv5ASwRI4 [난감하네] 기타 여음 (音) - 방수지, 조아람, 김혜지, 안지영, 전도연'여음'은 남도민요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의 민요를 안무와 소품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흥과 멋을 보다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라,마,바
    2022-06-22
  • 심세희 - 가야금병창
    ☆ 심세희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악강사 가야금병창단 별밭가얏고 단원 수상 경력 제36회 춘향국악대전 학생부 대상 2013 제2회 향사가야금병창전국대회 대상 2017 제15회 전국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 https://goo.gl/DpQoCC [별밭가얏고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m-8zdRsRiJ4 [심청가 中 올라간다~방아타령]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7-05-16
  • 고영열 프로필 - 판소리
    ☆ 고영열 프로필 (1993년 광주광역시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윤진철, 마미숙, 조주선 선생 사사 광주예술고등학교 국악과 졸업한양대학교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영화 '도리화가’ 동시녹음 참여 밴드 '이스턴모스트' 멤버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 (팬텀싱어3 준우승) 멤버 수상 경력 2014 제34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판소리 금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S9cyz7ZM4f0 [두번째달 - 이별가 (feat. 고영열) 합주 영상] https://youtu.be/PTBD9Fi3--k [진정 난 몰랐네 - 풍류대장 6회] 기타 이스턴모스트는 판소리, 기타, 드럼, 퍼커션, 베이스, 키보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까지!한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음악가 17명이 함께 모여 음악을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팀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16-07-04
  • 최현미 - 가야금병창
    ☆ 최현미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활동 경력 향사 박귀희명창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안숙선가야금병창보존회 회원 수상 경력 2019 제39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동상2022 제45회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CxTDfDUSJDQ [가야금병창 '심청가 중 화초타령~올라간다' (원경애,김영애,최현미)]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6-02-19
  • 문영주 프로필 - 판소리
    ☆ 문영주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창극 수련과정ㅣ학력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전북무형문화제 제2호 심청가 이수자 활동 경력 박록주 흥보가 완창 발표회 동초제 심청가 완창 발표회 현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서산지부장 수상 경력 2003 제29회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 일반부 장원 (문화관광부장관상)2005 제6회 공주 박동진 명창명고대회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문화관광부장관상)2007 제11회 구례 송만갑선생추모 전국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대상 (국무총리상)2008 제11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판소리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2SkaslB9Efs [심청가 中 심봉사 탄식하는 대목 ~ 황성 올라가는 대목]https://youtu.be/Kk72KhQeHk8 [심청가 中 타루비 앞에서 비는 대목]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라,마,바
    2015-07-27
  • 천주미 프로필 - 가야금병창
    ☆ 천주미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지수복, 안옥선, 안숙선 선생 사사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박사과정 수료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활동 경력 2006년 뮤지컬'명성황후' 진령군역 컴퍼니「더안」대표 및 창작그룹「The 안(安)」예술감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희예술학부 강사 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 수상 경력 1999년 제17회 전국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병창부문 장원 2002년 제12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최우수상 (문화부장관) 2003년 제21회 신라문화제전국국악대제전 현악부문 최우수 2005년 제31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일반부 차상 2008년 제3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일반부 차상 2009년 제18회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대통령상 2023 KBS국악대상 판소리상 홈페이지ㅣSNS ▶http://www.lovekukak.co.kr [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http://youtu.be/kqhJCJSAP2M [애수의 가을밤] ▶http://youtu.be/il5TkKe84S4 [창작곡 째깍째깍] ▶ https://youtu.be/A8k9q0yoFkU [심청가 中 올라간다] 기타 가야금병창 천수민이 친동생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3-02-15
  • 서정금 - 판소리
    ☆ 서정금 프로필 (1976년 전북 남원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창극 수련과정ㅣ학력 강도근선생 동편제, 안숙선선생 서편제 ,남해성선생 수궁가 판소리 사사 남원 한남여자고등학교 졸업 단국대 국악과 졸업 (1999년) 단국대 대학원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1999년~현재 국립창극단원 수상 경력 전국국악경연대회 예술제 일반부 우수상 청소년국악제 차하 전국민요경창대회 단체일반부 장려상 국립극장 최우수 창극인상 수상 2020 제28회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dLGTX61HW84 [창극 심청전 中 - 황성 올라가는 대목 (남상일, 서정금, 김학용)] 기타 국립창극단의 '명품조연' 으로 공연에 활역을 주는 감초 역활을 하고 있으며, 판소리의 매력중 하나인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잘 빛나게 하는 배우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2-11-19
  • 김학용 - 판소리
    ☆ 김학용 프로필 (1965년 전북 임실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창극 수련과정ㅣ학력 군산상업고등학교 졸업 성운선, 오정숙, 은희진 선생 사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활동 경력 현재 국립창극단 단원 수상 경력 2001년 남도민요경창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2006년 국악협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2006년 국립중앙극장장 표창2007년 박동진 명고․명창대회 판소리부문 최우수상 2011년 제14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dLGTX61HW84 [심청전 中 황성 올라가는 대목 (남상일, 서정금, 김학용)]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12-11-1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