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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祝] 조순자 가곡전수관장, 제29회 방일영국악상 받는다
    1994년 국악의 해 기념해 제정된 국악 관련 국내 최고 권위 공로상가곡 분야 첫 선정...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후학 양성 등 공로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가곡의 맥을 잇고 있는 조순자(78) 가곡전수관 관장이 국내 국악 관련 상으로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방일영국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 조순자 프로필 방일영국악상은 1994년 국악의 해를 기념해 제정된 공로상인데, 국악의 올바른 전승과 보급에 앞장서서 전통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국악인들의 업적을 널리 기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 상은 매년 일생을 국악 분야에 헌신하면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1명을 선정해 11월에 발표하고 시상한다. 올해로 29회째를 맞았다. 조순자 관장은 "선정 이유가 우리 전통 가곡이 비인기 종목인데 제가 경상도에 가서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으며 제자를 잘 키웠다는 점인데, 지금 이 상을 받게 된 것도 많이 늦은 감이 있다더라"며 심사위원장(한명희·'비목' 작사자)의 말을 전했다. 조 관장은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의 국악연구생 2기생으로 선발되면서 국악에 입문했다. 그때가 14세였다. 이후 1951년 설립된 국립국악원에서 이왕직아악부 출신 이주환 선생을 만나 가곡·가사·시조 등을 전수했고 1964년엔 처음으로 일본 공연에서 스승과 함께 이중창을 소화해 국악계의 인정을 받았다. ▶ 해당기사 더보기 1994년부터 방일영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제1회), 만당 이혜구(제2회), 박동진(제3회), 심소 김천흥(제4회), 관제 성경린(제5회), 만당 오복녀(제6회), 양암 정광수(제7회), 석암 정경태(제8회), 낭월 이은관(제9회), 황병기(제10회), 묵계월(제11회), 이생강(제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이재숙(제24회), 송방송(제25회), 신영희(제26회) , 송순섭(제27회), 김일구(제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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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6
  • [祝] 2021 제28회 ‘방일영국악상’ 김일구 명창 선정
    방일영문화재단(이사장 조연흥)이 수여하는 ‘방일영국악상’ 제28회 수상자로 김일구(81·사진·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명창이 선정됐다. 김 명창은 판소리뿐 아니라 아쟁·가야금 산조에 두루 능해서 ‘3재(三才)’ 소리를 듣는 국악계의 르네상스인이다. 김 명창은 1987년 ‘적벽가’ 첫 완창 발표회를 연 뒤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판소리 완창 무대를 열었다.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회는 “판소리는 물론, 아쟁 산조와 가야금 산조 같은 기악부터 작창과 창극까지 각 분야에 두루 능한 예인으로 국악 계승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해당기사 더보기 1994년부터 방일영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제1회), 만당 이혜구(제2회), 박동진(제3회), 심소 김천흥(제4회), 관제 성경린(제5회), 만당 오복녀(제6회), 양암 정광수(제7회), 석암 정경태(제8회), 낭월 이은관(제9회), 황병기(제10회), 묵계월(제11회), 이생강(제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이재숙(제24회), 송방송(제25회), 신영희(제26회) , 송순섭(제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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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5
  • [祝] 고흥 출신 송순섭 명창 '제27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
    고흥 출신 송순섭(84·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 보유자) 명창이 제27회 방일영국악상을 수상했다. 방일영문화재단이 수상하는 방일영국악상은 국악전승과 보급에 공헌한 명인·명창에게 수여하는 국악상으로 상금은 7000만원이다.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회는 “폭포수 내리치듯 장쾌한 소리로 무대를 활기차게 이끌어 온 송순섭 명창은 여든이 가까운 나이까지 ‘적벽가’를 완창하며 예술혼을 불사른 ‘영원한 현역’”이라며 “남성 특유의 호방함과 툭툭 던지는 듯한 시원함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적벽가’를 완벽히 소화, 특유의 힘 있는 소리를 잘 표현해준 예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해당기사 더보기 1994년부터 방일영 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제1회), 만당 이혜구(제2회), 박동진(제3회), 심소 김천흥(제4회), 관제 성경린(제5회), 만당 오복녀(제6회), 양암 정광수(제7회), 석암 정경태(제8회), 낭월 이은관(제9회), 황병기(제10회), 묵계월(제11회), 이생강(제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이재숙(제24회), 송방송(제25회), 신영희(제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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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6
  • [祝] 제25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송방송' - "우리 음악 뿌리찾기 60년.. 이젠 살맛 납니다"
    제25회 방일영국악상 송방송 유신(維新) 말기였던 1977년 캐나다 맥길대 음대 교수로 있던 그는 단호했다. "돌아가겠어, 조국으로." 교수도 아닌, 국립국악원장이란 공직으로 귀국을 결정했을 때 주위에선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김포공항을 빠져나올 때 그가 보물처럼 가슴팍에 품었던 건 국악용어를 빼곡히 채워넣은 낱말 카드 수백 장. "이걸로 우리 음악의 용어사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한국음악학'은 그가 "아내도, 자녀도 한쪽으로 밀쳐둔 채 모든 걸 바친 인생 최대의 과제"였다. 제25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송방송(76)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얘기다. 방일영국악상이 음악이론 학자에게 주어진 것은 만당 이혜구(2회), 이보형(16회)에 이어 세 번째다. 송방송은 1960년대 말 국악계 인사로서는 드물게 선진 음악학의 정수(精髓)를 배워 국내 음악학의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국립국악원장, 문화재 전문위원, 한예종 교수를 지내며 우리 음악의 뿌리를 집대성한 산증인으로 꼽힌다. 1991년 펴낸 저서 '조선왕조실록 음악기사 총색인'은 후배 연구자들에게 든든한 발판이 됐다. 조선 세종 때 궁중음악 연주를 담당했던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의 체제와 사회적 신분을 살피고 악공·악생들의 봉록 제도 등을 고찰했다. ▶해당기사 더보기 1994년부터 방일영 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제1회), 만당 이혜구(제2회), 박동진(제3회), 심소 김천흥(제4회), 관제 성경린(제5회), 만당 오복녀(제6회), 양암 정광수(제7회), 석암 정경태(제8회), 낭월 이은관(제9회), 황병기(제10회), 묵계월(제11회), 이생강(제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이재숙(제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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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6
  • 우정사업본부, 국악인 (김천흥,신쾌동,김윤덕) 기념우표 '한국의 소리' 3종 발행
    우정사업본부는 국악인 3명의 모습을 담은 '한국의 소리' 기념우표 3종 총 75만6천장을 4월 30일 발행했다. 이번 기념우표에는 전통무용가이자 해금 연주가인 김천흥(1909∼2007), 거문고 산조의 대가로 불리는 신쾌동(1910∼1977), 가야금 산조의 명인 김윤덕(1918∼1978) 씨의 모습이 각각 담겼다. 우표 전지에 있는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국악인 3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번 국악인 우표 발행이 전통 음악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고 국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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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2
  • [祝] "국악과 이 시대 사람들 잇는 다리 되겠다" -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가야금 名人 이재숙'
    축하공연은 가야금 축제… 제자 6명과 산조 선보여 갈채 "저는 선생님 복이 참 많아요. 국악을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시킨 이혜구 선생님과 제게 국악을 전공하라고 적극 권유하신 황임춘 선생님, 가야금을 가르쳐주신 황병기 선생님까지…. 그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11월 16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4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 수상자 이재숙(李在淑·76) 서울대 명예교수는 상패와 상금(7000만원)을 받자마자 스승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 이재숙 프로필 국악 외길을 걸으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그는 평생 '처음'이란 단어를 몰고 다니며 독보적 길을 개척한 국악인. 하지만 자신이 꽃피운 업적은 "나보다 먼저 가야금에 피나는 애정을 쏟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며 "내 역할은 정통 국악인과 이 시대 사람들을 잇는 다리가 되는 것. 귀한 상으로 인정도 받았으니 그 뜻과 기대에 더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1959년 서울대 국악과 첫 입학생으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6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야금 독주회를 열어 지금과 같은 국악 독주회의 전형을 세웠다. 스물여섯에 최연소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된 뒤에는 가야금 여섯 바탕의 1세대 명인들을 직접 찾아가 입으로만 전해지던 그들의 산조 연주를 녹음하고 악보로 써서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게 '가야금 산조' 책으로 펴냈다. 그 후에도 30여 년간 증보 작업에 매달려 2008년 '가야금 산조 여섯 바탕 전집'으로 완성했다. 40년 가까이 후학 양성에 힘써 30명 가까운 교수 제자를 배출한 것도 그다. 이현재 전 국무총리는 축사에서 "이재숙 교수는 소멸되거나 변질되기 쉬운 구전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국악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라고 했다. 축하 공연은 가야금 축제나 다름없었다. 먼저 이 교수의 제자 세 명이 17현금으로 황병기의 가야금 삼중주 '달하노피곰'을 연주했다. 가야금앙상블 '사계'는 기타 사중주곡 '테크노'를 25현금으로 들려줬다.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제자 여섯 명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 교수는 가야금 산조 여섯 바탕을 악장별로 재구성한 합주를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 해당기사 더보기 1994년부터 방일영 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1회), 만당 이혜구(2회), 박동진(3회), 심소 김천흥(4회), 관제 성경린(5회), 만당 오복녀(6회), 양암 정광수(7회), 석암 정경태(8회), 낭월 이은관(9회), 황병기(10회), 묵계월(11회), 이생강(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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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17
  • "우리춤, 세계에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 - 김묘선 전통무용가 인터뷰
    한국의 춤꾼, 삭발하지 않은 스님, 일본 불교 최초의 한국 여성 주지. 이 모든 타이틀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한국무용가 김묘선씨다. 김씨는 한국 전통춤의 거목이자 인간문화재로 2015년에 작고한 우봉(宇峰)이매방 선생의 수제자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로 활동 중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97호 '살풀이 춤' 이수자로서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 서훈'과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 대통령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무용계에 많은 업적을 일궈낸 전통무용가로서 걸어온 외롭고 험난한 길이 50년이다. 춤꾼 50년, 역경의 연속이었다. 지난 1995년 시코쿠 헨로의 13번째 절인 대일사의 주지스님과 결혼했지만 2007년 뇌경색으로 남편을 잃었다. 아들이 10살 때 일이다. 그는 남편의 길을 이었다. 2년동안 억척같은 노력으로 공부해 주지시험을 통과한 후 주지직을 승계했다. 일본은 대처승이 대부분이며 가족 간 승계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외국인 여성이 주지가 된다는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배타적이고 위협적이기도 했던 현지인들의 편견을 꿋꿋이 견뎌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수행한 김묘선은 존경받는 대일사의 주지스님으로 매주 한국 전통춤 승무를 전수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김묘선 프로필 - 어떤 계기로 춤을 시작하게 됐나 농악을 하신 외할아버지 영향이 컸다. 어릴 때부터 육남매가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 갔는데, 농악하시는 외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춤을 접하게 됐다. 당시 10살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봐주시고 이곳저곳 데리고 돌아다니셨다. 정식으로 입문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터다. 궁중무용의 대가인 고 김천흥 선생을 첫 스승으로 맞았다. 그는 궁중무용보다 민속무용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매방 선생에게 소개해줬다. 그러면서 이매방 선생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민속무용을 배우게 됐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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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12
  • [김승국의 국악담론] 8.15 해방 직후 격동기의 국악계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1945년 8월 15일 36년간의 고난의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자 바로 다음 날인 8월 16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의 ‘음악건설본부’(약칭 ‘음건’)가 설립되고 여기에 작곡부, 성악부, 기악부, 국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음건’은 국악과 양악에 걸친 모든 음악가의 조직이었는데, 명실 공히 한국음악인의 집결체가 되었다. ‘음건’의 ‘국악위원회’는 아악과 민속악의 갈등 구도를 끝내고 해방된 조국에서 국악의 건전한 계승과 발전을 꾀하기 위하여 민속악계를 대표하는 박헌봉과 아악계를 대표하는 함화진 사이에 타협이 성립되어 ‘국악건설본부’라고 개칭을 하여 국악계 각 분야의 대표로서 위원회를 구성하여 발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다 동년 8월 29일에는 ‘국악건설본부’의 발전적인 해산과 더불어 ‘국악회’가 창설되었고 동년 10월 7일에 ‘국악원’으로 명칭을 개정하고 부서를 개편하여 원장․부원장․사무국․문화국으로 나누고 문화국에는 다시 아악․정악․기악․창악․무용으로 가르고, 각 부서의 책임자까지 발표하였다. 당시 ‘국악원’의 부서 및 임원을 보면 위원장은 함화진(咸和鎭)이었고, 부위원장은 박헌봉(朴憲鳳)이었다. 함화진은 조선조 장악원 악사 출신으로 1932년부터 1939년까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아악사장(雅樂士長) 직을 맡아 지내다가 이후 향토음악에 전념하기로 하고 아악부를 떠났다. ‘조선음악통론’을 통해 근대이후 처음으로 음악역사학의 체계를 세웠으나 해방 후 1947년 좌익계 대량검거 선풍에 피검됐다가 월북의 길을 택하는 비운을 겪는다. 박헌봉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가야금, 장단, 판소리, 민요, 정가 등 민속악과 아악의 실기와 이론을 두루 능통한 국악이론가 및 평론가였다. 8․15 해방 후 주도적으로 국악재건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국악원장’, 서울시문화위원, 국립극장운영위원, 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을 역임하였다. 국악교육을 위하여 국악인을 규합하여 1960년 오늘날 국립전통예중·고의 전신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저서로는 ‘창악대강(唱樂大綱).’ 등의 저서가 있다. 함화진 박헌봉이 이끄는 ‘국악원’의 사무국은 유기룡(劉起龍), 문화국은 장인식(張寅湜), 김윤덕(金允德), 김천흥(金千興), 정남희(丁南希), 최경식(崔景植), 이병성(李炳星) 등이 맡고 있었다. 국악원의 구성원 면모나 사업부서를 볼 때 당시 ‘국악원’은 소위 국악계의 모든 역량이 결집됐음을 알 수 있다. ‘국악원’은 전통에 대한 해석과 조선음악의 원리 파악이라는 근본에 대한 연구작업은 물론 각종 공연활동을 전개했으며, 또한 농악경연대회, 농악채보에 관한 좌담회, 음악서적발간, 우리음악을 오선보에 옮기는 작업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그러다 1947년 8월 ‘국악원’ 위원장 함화진이 좌익연좌 혐의로 은퇴하고, 동년 9월에 부위원장 박헌봉이 위원장을 맡아 기구를 총무국, 공연국, 기획국, 서무부, 창악부, 민요부, 기악부, 무용부, 국극부, 연구부로 개편하고 ‘국극사’, ‘국극협회’, ‘조선창극단’, ‘김연수창극단’, ‘임방울일행’의 5개 산하 창극단체를 두고 활발한 국악 부흥운동을 펼쳐 나갔다. 한편 8.15 해방 후 ‘이왕직아악부’는 ‘구왕궁아악부’로 개칭하였으나 구왕궁 사무처의 기능이 마비상태에 있어 ‘아악부’ 전체회의를 거쳐 정국과 사회가 안정되어 ‘아악부’가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우선 부원들이 자치적으로 ‘아악부’를 운영하기로 하였으며 장차 ‘국립국악원’ 개원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아악부’는 아악의 전통을 유지하고 아악인의 사산(四散)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는 국가의 보호 아래에 아악부를 두어야만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1948년(단기 4281년) 8월 ‘아악부’를 대표한 아악사장 이주환의 명의로 국회에 ‘아악부 국영안’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 청원서가 받아들여져 동년 12월 17일 제115차 국회 본회의에서 ‘아악원 국영에 관한 청원서에 관한 의견서’가 가결되었고 정부에 대한 청원 절차를 거쳐 1950년 1월 19일 ‘대통령령 제271호’로 ‘국립국악원’ 직제가 공포되었다. 원래 아악부에서의 청원은 ‘국립아악부’, 또는 ‘국립아악원’으로의 개편을 바랬던 것이지만 정부에서는 좁은 의미의 ‘아악’보다는 전통음악 전부를 총칭하는 ‘국악’이라는 명의가 합당하다고 판단하여 ‘국립국악원’으로 명칭 변경하여 공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로 1951년 4월 10일에야 ‘국립국악원’이 개원을 보게 되고 한 때 박헌봉이 이끄는 ‘국악원’에서 함께 활동하던 아악계의 인사들은 ‘국악원’을 떠나 ‘국립국악원’으로 활동영역을 옮겨 가게 된다. ‘구왕궁아악부’가 ‘국립국악원’으로 승격 국영화되자 박헌봉이 이끄는 ‘국악원’ 측은 아악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국립국악원’을 민속악의 향도(嚮導) 기관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고 반발하며 민속악 중심의 별도 국립음악기관의 설립을 5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정부에 끈질기게 탄원하였다. 그러나 민속악계의 지도자들에 비하여 학문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국립국악원’ 측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조직적인 견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헌봉이 이끄는 ‘국악원’은 1953년 2월 수복 후에 ‘대한국악원’으로 개칭하였으며 1961년 11월 20일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한국악원’과 1948년 결성된 박록주, 임유앵, 임춘앵, 박귀희, 김소희, 한영숙 등이 이끌던 ‘국악여성동호회’와 1954년 박귀희, 김소희, 김여란, 박초월 등이 설립한 ‘민속예술학원’ 등 3개 사단법인 단체가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1962년 1월 26일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로 통합 발족하게 되며 ‘국악원’의 ‘창극단’은 현재 ‘국립창극단’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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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10
  • [祝] "온 인류에 도움되는 '글로벌 광대' 될 것" - 제23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김덕수 명인
    [제23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 수상자 사물놀이 名人 김덕수] 5세 때 데뷔해 내년이면 60년… 축하공연, 장구로 무대 쥐락펴락이어령 "사물놀이 세계화 주역" "1957년 추석 다음 날 아버님의 대물림으로 조치원 난장에 데뷔했을 때가 다섯 살이었습니다. 내년이면 벌써 데뷔 60년입니다." 천하의 김덕수(6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이날만큼은 긴장한 듯했다. 11월 17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올해 제23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명인이 상기된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다. 스스로 '글로벌 광대'라 칭하는 그는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 세상 흐름과 함께 가는 게 광대의 역할 같다"며 "우리의 신명이 지구촌에, 온 인류에게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는 광대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덕수 프로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축사를 했다. "은퇴하고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축사지만 오늘만큼은 형식적 축사쟁이로 선 게 아니다"며 운을 뗀 그는 "세상에는 제일 먼저 그 일을 시작한 '스타터(starter)'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김덕수는 사물놀이라는 장르를 세계에 퍼뜨린 창조적인 스타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다섯 살에 남사당패 '새미(어른 어깨 위에서 춤추는 무동)'로 데뷔한 이래 60년 동안 장구 연주자로 활동하며 국악의 신명을 전파해왔다. 1978년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장구·꽹과리·북·징만으로 구성한 타악기 연주회를 열어 '사물(四物)놀이'를 무대 장르로 탄생케 한 주역이다. 황병기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장은 "그의 장구 소리는 이제 가히 신접(神接)한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해당 기사 더보기 ☞ https://goo.gl/S9q7UI 1994년부터 방일영 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 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1회), 만당 이혜구(2회), 박동진(3회), 심소 김천흥(4회), 관제 성경린(5회), 만당 오복녀(6회), 양암 정광수(7회), 석암 정경태(8회), 낭월 이은관(9회), 황병기(10회), 묵계월(11회), 이생강(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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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8
  •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 광복 뒤, 삼화권번에는 천여 명의 기생들이 모여들어
    벽파 이창배의 《가요집성》은 경서도 소리꾼들에게는 교과서가 되었기에 지역마다, 혹은 명창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러온 고어(古語), 또는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사설들은 고쳐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난주에는 <가무연구회>의 활동, 조선 총독부내에 《조선음악협회》이야기를 하였다. 협회 내에는 일본음악의 방(邦)악부, 서양음악의 양(洋)악부, 그리고 조선악부가 있었는데, 이 조선악부는 <음악단>과 <가무단>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광복을 앞둔 1940년대 전후는 태평양 전쟁이 긴박해지고 있던 시기여서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음악단이나 가무단으로 몰려들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실기와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기예증을 받을 수 있었고, 기예증이 있어야 위문공연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위문단은 가는 곳마다 그 인기가 대단해서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큰 소동을 벌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했다.또 당시《조선악부》책임자로는 함화진, <조선음악단> 단장에는 박헌봉, <조선가무단> 단장에는 최경식이었고 여기에 소속된 연주진용은 심상건, 이충선, 김계선, 김봉업, 임유앵, 박초월, 장채선, 이창순, 경부용, 산타령의 엄태영, 최정식, 정득만 등 기라성 같은 명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광복이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벽파 이창배 선생이처럼 8.15광복 전야의 국악계는 일본제국주의 통제 아래 주도적인 활동은 거의 할 수 가 없었다. 협회의 활동으로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을 위문하는 공연이나 참여할 정도로 비참했던 것이다.함화진, 박헌봉, 최경식과 같은 거물들은 물론이고 가야금의 심상건 명인을 비롯하여 피리의 이충선, 대금의 김계선, 소리의 임유행, 박초월, 장채선, 엄태영, 최정식, 정득만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던 명인명창들이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할 수 없었으니 나라 잃은 설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될 것이다. 위문공연이든 흥행공연이든 간에 무대감독이나 사회는 벽파 이창배의 몫이었다.그러다가 광복이 되자 조선악부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음악단>이나 <조선가무단> 등은 자연적으로 해산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혹은 숨어서 활동하던 국악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국악사(國樂司)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광복이 되면서 종전의 <이왕직아악부>는 <구황국아악부>로 별도의 독립을 하였고, 주로 민속악에 종사해 오던 재야 국악인들은 《국악원》이란 이름으로 1945년, 10월에 서울 다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국악원은 48년에 《대한국악원》으로 명칭을 바꾼다. 개원 당시의 책임자는 이사장에 함화진, 부원장은 박헌봉, 그리고 유기룡, 이병성, 김천흥, 최경식, 임서방, 김아부, 남경흥 등이 간부로 활동하였는데 민요담당 부장은 최경식이었고, 이창배가 그를 보필하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이창배는 대한국악원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경서도 창악인들의 모임이었던 <가무연구회>의 사무도 맡고 있었다. 이 연구회는 광복이 된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이 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보다도 회원 수가 훨씬 많이 늘었다고 한다.그 까닭은 해방을 계기로 흩어져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소리꾼들이나 또는 가정으로 들어갔던 여류 국악인들이 다시 합세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가무 연구회>에서 벽파 이창배가 주로 하는 일들은 명부를 만들어 회원을 관리하는 일, 각종 사업진행이나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 특히 민요가사를 수정하는 작업이나 신(新)가사의 작사, 그리고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가사를 바로잡는 작업 등이었다. ▲ 평양기생학교 수업 모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국의 해방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국악을 대하는 태도나 시선도 달라진 것이다. 국악이 우리의 음악임에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경험을 했던 국민들은 해방이 되면서 국악의 가치, 국악의 존재에 대해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뜻있는 인사들이나 가정주부, 애호가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대한국악원>으로 배우러 나왔다. 특히 대학생들의 참여가 고무적이었다. 대학생들은 <학생국악동연회>라는 단체까지 조직하였으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껏 시조며 민요 등의 성악과 기악 등을 배울 수 있었고 1950년 6월 30일 발표회까지 계획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성사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권번도 해방이 되면서 다시 간판을 달았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맨 처음 간판을 달게 된 <삼화권번>에는 천여 명의 기생들이 모여들 정도였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시 요리점으로 이름이 나있던 명월관이나 국일관에 전속으로 매어있던 기생들까지 <서울기생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종로 서린동에 사무실을 정하고 권번과 똑같은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벽파 선생의 회고담이 재미있다.“해방이 되자, 유곽의 유녀들도 풀려 나와 얼굴 고운 여자들은 모두 모여들기 시작하여 어떤 여자가 정말 기생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당국과 협의 끝에 가무(歌舞)에 대한 엄격한 시험을 보아 여기에 합격한 자만이 기생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거의 절반이 떨어져서 명실 공히 가무를 습득한 자만이 추려졌다.그러다가 <삼화권번>과 <서울기생조합>이 병합하여 <예성사>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족하였다. 이리하여 예전과 같이 양성소도 다시 생겨 가곡, 가사, 시조는 최상욱이 담당하고, 잡가와 민요는 최정식이 맡았다가 얼마 안 가서 이창배가 담당하게 되었고, 3년 수업을 한 사람에게는 졸업장을 주어 돈을 벌게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안 되어 여순 반란 사건으로 인하여 예성사는 폐쇄되었으며, 기생은 제각기 자유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한편, 《대한국악원》 내에 소속된 창극단이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가야금 병창으로 이름을 남긴 오태석을 비롯하여, 백점봉, 조상선, 정남희, 박동실, 공기남, 강장원, 정광수, 임방울, 김연수 등과 같은 유명 소리꾼들이 입단하여 도처에서 공연할 때마다 그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경서도창을 위주로 하는 민요 단체로는《국악연예사》가 있었는데, 여기의 대표는 소리와 재담에 뛰어났던 박천복이었고, 정득만을 비롯하여 이은관, 장소팔, 김갑수, 여류로는 이복재, 정봉선, 윤일지홍, 모영월, 김정숙, 한정자, 장국심, 이정애, 김장수 등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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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실
    2016-03-02

공연소식 검색결과

  • 고수영 해금독주회 '오름/김천흥과 한범수' - 6월 30일 서울 국립국악원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공연명 : '오름/김천흥과 한범수' 2. 장소 :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 ▶ 지도보기3. 날짜 : 2020년 6월 30일 (화요일)4. 시간 : 오후 8시 5. 티켓료 : 무료초대6. 문의 : 010-9143-5447◆ 출연진 : ▶ 고수영 프로필
    • 공연소식
    • 서울
    2020-06-17
  • 9월 15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기획공연 - 정농악회 '명불허전'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정농악회 '명불허전' 장소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지도보기 날짜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시간 오후 7시 30분 티켓료 R석 10,000원, S석 5,000원 출연진 정농악회 (正農 즉“바른음악을 농사짓자”는 취지로 1976년 12월 그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故 김정자(가야금)교수의 발의로 성경린,김천흥,이석재,김성진,봉해룡,김태섭등과 함께 발족한 국내 최초의 정악(正樂)연주 동호회로 출발하였다.) 문의전화 042-270-8500 공연정보 더보기 ▶ http://goo.gl/8osVrP
    • 공연소식
    • 대전,충청
    2017-09-04

국악동영상 검색결과

  • 검기무 -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심소 김천흥, 그를 기억하다
    검기무본래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행하던 춤을 조선 순조 때 궁중정재로 받아들였다.검무를 잘 추던 신라의 황창(黃倡)이 백제의 왕 앞에서 검무를 추다가 칼을 던져 왕을 죽이고 자신은 잡혀 죽임을 당하자, 황창을 기리기 위해 그의 모습을 본 딴 가면을 쓰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춤 : 최윤정, 김꽃지, 윤진아, 변상아○ 음악 : 국립국악원 정악단, 전통음악그룹 ‘판’(유인상)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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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중무용
    2018-04-09
  • 장생보연지무 -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심소 김천흥, 그를 기억하다
    ○ 죽간자/이윤정·이도경, 협무/김청우·정현도·김서량·김진우·김현우 조선 순조 때 새로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 중의 하나. 1829년(순조 29)효명세자(孝明世子)가 중국 송대(宋代) 기성절(基聖節)에 쓰던 장생보연지악(長生寶宴之樂)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정재이다. 죽간자(竹竿子)가 무원(舞員)을 인도하여 출퇴장(出退場)하는 춤에는 를 비롯하여 ··의 네 가지가 전한다. ≪국연정재창사초록 國讌呈才唱詞抄錄≫에 따르면, 그 창사는 1829년 예제(睿製), 1887년(고종 24) 가제(改製)로 되어 있다. ▶ 자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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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중무용
    2018-03-19
  • 사람을 그리는 춤, 한국춤 100선 열두마당 - '치사랑' Full 영상
    2015년 2월 15일(일) 오후4시 국립국악원 우면당 <프로그램> 사회:전수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1. 김천흥,한영숙,이흥구 <학춤> - 무용:정민근, 전보현 지도:박은영 2. 김천흥 <춘앵전> - 무용:박은영 3. 이동안 <진쇠춤> - 무용:윤미라 4. 조갑녀 <민살풀이춤> - 무용:이미영 5. 강선영 <태평무> - 무용:임현선 6. 한영숙,정재만 <살풀이> - 무용:차수정 7. 김백봉 <부채춤> - 무용:전은자 8. 최현 <비상> - 무용:원필녀 9. 이매방 <승무> - 무용:채향순 10. 김조균 <한량무> - 무용:류영수 11. 문일지 <허튼춤> - 무용:김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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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악(종합.무용)
    • 한국무용.전통/창작
    2015-04-27

국악인프로필 검색결과

  • 최순희 프로필 - 한국무용가
    ☆ 최순희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수련과정ㅣ학력 한영숙, 정재만, 김천흥, 이흥구 선생 사사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세종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 졸업경기대 스포츠학과 대학원 졸업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황해도무형문화재 제4호 화관무 이수자 활동 경력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 역임정재연구회 창단 및 회장 역임최순희 수온당무용단 사) 한국가무악연구회 무용 예술감독미주한국무용협회 이사 수상 경력 국립국악원 전통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 (승무, 춘앵전)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dVxCvH2Fl8Y [춘앵전]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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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아,자,차
    2022-06-20
  • 최은희 - 한국무용가, 대학교수
    ☆ 최은희 프로필 (1955년 인천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안무가, 대학교수 수련과정ㅣ학력 김천흥, 한영숙, 김병섭, 강선영, 이매방, 김매자 선생 사사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및 同 교육대학원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활동 경력 1982년 8월 개인 첫 발표회 '하지제'부산시립무용단 안무장 역임울산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 역임부산무용협회장 역임춤패 배김새 창단 및 대표1988 서울올림픽대회 요트경기 개·폐회식 안무2002 부산아시안게임 선수촌 개·폐회식 안무2002 한·일 월드컵 문수경기장 개막행사 안무현재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수상 경력 1982 제4회 대한민국무용제 대상2007 한국춤평론가회 춤 비평가 특별상, 제21회 봉생문화상2012 한국춤평론가회 춤 비평가 특별상2013 제 56회 부산광역시 문화상 2013 부산예총 부산무용협회 공로상, 부산시장 감사패 홈페이지ㅣSNS https://han.gl/EujZk [경성대학교 무용과 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70ASZUyUSrEb [1993년 최은희교수 춤]https://youtu.be/TzOcb9qYBP8 [제4회 대한민국무용제 대상 수상작]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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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아,자,차
    2022-04-15
  • 김정수 - 고수, 대학교수
    ☆ 김정수 프로필 (1946년 서울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고법, 대학교수 수련과정ㅣ학력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졸업 (현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키르키스탄 국립예술대학 명예 예술학 박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활동 경력 KBS 한국방송공사 프로듀서 역임 용인대학교 교수 (국악과장) 역임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장, 예술대학원장 및 전통문화연구소 소장 역임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 부이사장 역임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위원장 역임 현재 용인대학교 명예고수 한국국악교육학회 고문, 서울국악관현악단 고문 국악실내악단 서울악회 회장, 양주풍류악회 회장 심소 김천흥무악보존회 이사장 수상 경력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AJcp7lVI_yc [정대석류 거문고산조 - 고수 김정수]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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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19-06-17
  • 배정혜 - 한국무용가
    ☆ 배정혜 프로필 (1944년 서울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창작무용, 안무가 수련과정ㅣ학력 김백봉, 한영숙, 김천흥, 이매방, 강선영 선생 사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과 (무용 전공) 졸업 활동 경력 리을무용단 설립 및 단장 역임 국립국악원 안무자 역임 서울시립무용단장 역임 국립무용단 단장 및 예술감독 역임 리틀엔젤스 상임안무가 수상 경력 1954년 제1회 전국무용콩쿠르 1등 입상 (승무) 2003년 최고의 한국무용 창작 무용가로 선정 (동아일보) 2006년 APEC정상회의 공로 국무총리 표창장 (행정자치부) 2019년 대한민국무용대상 '최고무용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5En-VpQKCc0 [배정혜 산조춤 (반주 : 김충환, 김영실, 이여진, 이재하, 조용복)] 기타 1986년~2011년까지 25년간 국공립 무용단체를 이끈 살아있는 전설 ‘창작무의 대모’로 통한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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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김묘선 - 한국무용가
    ☆ 김묘선 (본명 김진선)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일본승려 수련과정ㅣ학력 김천흥, 이매방 선생 사사 추계예술대학 국악과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 전수교육조교 (2005년 인정) 활동 경력 美 UCLA 한국음악과 교환교수 역임 우봉 이매방 전통무용보존회 남가주 지회장 발림무용단 총예술감독 사단법인 한국예총 일본관서지회 회장 재단법인 토쿠시마관광협회이사 수상 경력 1995년 서울전통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2011년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서훈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ztwtaNvHYCk [승무] ▶ http://youtu.be/2ixxlIuYyg0 [살풀이춤] 기타 경북 고령 출신으로 연간 순례객이 30~40만 명이나 되는 큰 사찰인 일본 대일사 주지였던 남편이 타계한 후 주지가 되었으며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무용 공연과 강연 등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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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15-08-01
  • 박은영 프로필 - 대학교수, 한국무용가
    ☆ 박은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궁중무용 (정재) 수련과정ㅣ학력 김천흥 선생 사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졸업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 활동 경력 심연전통무용연구원 예술감독 사)궁중무용춘앵전보존회 회장 서울특별시 국악발전협의회 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교수 수상 경력 한국문화예술위원선정 '2005 올해의 예술상' 전통예술부문 수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MGQV9DGXZ3s [춘앵전] 기타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궁중무용을 다시 깨워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 공언하고 일반인들에게 궁중무용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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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9
  • 최윤희 - 한국무용가 (대전시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 최윤희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수련과정ㅣ학력 김숙자, 김천흥, 이일응 선생 사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국악전공 (석사학위 논문 : 김숙자류 입춤의 미적가치연구)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1호 '입춤' 예능보유자 활동 경력 전남도립국악단 상임안무자 역임 (사)한밭국악회 이사장 수상 경력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장원 - 도살풀이춤 (장관상) 1985년 진주개천한국무용제 대상 - 도살풀이춤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http://me2.do/GmAMoJdS [최윤희 도살풀이춤 다음카페] 동영상 보기 ▶ http://youtu.be/Dc2-ixdeWjI [입춤] 기타 현재 대전시 중구 대흥동 526-1번지 최윤희전통춤전수관에서 전수활동 중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5-02-23
  • 전명선 - 양금연주가
    ☆ 전명선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양금 연주 수련과정ㅣ학력 김천흥,최충웅,권오성,김정수,송인길,안승훈,이지영,박성연 선생 사사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국악과 석사 졸업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 활동 경력 추계예술대학교 강사한국국악학회, 한국음악사학회, 양금연구회 회원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음반 양금창작독주곡집 '술고작금(述古作今)', 정악양금 가진회상 '악률복응(樂律服膺)'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Yyul3NurfFU [양금의 구조와 종류, 음역, 연주법, 연주곡] 기타 국내최초 관현악단 양금연주자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2-12-29
  • 정예진 - 가야금병창
    ☆ 정예진 (정옥순)프로필 (1958년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박귀희, 안숙선, 정권진, 성우향, 성금련, 김천흥, 한영숙 선생 사사 서울국악예술중학교 및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 (무용) 추계예술대 국악과 (판소리) 졸업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가야금병창) 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전수조교 (준보유자) 활동 경력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수상 경력 제13회 전주대사습전국대회 가야금병창 장원 제9회 김해전국기악경연대회 가야금병창 대통령상 2008 KBS국악대상 판소리부문 수상 홈페이지ㅣSNS ▶ http://blog.daum.net/jyeijin [다음 블로그] ▶ https://www.facebook.com/jyeijin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춘하추동 ▶ http://me2.do/xMvkjd08 [정예진 작사작곡]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사,아,자,차
    2012-12-02
  • 김영숙 프로필 - 한국무용가
    ☆ 김영숙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한국무용, 궁중무용 (정재) 수련과정ㅣ학력 김천흥, 황옥선 선생 사사이화여자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 및 동대학원 졸업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 예악학 전공 (철학박사)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교육조교 (1990년 인정) 활동 경력 국립국악원 무용단원 역임국립국악고등학교 교사 역임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역임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 석좌교수현재 (사)정재연구회 이사장(사)일무보존회 이사장 수상 경력 옥관문화훈장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8IcImcDL6h0 [춘앵전] 기타 대한제국의 마지막 무동인 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춘앵전'을 배운 수제자로서, 조선시대 궁중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대표적 인물이다. 1996년 정재연구회를 창설하여 제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전통의 승계와 재창조 작업에 힘쓰고 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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