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8(목)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국악정보 검색결과

  • 국악명가 출신,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김동표씨 별세
    국악 명인 가문 출신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급에 일생을 바친 김동표 보유자가 6월 10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79세. “소리가 듣는 이의 오장육부를 쑤실 정도로 곰삭아야 한다.”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고인이 추구하는 대금 소리를 표현한 게 이랬다. 여기엔 우리 국악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유랑극단 악사로 일하면서 소리를 다듬어 마침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기까지의 한과 자부심이 배어있다. 고인은 1941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전북 전주로 옮겨 전주북중을 다니다 중퇴하고 16살에 대금을 시작했는데 이를 이끌어준 게 맏형 김동준(1928~1990)이다. 나중에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鼓法)의 보유자가 된 김동준은 전주 국악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터울이 꽤 나는 동생 둘을 대금에 입문시켰다. 셋째 김동진(1937~1989)과 넷째 김동표다. ▶ 해당기사 자세히 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20-06-12
  •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남해성 명예보유자, 1월28일 별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남해성(1935년생/본명 남봉화) 명예보유자가 노환으로 1월 28일(화) 오후에 별세하였다. □ 생년월일: 1935. 9. 2. □ 빈 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 211 강남 세브란스병원 2호실 (☎02-2019-4000) □ 발 인: 2020. 1. 31.(금), 오전 6시 □ 유 족: 상주 한세현(아들), 한옥현(아들), 한현진(딸) □ 주요경력 - 1970. ~ 1981. 국립창극단 단원 - 1975. 중앙국립극장 공로상 수상 - 1976. 남해성국악연구소 개설 - 1985. 남원 춘향제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 수상 - 2012. 4. 6.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인정 - 2019. 9. 9.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명예보유자 인정 ※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1964. 12. 24. 지정)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현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등 다섯 바탕이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전승되고 있다. 고(故) 남해성 명예보유자는 김소희, 김연수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으며, 1968년 박초월 당시 판소리(수궁가) 보유자의 문하에 입문하여 수궁가를 전수받아 2012년 판소리(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고(故) 남해성 명예보유자는 1970년부터 12년간 국립창극단에서 활발한 창극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1976년에는 남해성국악연구소를 개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는 등 한평생 판소리의 보전과 전승활동에 헌신하였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20-01-30
  • [謹弔] 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 김정희씨 사망…"강사법 이후 해고통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 씨가 지난 12월 13일 숨졌다. 15일 유족 및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더는 출강할 수 없다는 학교 측 통보를 받은 김씨가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다. 전수교육조교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체계에서 보유자 전 단계를 말한다. 4대째 무업을 계승하고 있는 김씨 가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배웠다. 전통예술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는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이 설립된 직후부터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올해 8월 대학 측이 강사임용규정을 재정비하면서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강사를 다시 뽑겠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김씨는 20여년간 직장으로 삼았던 연희과에 더는 출강하지 못하게 됐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올해 1학기까지는 학위가 없어도 예술 활동 경력을 참작해 강사 자격이 부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강사 자리를 잃으면서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단체레슨도 할 수 없게 됐다. 가장임에도 수개월간 공연 몇 건 외에는 달리 수입이 없어 심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변인은 전했다. 김씨의 주변인은 "강사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고인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인 부작용이 아니겠느냐"며 "전통예술 분야에 유연성 있게 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9-12-16
  • [謹弔] 4월 23일 별세한 판소리 명창 故 정춘실 선생, 남원 국악의 성지에 봉안
    4월 23일 타계한 동편제 판소리 명창 故 정춘실 선생의 유골 안치식이 25일 남원시 운봉읍에 위치한 국악의 성지에서 진행됐다. ▶ 정춘실 프로필 故 정춘실 선생은 1943년 남원 출생으로 강도근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남원 춘향 여성농악단에서 활동하는 등 약 30년간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연마해 1991년 남원 춘향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1998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판소리 동편제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돼 대한민국 국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후학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고인은 장흥도립대학, 남도예술고등학교, 광주예술고등학교에서 12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광주 전통문화관에서 6년간 전통문화예술 강좌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판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지도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9-04-26
  • [謹弔]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이명희'선생 별세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이명희 선생이 3월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명희 프로필 이 선생은 1992년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후 대구경북의 단절된 판소리 계승과 전승을 위해 판소리 완창발표회, 공연, 강의, 후진 양성 등 확고한 사명감으로 지역 국악문화 확대를 위해 힘써왔다 이 선생은 대구국악협회 제16, 17, 18대 지회장을 역임하면서 국악인들의 활동무대와 권익 보호에 노력했다.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최고상을 대통령상으로 격상시킨 것은 물론 국악상설공연을 유치해 국악예술인들의 활동 무대를 마련하고 신진 국악예술인들의 무대 기회를 제공했다. 국악 동호인 육성을 위한 전국신인전통예술경연대회를 신설했고, 영남판소리보존회를 결성해 영남권 판소리의 맥을 이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 국악 전반에 걸친 명인, 명창, 명무를 임원으로 영입해 공연연출, 기획, 실연기관으로서 지역의 전통문화예술 공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선생은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1990년), KBS국악대상 판소리상(1993년), 동리대상(2013년), 옥관문화훈장(2017년)을 수상한 바 있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9-03-18
  • [謹弔] 영화 '만신' 실존..무형문화재 김금화 선생 2월 23일 별세. 향년 88세
    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2호인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의 보유자인 만신(萬神·여자 무당) 김금화(사진) 선생이 2월 23일 오전 5시57분께 별세했다. 향년 88세. ▶ 김금화 프로필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인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속시설인 ‘금화당’을 열고 후학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2014년에는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돼 무속문화가 화제에 되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12세 때 무병(巫病)을 앓다가 17세에 외할머니이자 만신인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나라굿과 대동굿을 혼자 주재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에 독립했다. 1950년 6·25전쟁 때 월남한 그는 무속인 방수덕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특히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豊魚)를 기원하는 ‘서해안 풍어제’가 유명하다. 그는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친선공연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 백두산 천지와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대동굿과 진혼굿 등을 공연하며 국내·외 활동을 이어왔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9-02-25
  • [謹弔] 6월 1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박양애 보유자 별세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의 박양애 보유자가 지난 6월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935년생인 고(故) 박양애 보유자는 1975년 강강술래 국무총리상, 1976년 강강술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0년 7월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보유자로 인정됐고, 강강술래의 전통 계승과 보급에 평생을 헌신했다. 고인의 빈소는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 오전 9시30분이며 장지는 전남 목포시 목포추모관휴다. 강강술래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우리말과 리듬이 잘 담겨있는 무형문화유산이다.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이루어진 원시 종합예술로서 춤을 추는 여성 중에서 노래를 잘하는 한 사람이 선소리를 하면 모든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의 형태로 노래가 된다. 노랫소리에 맞춰 많은 여성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임진왜란 훨씬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알려진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는 일종의 군사 전략으로 활용됐고 임진왜란 후에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인 설, 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 등에 연행된다. 1966년 2월15일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8-06-14
  • [謹弔]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김용택 보유자 별세. 향년 71세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의 김용택 보유자가 4월 29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김용택 보유자는 1954년부터 아버지 김호출과 삼촌 김석출 보유자에게 악기, 노래, 춤 등을 배워 4대째 동해안 굿판을 지켜온 악사다.1972년 신명리 동해안별신굿에 참가했으며 이후 1975년 학리 풍어제, 1990년 일본 3개 도시 동해안별신굿 순회공연 등 다수의 별신굿 행사에 참여했다. 2006년에 동해안별신굿 보유자로 인정됐다. 동해안별신굿은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굿이다. 부산에서 강원도에 이르는 동해안 지역에서 1년 혹은 2~3년마다 열린다. 굿을 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나 대체로 3~5월, 9~10월 사이 진행된다. 문화재청은 1985년 풍어제의 한 종목으로 동해안별신굿을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8-05-02
  • [謹弔] 3월22일, 부산시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가야금산조 명인 '신명숙' 선생 별세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8호인 가야금산조 명인 신명숙 선생이 향년 77세 일기로 별세했다. ▶ 故 신명숙 프로필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존회는 고인이 지난 3월 22일 오전 10시 45분에 병환으로 별세했다고 23일 밝혔다. 고인은 1940년 7월 15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후죽동 136번지에서 1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3년 3월 부산 동래중학교에 입학해 강태홍 선생의 한국음악무용연구소에 입문했다. 1955년 전국무용경연대회에서 승무로 대통령상을 받은 데 이어 1959년 10월 18일 제6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는 가야금산조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9년 7월 6일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부산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이후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존회를 발족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을 오가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널리 알리는 데에 매진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8-03-25
  • [謹弔] 가야금 명인 황병기, 1월 31일 별세…향년 82세
    가야금 연주가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1월 31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2세. ▶ 황병기 프로필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황병기 명인이 오늘 세상을 떠났다”면서 “2개월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 폐렴으로 몸이 안 좋아져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말했다.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황병기 명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51년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명인 김영윤, 김윤덕, 심상건을 사사했다.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해 음악계 주목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소설가 한말숙 씨와 아들 준묵·원묵 씨, 딸 혜경·수경 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아산병원 30호에 마련됐다.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원이며 발인은 2월 2일이다. ▶ 해당기사 더보기 ▶ 문재인 대통령, 황병기 선생 별세에 조전…"너무 슬프고 아쉽다"
    • 국악정보
    • 국악인소식
    2018-01-3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