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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DF] 경기지역 민속의 양상과 특징 - 경기지역학 학술세미나
    ▲ 다운로드 받으세요.. 발표자 : 정형호, 김혜정, 김헌선, 시지은,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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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1
  • [PDF] 동해안 별신굿의 기반과 창조적 전승력 - 조정현
    ▲ 다운로드 받으세요. ● 조정현 -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전임연구원 이 연구에서는 공동체 제의의 한 형태로서 별신굿을 주목하여, 일반적인 동제와 차별적인 성격을 가지는 마을 공동체 제의인 동해안별신굿의 제 기반과 전승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특수한 공동체 제의로서 별신굿의 위상을 밝히고, 특히 동해안지역 별신굿이 확보하고 있는 강력한 전승력의 근원을 도출하였다. 동해안 별신굿이 확보하고 있는 전승력의 근저에는 어촌 주민들의 삶에자연스레 녹아있는 신앙적, 이념적, 사회적, 경제적, 예술적, 오락적 제 기반이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별신굿은 고대국중대회의 구조를 따른 동중대회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고대국중대회와 친연성은 별신굿을 우리 공동체 제의, 나아가 우리 축제의 원형으로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별신굿의 개념, 즉 “일반적으로 정성을 들이는 동제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갖는 마을굿으로, 매년,3년, 5년, 7년, 10년 간격으로 벌어지며, 무당집단과 마을공동체가 함께 벌이는 축제적 대동굿”이나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별신굿은 유교이념을 강제했던 조선사회에서 ‘대항제의’로서 기능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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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23
  • [PDF] 동해안별신굿의 전승양상 - 이균옥
    ▲ 다운로드 받으세요 ● 이균옥 - 대구사회연구소(사) 부소장 역임 1장 동해안별신굿의 일반적 성격 동해안은 다른 해안지역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을굿이많이 전승된다고 생각된다. 즉 인간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주술적 믿음은 당연히 커지고,이로 말미암아 동해안의 마을굿은 지금도 왕성한 전승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마을굿 중에서 가장 전승력을 왕성하게 지니고 있는 지역은 동해안이다. 동해안에서도 전승 지역이 점차 축소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지역 바닷가보다 많은 마을에서 마을굿인 별신굿이 연행되고 있다. 남해안이나 서해안은 바다가 얕거나 갯벌이 많은 지역이어서 양식업이나 채취업이 가능하고, 동해는 바다가 깊어서 높은 파도와 싸우면서 어로작업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남해와 서해의 어업은 안정적이지만 동해의 어업은 불안정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한어로작업이다. 그리고 동해안은 농지가 좁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 생활의 기반이다. 따라서 바다가 아니면 생활을 온전히 유지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동해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어떤 지역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동해안은 다른 해안지역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을굿이 많이 전승된다고 생각된다. 즉 인간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주술적 믿음은 당연히 커지고, 이로 말미암아 동해안의 마을굿은 지금도 왕성한 전승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동해안의 지역적 범위는 북쪽은 강원도 고성군, 남쪽은 부산까지로 봐야 할것이다. 부산은 남해안의 동쪽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굿의 전승지역으로 보면 동해안이라고 봐야 한다.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김석출 무가계는 동해안 지역에서 무업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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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23
  •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 광복 뒤, 삼화권번에는 천여 명의 기생들이 모여들어
    벽파 이창배의 《가요집성》은 경서도 소리꾼들에게는 교과서가 되었기에 지역마다, 혹은 명창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러온 고어(古語), 또는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사설들은 고쳐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난주에는 <가무연구회>의 활동, 조선 총독부내에 《조선음악협회》이야기를 하였다. 협회 내에는 일본음악의 방(邦)악부, 서양음악의 양(洋)악부, 그리고 조선악부가 있었는데, 이 조선악부는 <음악단>과 <가무단>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광복을 앞둔 1940년대 전후는 태평양 전쟁이 긴박해지고 있던 시기여서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음악단이나 가무단으로 몰려들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실기와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기예증을 받을 수 있었고, 기예증이 있어야 위문공연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위문단은 가는 곳마다 그 인기가 대단해서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큰 소동을 벌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했다.또 당시《조선악부》책임자로는 함화진, <조선음악단> 단장에는 박헌봉, <조선가무단> 단장에는 최경식이었고 여기에 소속된 연주진용은 심상건, 이충선, 김계선, 김봉업, 임유앵, 박초월, 장채선, 이창순, 경부용, 산타령의 엄태영, 최정식, 정득만 등 기라성 같은 명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광복이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벽파 이창배 선생이처럼 8.15광복 전야의 국악계는 일본제국주의 통제 아래 주도적인 활동은 거의 할 수 가 없었다. 협회의 활동으로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을 위문하는 공연이나 참여할 정도로 비참했던 것이다.함화진, 박헌봉, 최경식과 같은 거물들은 물론이고 가야금의 심상건 명인을 비롯하여 피리의 이충선, 대금의 김계선, 소리의 임유행, 박초월, 장채선, 엄태영, 최정식, 정득만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던 명인명창들이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할 수 없었으니 나라 잃은 설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될 것이다. 위문공연이든 흥행공연이든 간에 무대감독이나 사회는 벽파 이창배의 몫이었다.그러다가 광복이 되자 조선악부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음악단>이나 <조선가무단> 등은 자연적으로 해산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혹은 숨어서 활동하던 국악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국악사(國樂司)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광복이 되면서 종전의 <이왕직아악부>는 <구황국아악부>로 별도의 독립을 하였고, 주로 민속악에 종사해 오던 재야 국악인들은 《국악원》이란 이름으로 1945년, 10월에 서울 다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국악원은 48년에 《대한국악원》으로 명칭을 바꾼다. 개원 당시의 책임자는 이사장에 함화진, 부원장은 박헌봉, 그리고 유기룡, 이병성, 김천흥, 최경식, 임서방, 김아부, 남경흥 등이 간부로 활동하였는데 민요담당 부장은 최경식이었고, 이창배가 그를 보필하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이창배는 대한국악원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경서도 창악인들의 모임이었던 <가무연구회>의 사무도 맡고 있었다. 이 연구회는 광복이 된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이 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보다도 회원 수가 훨씬 많이 늘었다고 한다.그 까닭은 해방을 계기로 흩어져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소리꾼들이나 또는 가정으로 들어갔던 여류 국악인들이 다시 합세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가무 연구회>에서 벽파 이창배가 주로 하는 일들은 명부를 만들어 회원을 관리하는 일, 각종 사업진행이나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 특히 민요가사를 수정하는 작업이나 신(新)가사의 작사, 그리고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가사를 바로잡는 작업 등이었다. ▲ 평양기생학교 수업 모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국의 해방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국악을 대하는 태도나 시선도 달라진 것이다. 국악이 우리의 음악임에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경험을 했던 국민들은 해방이 되면서 국악의 가치, 국악의 존재에 대해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뜻있는 인사들이나 가정주부, 애호가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대한국악원>으로 배우러 나왔다. 특히 대학생들의 참여가 고무적이었다. 대학생들은 <학생국악동연회>라는 단체까지 조직하였으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껏 시조며 민요 등의 성악과 기악 등을 배울 수 있었고 1950년 6월 30일 발표회까지 계획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성사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권번도 해방이 되면서 다시 간판을 달았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맨 처음 간판을 달게 된 <삼화권번>에는 천여 명의 기생들이 모여들 정도였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시 요리점으로 이름이 나있던 명월관이나 국일관에 전속으로 매어있던 기생들까지 <서울기생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종로 서린동에 사무실을 정하고 권번과 똑같은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벽파 선생의 회고담이 재미있다.“해방이 되자, 유곽의 유녀들도 풀려 나와 얼굴 고운 여자들은 모두 모여들기 시작하여 어떤 여자가 정말 기생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당국과 협의 끝에 가무(歌舞)에 대한 엄격한 시험을 보아 여기에 합격한 자만이 기생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거의 절반이 떨어져서 명실 공히 가무를 습득한 자만이 추려졌다.그러다가 <삼화권번>과 <서울기생조합>이 병합하여 <예성사>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족하였다. 이리하여 예전과 같이 양성소도 다시 생겨 가곡, 가사, 시조는 최상욱이 담당하고, 잡가와 민요는 최정식이 맡았다가 얼마 안 가서 이창배가 담당하게 되었고, 3년 수업을 한 사람에게는 졸업장을 주어 돈을 벌게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안 되어 여순 반란 사건으로 인하여 예성사는 폐쇄되었으며, 기생은 제각기 자유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한편, 《대한국악원》 내에 소속된 창극단이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가야금 병창으로 이름을 남긴 오태석을 비롯하여, 백점봉, 조상선, 정남희, 박동실, 공기남, 강장원, 정광수, 임방울, 김연수 등과 같은 유명 소리꾼들이 입단하여 도처에서 공연할 때마다 그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경서도창을 위주로 하는 민요 단체로는《국악연예사》가 있었는데, 여기의 대표는 소리와 재담에 뛰어났던 박천복이었고, 정득만을 비롯하여 이은관, 장소팔, 김갑수, 여류로는 이복재, 정봉선, 윤일지홍, 모영월, 김정숙, 한정자, 장국심, 이정애, 김장수 등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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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02
  • [PDF]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대하여 - 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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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9
  • [PDF] 판소리 발성법의 특성 [조상선의 글을 중심으로] - 권오성
    ▲ 다운로드 받으세요~ 이 논문은 판소리 발성법에 대한 내용으로 북한에서 창극 활동을 하던 조상선의 발성법을 중심으로 판소리 발성의 특성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다. 요즘 남한에 명창들이 하는 것과는 달리 조상선은 판소리의 수업 과정에서 학습 초기부터 장단을 연습시킨 다음에 , 순으로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권오성 -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국악과 졸업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학박사 한국방송공사 국악대상 특별공로상(2007)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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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2
  • [PDF]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 이시대 마지막 춤꿈 '조갑녀' (조갑녀의 공연활동)
    ▲ 다운로드 받으세요.. 조갑녀의 공연활동일시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14:46~16:40)장소 :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조갑녀 자제 정명희 자택진행 구술 : 조갑녀(조), 정명희(정), 면담_ 권혜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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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8
  • [PDF] 2012 공연예술실태조사 분석보고서 - 예술경영지원센터
    ▲ 다운로드 받으세요. 제 1장 제1절 공연시설 일반현황주요결과1. 지역별 시설현황2. 시설특성별 시설현황제2절 공연장 공연실적주요결과1. 지역별 공연실적 현황2. 시설특성별 공연실적 현황3. 투입요소별 공연실적제3절 공연시설 재정현황주요결과1. 지역별 재정현황2. 시설특성별 수입현황3. 투입요소별 재정현황제4절 공연시설 인력현황주요결과 1. 지역별 인력현황2. 시설특성별 인력현황 제 2장1. 지역별 인력현황2. 시설특성별 인력현황 1. 양극화와 집중화2. 재정규모 기준의 프로파일링3. 재단법인은 민간운영주체인가4. 공연예술 통합전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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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1
  • [한글] 문경의 문화콘텐츠 개발 전략 - 권갑하
    ▲ 다운로드 받으세요. 차례1. 서론2. 의 위상과 가치 가. 아리랑사적 위상과 가치 나. 아리랑고개로서 문경새재 다. 문화콘텐츠적 가치 3. 문경의 문화콘텐츠 개발 전략 가. 문화콘텐츠화 방향 나. 문경의 문화콘텐츠 개발 전략 1) 아리랑 프로젝트와 브랜드 창출 2) 테마파크 조성 3) 아리랑 축제와 문화콘텐츠 개발 4) 스토리텔링 창작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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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1
  • [PDF] 남사당노래의 전승과 민속의 창조적 수용 - 이경엽
    ▲ 다운로드 받으세요. 이 글에서는 신안 남사당노래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그것을 통해 민속의 창조적 수용 및 재창조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신안 남사당노래라는 말은 우선 두 가지 점에서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신안에도 남사당패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사당패의 연행 종목에 노래가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기존에 알려진 바로는 두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지 모른다. 떠돌이 예인집단 앞에 신안이라는 지명이 붙는 것이 이상하고 풍물놀이․버나(접시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덜미(꼭두각시놀음)․덧뵈기(가면극) 등만이 남사당패의 종목으로 거론돼왔으므로 남사당노래라는 것도 생소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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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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