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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국악한마당 방송안내] 9월 23일 오후 12시 10분 (김영임,임현종,이영신,조주선,김이진,박지현,하수연,고정훈 등 출연)
- 제1473회 묵계월 ‧ 임이조 경기소리와 송서의 맥을 기켜온 묵계월 명창 한국무용의 전승과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임이조 명무 작고한 국악계의 큰 스승이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제자들의 무대를 통해 그들의 귀한 소리와 춤사위를 추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故 묵계월 명창 ● 경기잡가 <출인가> 노래, 장구/ 임정란 노래/ 김영임 ● 송서 <삼설기>, 경기잡가 <방물가> 노래, 장구/ 김영임 대금/ 이진용 노래/ 김경아 김정우 박윤정 이명희 조경희 故 임이조 명무 ● 임이조류 <한량무> 무용/ 임현종 ● 임이조류 <교방살풀이춤> 무용/ 선운 임이조춤보존회 (권영심 박선심 임예은 전진희 최효선) ● 가야금병창 수궁가 中 <토끼 세상에 나오는 대목> 가야금병창/ 이영신 장구/ 고정훈 ● 판소리 춘향가 中 <어사출두 대목> 소리/ 조주선 고수/ 조용복 ♛ 꿈나무한마당 ● 한영숙류 <살풀이춤> 무용/ 김이진 (서울삼릉초 6학년) ● 박지현 작곡 25현가야금/ 박지현 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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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국악한마당 방송안내] 9월 23일 오후 12시 10분 (김영임,임현종,이영신,조주선,김이진,박지현,하수연,고정훈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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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 제31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에 '박자희'씨 수상
- 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는 국악 신예와 최고의 소리꾼을 찾는 ‘제31회 임방울국악제’ 전국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 박자희씨(39)가 흥보가 중 ‘두손 합장’ 대목을 불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9월 18일 밝혔다. ▶ 박자희 프로필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임방울국악진흥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는 지난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과 5‧18기념문화센터, 광주예술의전당 등 광주 일원에서 열렸다. 이날 낮 12시30분부터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국내 최고의 국악 명인을 발굴하는 판소리 명창부·기악·무용부문 본선 경연이 진행됐다. 판소리 명창부 대상 수상자 박자희씨는 대통령상과 상금 4000만원, 임방울상 트로피가 수여됐다. 또 명창부 최우수상은 김다정씨가 차지했으며, 농악 대상팀은 부안군립농악단에게 돌아갔다. 제31회 임방울국악제 수상자 ◇판소리 명창부 ▲임방울대상(대통령상) 박자희 ▲최우수상(방일영상) 김다정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김주원 ◇가야금병창 ▲최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고재향 ◇농악 ▲대상(국회의장상) 부안군립농악단 ◇시조 ▲최우수상(광주광역시장상) 노선규 ◇무용 일반부 ▲최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이정일 ◇기악 일반부 ▲최우수상(국무총리상) 김민서 ◇퓨전 국악 ▲최우수상(광주광역시장상) 청화 ◇농악 일반부 ▲최우수상(광주광역시장상) 평택연희단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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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 제31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에 '박자희'씨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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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 제17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공상명월‘ 대상 수상…“재즈와 국악의 대비 그리고 결합”
- 신진 예술가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국악방송 주관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올해의 대상 수상팀으로 ‘공상명월(空想明月)’이 선정됐다. 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9월 7일 오후 7시부터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됐으며 국악방송 TV, 라디오, 유튜브 및 페이스북 동시 생중계됐다. 올해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총 77팀이 지원했다. 1차 예선을 거쳐 20팀이 2차 예선에 진출했고, 이중 10팀이 최종 본선에 올랐다. 대상(국무총리상)은 공상명월(空想明月) ‘순라꼭질’,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풍류공작소 ‘나리소서’, 은상 (국립국악원장상) 국악창작앙상블RC9 ‘KARMA(業)’, 은상 ((재)국악방송사장상) Scene(씬) ‘너울; 超’, 동상 ((재)국악방송사장상) 옴브레스 ‘불이과’, 시작(詩作) ‘새벽’, 장려상 ((재)국악방송사장상) 흥 얼(興 spirit) ‘나비’, 음악그룹 Om ‘Silk Road’, 음악그룹: 연줄 ‘환영(幻影)’, TIMY ‘System’이 각각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제17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대상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공상명월(空想明月)’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국무총리상과 상금 1500만원이 수여되는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타악기 함동우, 김태준, 거문고 강태훈이 공동 창작으로 작곡한 곡 ‘순라꼭질’을 선보였다. 대상곡인 순라꼭질은 거문고와 다양한 타악기로 재즈의 블루노트와 국악의 다양한 시김새, 리드미컬한 전통 장단의 대비를 통해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음악을 수준 높은 기량으로 연주를 완성했다. ▶ 해당기사 원문보기 공상명월 ▶ 유튜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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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 제17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공상명월‘ 대상 수상…“재즈와 국악의 대비 그리고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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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진도 아리랑’,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 전라남도는 7월 21일 ‘진도 아리랑’과 ‘고흥 마동별신제와 매구’를 전남무형문화재로 지정, 체계적 보존과 효율적인 활용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별신제는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이고, 매구는 풍년을 비는 민속행사(농악)다. 진도아리랑(전남무형문화재 제64호)은 강원 정선아리랑, 경남 밀양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아리랑 중 하나다. 아리랑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데 이어 2015년 9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여기에 각 지역별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아리랑을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토록 권고함에 따라 전남도가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진도 아리랑은 남도 지방의 전통 음악선율인 ‘육자배기’를 기본으로 한국의 민요 및 남도민요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통성과 예술성이 높아 보존전승가치를 인정받았다.고흥 마동별신제와 매구(도 무형문화재 제63호)는 약 200여 년 전부터 전승된 고흥의 민속문화다. 마을 문서인 ‘별신제 절의’, ‘교자계안’에서 확인돼 그 연원과 역사성을 알 수 있다.다른 지역에 비해 외부의 농악이 들어오지 않아 비교적 문화유산의 전형(典型)이 잘 전승 보존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심재명 전남도 문화자원과장은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다양한 무형문화재의 신규 종목을 발굴·지정하는 등 보호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전남도는 또 ‘보성 용연정사’, ‘호남 여성농악-포장걸립-’ 등을 문화재자료와 무형문화재로 지정(인정)을 예고했다. 앞으로 예고기간인 30일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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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진도 아리랑’,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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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해보라 - '사랑도 매화' 디지털 앨범발매 (긴아리랑, 매화타령)
- 만13살 소녀, '보라'는 현재의 음악이 아니라, 먼 과거의 노래에 취해 그 길로 민요를 시작했다. 넘치는 매력을 가진 젊은 여성, 동시에 5대5 가르마를 탄 쪽진 머리와 한복이 유난히도 잘 어울리는 경기민요 소리꾼, '노래해보라'! 그녀는MBC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명창부에서 각각 장원, 차하를 수상하였으며, 2011년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창작국악경연대회 (전통소리 그룹 '절대歌인' 멤버) 금상수상,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2021 소형공연 지원사업 선정 - 노래해보라 '봄노래' 유튜브 공연, 2015년 제2회 부여 백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민요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실력 있는 소리꾼이다. ‘노래해보라’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인 김보라는 [사랑도 매화]앨범을 발매하며 “노래는 인생의 한 단면을 이야기합니다. 인생 전부가 희망과 사랑으로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제 노래를 듣는 누군가의 인생이 잠시나마 희망이고 사랑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민요의 이미지를 벗어나,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주변의 풍경, 생각, 이야기를 담아 ‘노래해보라’의 목소리로 민요를 전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랑도 매화] 앨범엔 총 2곡이 수록되었다. 01 긴아리랑 (편곡: 송지훈) 오래전부터 경기민요의 백미로 손꼽히는 노래이다. 사랑은 그렇게도 우리를 옛날부터 지금까지 슬퍼하게 했고, 기쁘게 했으며 살아오게 했다. 긴 그리움 끝에 느껴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긴 아리랑으로 노래해 보았다. 02 매화타령 (편곡: 송지훈) 모두가 움츠러드는 겨울, 매화는 가장 먼저 꽃을 피워낸다. 그 꽃은 온통 하얀 설중에 홀로 처연히 붉다. 먼 옛날의 누군가는 그 매화를 보고, 겨울을 혼자 견디는 마음을 사랑에 빗대었다. 그 마음을 목소리에 담고자 했다. 아울러 전자피아노와 휘슬연주의 따뜻하고 아련한 소리를 채웠다. '노래해보라'의 본명은 '김보라'이다. 평범한 '김보라'에서 '노래해보라'로 거듭나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수많은 의미와 목표를 담았다. 첫째, 경기민요 소리꾼으로 노래하는 '보라', '노래해보라', 둘째, 자신의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노래해보자는 권유의 의미로 '노래해보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보라, 물보라처럼 '보라' 자신이 노래라는 매개체로 강력하게 응축되어 있다, 산산이 아름답게 흩어져 '세상을 노래로 널리 반짝이고 싶다'는 의지의 '노래해보라'이다. '노래해보라'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한 곡들로 구성되어 2014년 첫 발매했던 미니 앨범 [여기도 하나]에 이어, 8년만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솔로 앨범[사랑도 매화]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한다. ‘노래해보라’는 솔로 앨범 발매 이후 6월, 자작곡인 담긴 싱글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으며, 6월9일-11일, 단재 신채호를 그린 마당극패 우금치의 마당극 '하시하지' 무궁화역으로 출연 예정이다. ‘노래해보라’(김보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성악(민요)전공 학사 -제21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민요 장원-제37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 차하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금상 (절대가인/떡먹고 엿먹고)-국립극장 예술단 미르 단원 역임-미니앨범 '여기도 하나' 발매 -제2회 부여 백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민요 대상 -국악한마당, FM99.1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 출연 등 -현재 창작소리그룹 절대가인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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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해보라 - '사랑도 매화' 디지털 앨범발매 (긴아리랑, 매화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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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의 화려한 부활, 평생의 꿈이죠’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 이사장
-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진 것만 같은 여성국극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이가 있다. 지난 추억 속의 문화가 아니라 다시 도약하는 대중문화로서 여성국극의 건재함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한 예인(藝人)이 있다. 그녀가 바로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 이사장이다.TV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이전, 여성국극은 영화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화 예술이었다. 여성국극이 펼쳐지는 극장에는 관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여성국극인들은 지금의 아이돌 스타들 못지않은 열성적인 팬들을 거느린 국민적인 스타이기도 했다. 특히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았던 여성국극 배우들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분명 여자인 줄 알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에, 그들의 소리에, 그들의 능란한 춤사위에 소녀들은 남루한 현실을 잊고 아련한 환상에 빠지곤 했다.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 문화“한번 무대를 본 이들이라면 여성국극이 보여주는 그 묘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임춘앵 김경수 박미숙 씨 등은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죠.” 판소리 김옥진 명창의 딸로 태어나 일찍부터 판소리에 그 재능을 인정받았던 소녀 홍성덕도 그랬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에 금세 넋을 잃고 말았다. “판소리만 하다가 20대에 갑자기 여성국극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여성국극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매력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죠.”1967년에 여성국극 ‘선화공주’에서 선화공주 역을 맡았던 그녀다. 하지만 여성국극 활동도 잠시, 그녀는 다시 판소리의 길로 돌아가고 만다. “여성국극은 소리와 춤, 연기가 모두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죠. 어느 하나만 뛰어나다고 해서 잘한다고 할 수 없어요. 제가 다시 소리 공부에 매진하게 된 것은 하나라도 우선 제대로 해내고 싶어서였어요.” 그녀가 한창 소리 공부에 빠져 있을 때 여성국극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TV와 라디오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은 TV 드라마나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웃고 울었다.그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때부터 그녀는 직접 발로 뛰며 예전의 명창들과 여성국극인들을 찾아 나섰다. 사라진 것에 안타까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금 부활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노력을 바쳤다.그 노력이 하나의 결실을 보기까지에는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예전의 여성국극인들을 모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진 인재들을 발굴하고 가르치고 또 공연을 준비하기까지에 걸린 시간이었다. 그 사이 1981년에 남원 전국국악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명창으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1987년 국립극장 대극장에 직접 제작한 ‘선인 이차돈’이라는 작품을 올렸어요. 그때의 감격이야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그 후로도 공연은 계속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축하 공연을 비롯해 매년 한 편 이상의 정기 공연은 물론 수십 회의 공연을 펼쳐나갔다. 1990년의 일본 오사카 초청 공연을 비롯해 해외 공연도 수없이 많이 다녔다. “1년에 한두 번씩 해외 공연을 나가는데 한 번 해외 공연을 나가면 30~40개 도시를 순회공연하곤 했죠.”특히 1996년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 대극장에서 공연한 일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국내에서 시드니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팀은 많지만 거의 대부분 소극장 공연이죠. 대극장에서 공연한 건 우리밖에 없을 걸요?”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시드니 오페라 대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2000년에 있었던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 때 축하 공연을 한 일이나 평양에 가서 공연한 일도 잊지 못하는 공연 중 하나라고 한다.2009-07-14 한경매거진 -->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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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의 화려한 부활, 평생의 꿈이죠’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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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용의 대중적 진화 꿈꾸는 춤꾼.. 서울시 무용단장 임이조
- “전통춤으로 ‘백조의 호수’ … 욕먹어도 도전한다” 임이조(林洱調·61)는 춤꾼이다. 무형문화재 승무 전수조교이며, 살풀이춤 이수자다. 인간문화재 이매방(85) 선생에게서 40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근래에 임이조는 한량무를 더 많이 춘다. 원래는 한량·각시·주모·스님, 네 명이 등장하는 이야기극이다. 그런데 임이조는 이것을 혼자 춘다. 1인극으로 그가 새로이 창작했다.임이조는 서울시무용단장이다. 전통춤꾼으로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라 한다. 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는 ‘백조의 호수’다. 지난해에 임 단장이 만들었다. 차이콥스키 음악에 맞춰 전통 춤사위가 섞인 현대무용을 한다. 임이조표 ‘백조의 호수’는 올 11월 상하이에 수출된다. 국제아트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80명의 스태프를 인솔해 나간다. 여러 면에서 임이조의 춤 인생은 ‘파격’이다. 그는 “전통무용도 대중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면서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글=성시윤 기자 ● ‘백조의 호수’부터 얘기해보죠. 차이콥스키 음악과 전통 춤사위로 만든 무용극이라고요.“네. 음악만 차이콥스키 음악이고요. 한국 창작무용이라고 보시면 돼요. 버선끝, 손끝, 발끝 동작은 한국 춤사위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한국 춤은 어느 음악에든지 다 출 수 있는 춤사위예요.”● 가장 먼저 배운 춤은 발레라면서요. “여섯 살 때 발레를 배웠어요. 그래서 발레나 클래식을 좋아하죠. 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편안한 마음에서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많은 질타를 각오하고 만들었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사실 심청이, 춘향이, 황진이라든지 아주 좋은 소재가 우리에게 많아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외국에 가면 쉽게 어필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서양 스토리를 들고 나간다는 게 참 안타깝죠. 하지만 외국인들도 자기네들이 쉽게 느낄 수 있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하시는 거군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죠. 구경하고 나오면서도 ‘저게 무슨 작품이야’ 하고 관객이 이해를 못하는 작품도 많거든요. 그런 작품을 보면 작가 혼자서만 추상적인 생각을 한 것이에요. 관객들에게 쉽게 어필되는 작품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객석에서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아무튼 춤을 아주 일찍 시작하셨네요. “저희 어머니가 현대무용을 하셨어요. 결혼하시고 춤을 접으셨죠. ‘딸을 낳으면 무용을 시켜야지’ 하셨대요. 저 데리고 춤도 많이 보러 다니셨는데, 공연 보고 나면 제가 흉내를 그렇게 잘 냈대요. 그래서 송범(1926∼2007) 선생님께 발레를 배우게 하셨어요. 국립무용단장을 아주 오랫동안 하신 분이죠.” ● 집안이 유복하셨나 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진 호강하고 살았죠. 저희 아버지가 미국문화원 공보실장도 하셨으니까요. 열한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모가 저를 맡아 키우셨어요. 제가 가자마자 아버지가 금방 사업에 실패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뒷받침 없이 춤을 배웠어요. 그래서 고생 많이 했죠.”그의 춤 창작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 때 같은 반 여자친구의 초립동이 옷을 빌려 입고 즉흥 춤을 췄다. 중학교 1학년 때 나간 ‘충남예술제’에선 남방춤을 역시 즉흥적으로 췄다.“그런 인연으로 자꾸 춤을 추게 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를 아는 분이 공짜로 발레도 가르쳐주셨고요.”열여덟 살에 그는 은방초, 김소희 같은 국악계의 거물을 만났다. 그리고 열아홉에 이매방을 만났다. “이매방 선생님이 승무를 추시는데, 소름이 쫙 끼쳤어요. 한국무용이란 게 저렇게 절제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구나. 저게 한국무용이구나 싶었죠. 춤을 깨닫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어요.”그 인연이 이제 40여 년이 됐다. 그는 춤으로 자수성가를 했다. 단국대 체육과를 다닐 때에는 휴학을 세 차례 했다. 형편이 어려워, 때론 외국 공연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그 바람에 대학을 10년 넘게 다녔다. 그러고선 30대 중반이던 85년에 자신의 무용단(‘선’ 무용단)을 만들었다.● 무용단을 일찍 만드셨네요. “그때 제가 방송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임이조’ 하면 대한민국에서 방송을 제일 많이 하는 무용수였어요. 방송 활동을 하다 보니 단체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무용단을 만들었죠.”● 젊은 나이에 무용단 만든 것에 대해 주위 선배들은 뭐라 하셨나요. “은방초 선생님이 저를 보고 ‘냄비 뚜껑이 끓지도 않고 넘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를 굉장히 영악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춤에 미쳐 가지고 판 벌이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발표회를 많이 하고 빚도 많이 졌어요. 뭐, 공연을 정말 무한정 했죠. 저를 알리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방송도 열심히 나갔고요.”● 왜 그렇게 본인을 알려야 했나요. “내가 조건이 안 되니까요. 무슨 ‘대학 교수’도 아니고, 집안 뒷받침도 없으니까요. 나를 알려야 사람들이 나를 쓰죠.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찾겠습니까. 그래서 방송을 많이 했던 거죠. 그러면서 명창, 명인들이랑 많이 친해졌죠. 그 덕에 제 춤도 많이 좋아졌어요. 생음악에 하다 보니 춤의 맛이 발전한 거예요. 이생강 선생님 같은 분들이랑 같이 공연을 했으니까요. 저는 녹음 테이프에 춤을 춘 적이 거의 없었어요. 아무튼 그래서 ‘임이조’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거죠. 그게 제 노력이었어요. 지금 서울시무용단장 하면서 어느 정도 관객이 모이는 것도 ‘임이조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춤꾼으로 춤을 추는 것과 무용단장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죠. “그렇습니다. 서울시무용단장 중에 임기 못 채우고 나간 분들도 많아요. 제가 보니까 ‘희생’이 중요해요. 단장으로서 권위적으로 행동하기보다 희생을 먼저 해야 해요. 정기공연 할 때면 제 아내가 백몇십 명 반찬을 차려 갖고 와요. 우리 집사람이 음식점도 했던 사람이라 반찬을 열몇 가지 해서 뷔페식으로 차려 가지고 와요. 그러면 전부 다 감동들을 하잖아요. 또 저희 서울시무용단이 ‘찾아가는 공연’ 같은 것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단원들한테 그렇게 얘기합니다. ‘무대가 좋네, 나쁘네, 이런 얘기 하지 마라. 내가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기도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면 관객들이 좋은 무대, 귀한 무대로 인정을 한다’고요.”● 그럼에도 전통춤이 인기가 많지 않습니다. “우선 지루하다는 거예요. 전통춤은 자주 보고, 가까이 앉아서 봐야 신도 나고 흥도 납니다. 무대 멀리서 우리 춤을 볼 때는 아주 느리지 않습니까. 서양무용처럼 동작이 역동적이지도 않고요. 게다가 우리 춤은 웬만큼 잘 추지 않으면 감동을 못 줘요. 호흡에서, 내면에서 나오는 춤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통춤도 어필할 수 있는 소재와 흥미 본위로 가야 해요. 그럼 ‘진정한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하죠. 순수하게 예술만 한다면 관객이 많이 오나, 적게 오나를 따지지 말아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단장으로서 관객 숫자로 평가를 받거든요. 그러니 대중과 호흡을 같이해야 해요. ‘백조의 호수’를 만든 것도 어떻게 보면 제가 쇼맨십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통춤 하는 사람인데, 하필이면 왜 그걸 했겠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 도전도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1인극 한량무, ‘백조의 호수’ 등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이런 그를 스승 이매방 선생은 어떻게 볼까. 자기에게서 배운 춤을 제자들이 변형하는 것을 싫어한다. 전통을 고집한다. 그런데 임이조는 스승에게 배운 승무나 살풀이춤보다는 자신이 창작한 한량무를 더 많이 춰왔다. ● 스승과 사이는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란 존재가 있죠. 선생님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금도 겁이 나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경거망동을 좀 덜 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예인이 지켜야 할 것도 많이 말씀해주셨고요. 그래서 따뜻한 연이 많아요. 여러 가지 희로애락 속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제 머릿속을 떠나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 집사람도 선생님이 소개해 주셨고요. 별것 아닌 것 같고 노하셔서 섭섭할 때도 있지만, 마음에 그런 게 남진 않습니다.”● 한량무를 추는 것에 대해 스승께선 뭐라 하시나요. “제가 78년부터 한량무를 췄어요. 그래서 이제 ‘임이조’ 하면 사람들이 한량무를 떠올려요. 선생님은 ‘승무, 살풀이 전수자가 돼가지고서 한량무를 춘다’고 막 뭐라 하셔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승무도 많이 추고 있습니다. 호호호.”● 한량은 ‘돈 잘 쓰고 잘 노는 남자’ 아닌가요. “제가 추구하는 한량은 풍류를 알고, 멋을 아는 남자예요. 벼슬이나 관직에 구애 받지 않고 초월해서 멋을 즐기는 남자요.”임이조의 지향점은 ‘한량’인가 보다. 그가 손수 지은 이름 ‘임이조’에서도 그게 엿보인다.“본명은 임규흥이에요. 임이조는 예명이고요. 제가 사주를 좀 보는데요.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대요. 그래서 물결 이(<6D31>)자와 고를 조(調)자로 예명을 지었어요. 물결이 고르면 춤 추는 사람에게 좋지 않겠나 해서요.”● 선생님 사주가 어떤데요. “글쎄요. 돈복은 없고요. 도 닦는 팔자더라고요. 남에게 봉사해야 하고요. 그러면서 명예를 좇기보다는 많은 보람을 남겨야 하는 운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임이조 단장은 전통예술의 대중화에 자신의 운명을 건 듯하다. 대중에게 친숙한 춤꾼이며, 예술단체를 이끌고 있으니 그에게 딱 맞는 일이다. 그는 10년째 자신의 공연을 기획해주는 강현준(43) 유민공연기획 대표와 함께 지난 7월 ‘부지화(不知畵)’라는 이름의 전통예술 공연 브랜드도 선보였다. 시는 알지만 그림은 도통 모르던 문인들을 꼬집는 문구 ‘백일소소 부지화(白日昭昭 不知畵, 밝고 밝은 대낮에 그림을 알지 못한다)’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춤, 소리,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일년에 두어 차례 선보인다고 한다. 임 단장의 ‘파격’이 전통예술의 대중화에 어떻게 기여할지 궁금해진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뭐 뻔하지 않겠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춤이죠. 제가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춤을 추게끔 돼 있었어요. 어머니 태몽에 호랑나비가 나왔다니까요. 나비가 춤 아니에요. 저는 죽는 날까지도 마음속으로 춤으로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춤은 내 삶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친에게서 춤을 이어받았고, 죽는 날까지 제가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춤을 못 춘다 하더라도 후진을 위해서 할 일이 있으니까요.” j 테일 >> “김덕수 그 친구,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죠”임이조는 일찍이 초등학교 5학년 방학 때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전통예술을 하던 오춘광이란 사람이 소년소녀들로 구성한 패거리의 단원이 되면서다.“지방 극장에서 공연을 했죠. 그 시절만 해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상영하고 국악 공연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또 영화를 상영하고요.”비슷한 또래의 초등학생 다섯 명이 모인 공연단이었다. ‘다섯 명의 천재 소년소녀’라는 이름이었다. 공연을 하고 나면 출연료로 500원, 그리고 공연이 늦어지면 야참비로 200원을 받았다 한다. 멤버 중에는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도 포함돼 있었다.“저보다 두 살인가 아래였어요. 빵빵하게 생긴 친구가 장구 하나는 참 야물딱지게 친다 싶었죠. 국악인들이 ‘김덕수’ ‘김덕수’ 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친구였어요. 그렇게 유명해질 줄은 그때 생각도 못 했죠.”--> 중앙일보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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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용의 대중적 진화 꿈꾸는 춤꾼.. 서울시 무용단장 임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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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 부천무형문화엑스포 홍보대사로 창조적 미래 발견 디딤돌 역할 다짐 ‘사물놀이’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김덕수’.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 행사 승인을 받아 다음 달 28일 열리는 지구촌 첫 무형문화축제 ‘2010 부천무형문화엑스포’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홍보대사인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에게 다시금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던 한국 전통음악계를 깨운 봄바람에 비유된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창단해 사물놀이를 대중화시킨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물놀이는 모르는 외국인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대표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김덕수’표 사물놀이가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사물놀이의 경쟁력을 묻자 그가 먼저 제시한 것은 ‘온고창신((溫故創新)’이란 단어였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뛰어넘어 창조성을 투영한 ‘살아 있는’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뜻에서 김 교수가 만든 말이다. “전통은 지키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재창조 과정을 거치는 ‘퓨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외국인들에게 더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김 교수가 사물놀이에 재즈, 클래식, 힙합 등 다양한 분야와 결합시킨 크로스오버 공연을 자주 펼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시대정신이 꼭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중의 취향도 바뀐다는 것. 가장 한국적인 장단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신명’ 나는 공연,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이러한 소신을 통해 빛을 발하며 세계가 열광하는 브랜드 ‘김덕수 사물놀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김덕수 사물놀이는 영역을 막론하고 전통음악을 새로운 상품으로 창출해내는 모델이 되고 있다.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드라마로 엮어낸 ‘난타’는 해외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제작사 PMC프로덕션에게 지난 13년 간 10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다 줬다. 올 초,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디지털 첨단기술과 아날로그적인 사물놀이를 접목해 ‘4D 홀로그램 사물놀이’라는 독특한 예술을 선보여 국내외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즐길 수 있는 모바일 사물놀이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돼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한국 브랜드 육성과 전통상품 개발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들이 우리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그래야 우리 DNA가 담긴 진정한 한류 열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번 부천무형문화엑스포가 단지 옛것의 체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창조적인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코노믹리뷰 2010년 08월 24일 전희진 기자 -->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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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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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덕 여성국극협회 이사장~"60주년 맞은 여성국극 제2의 부활 꿈꾼다"
- "가마니를 땅바닥에 깔고 야외극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리가 없을 정도였죠. 요즘 대중가수 인기에 버금갔어요. 중ㆍ고생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쫓아다녔죠."서울 종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63) 이사장은 1950-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여성국극의 인기를 이렇게 회상했다.여성국극이란 창(판소리)과 춤, 연기가 혼합된 종합예술이다. 1940년대 창극에서 여성이 남성 역할을 맡게 된게 계기가 돼 파생한 분야다.여성국극예술협회는 1948년 춘향전을 줄거리로 공연된 '옥중화'를 그 시초로 보고 있다. 올해는 여성국극 탄생 60주년을 맞는 해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은 흐릿해지고 이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홍 이사장은 "그래도 가능성은 넘쳐난다"며 여성국극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그는 "여성국극을 하려면 창과 춤, 연기도 좋아야 하고 용모도 뛰어나야 한다"며 "이 네 박자를 골고루 갖춘 만능 예인이어야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한 가지 분야를 잘 하기도 어려운데 여러가지 재주를 갖춘 배우들이 출연하는 여성국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무대였다. 특히 주역급 남장 배우들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은 "그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2008-03-16 연합뉴스-->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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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민요
-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1. 언어가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15세기 한국의 음악문화는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었다. 편경 편종과 같은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음악어법의 문묘제례악이나 한국음악어법의 종묘제례악악을 작곡하였는데 그 음악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음악학도 발달하여 그 당시의 음악이론을 집대성한 악학궤범(樂學軌範)같은 책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악학궤범에 보면 노래에 대하여 “歌所以永言而和於律”이라고 간단히 언급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노래란 말을 길게 하여 음율에 맞춘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말이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하긴 인도노래는 인도말을 길게 하여 인도음율에 맞춘것이고 중국노래는 중국말을 길게 하여 중국음율에 맞춘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논리로 우리나라 노래는 한국말을 길게 하여 우리나라의 음율에 맞춘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노래가 되는 과정을 검증해 보자. 본격적인 노래가 아니면서 노래의 요소가 많은 언어현상을 찾아보자.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아기를 재울때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멍멍개야 짓지마라 우리아가 잘도잔다.”와 같이 읊조리면서 아기를 재웠다. 그런 소리에는 장단도 있고 곡조도 있으니까 노래의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어린학생들이 구구단을 외울때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구 십팔”하고 외운다. 그 소리에도 장단과 곡조가 있다.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고 농부들이 소를 몰면서 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다. 이런 소리들이 노래의 바탕이 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우리노래의 모습은 어떨까?. 간단한 것으로는 ‘새야새야’와 같이 3음으로 되는 것이 있다. 완전4도 위에 장2도를 쌓아 올려 만들어지는 이 3음계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새야새야’의 곡조가 된다. 그런데 그 곡조도 처음을 하행으로 시작하여 “솔레라솔- 라솔레레- 라레라라-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을 상행으로 시작하여 “라레라라- 라솔레레- 솔레라솔-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두가지 곡조가 다 쓰인다. 또 가사를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읊조리듯이 하여 만들어지는 간단한 민요는 3음만으로도 노래가 된다. 그런데 이 ‘새야새야’는 박자가 5박자이다. 서양음악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5박자가 우리노래에서는 가장 간단한 민요에도 사용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래에는 5박자가 많이 쓰인다. 농촌에서 모를 심을때 부르는 모심기 노래에도 “심어주게- 심어주게- 심-어주- 게---- 오-종조옹 줄-모르을 심-어주- 게---- ”와 같이 5박자로 부른다. 우리말이 석자나 넉자로 이루어지는 말이 많기 때문에 그 석자나 넉자를 우리가 말하는 식으로 읊조리면 5박자가 될 때에 편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5박자를 늘이면 8박자가 된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많이 사용하는 박자가 되어 있다. ‘시조’의 초장은 박자가 5․8․8․5․8 이니까 5박과 8박이 섞여 있는 박자인데 경기민요인 ‘노랫가락’도 그런식으로 되어 있다. ‘노랫가락’은 ‘시조’와 같은 3장형식의 시를 가사로 하는 노래인데 “청-산리- 벽게-수-야-- 수이---감을- 자랑-마- 라---- ” 와 같이 5박과 8박을 섞어서 박자로 쓰고 있다. 현행의 시조나 가곡이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있고 풍류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의 상영산이나 중영산 세령산이 다 5박구조이다. 많은 궁중음악이나 고려때 가요로 알려진 ‘가시리’ ‘사모곡’ ‘서경별곡’ 청산별곡‘ 같은 노래도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 있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말이 그런 박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에는 사투리가 있다. 음악이라는 두 글자도 전라도에서는 “으마악-”과 같이 발음하고 경상도에서는 “어막”과 같이 발음한다. 전라도의 사투리는 소리를 뒤로 밀면서 발음하기 때문에 소리의 세(勢)가 뒤쪽으로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는데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는 뒤가 끊어지면서 앞쪽에 액쎈트가 가게 된다. 그러면 두 지방의 민요도 그와 같이 발달하게 된다. 전라도 민요는 선율이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진도아리랑’의 첫부분이 “무운경- 새재애느은 웬 고오오갠가 - ” 하면서 뒤를 떨면서 지속하고 있다. 한편 경상도 민요는 “어막”이라는 말과 같이 앞에 액쎈트를 주면서 뒤는 곧 끊어지게 소리내기 때문에 ‘밀양아리랑’의 경우 “날쫌보소오 날쫌보소오”와 같이 부르게 된다. 사투리의 억양이 그대로 민요에 반영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 따라서 민요의 구조나 특징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라도민요 경상도민요 경기민요등의 갈래가 형성되게 되고 민요권이라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땅덩이는 그리 크기 않지만 각 지방마다 독특한 사투리가 있어서 그와 같은 맥락의 특징있는 민요가 많이 발달 하였다. 내가 채집해 본 바로 우리나라의 민요는 제주도 한 도에서 300곡 이상이 나올 정도로 많은 민요가 발달하였다. 나는 그 중 170곡 정도를 골라 악보를 낸 적이 있다. 악학궤범의 언급대로 노래란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말이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인도에는 인도식 노래가 중국에는 중국식 노래가 발달하는 것도 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사투리가 다르면 다른 특징의 노래가 발달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우리말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문화를 창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 더 많은 내용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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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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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세계 한국 국악경연대회 정보
- 대회명 : 제12회 세계한국국악경연대회 한국 국악인들과 전세계에 있는 재외동포 후세들에게 한민족의 전통문화 예술의 함양된 실력을 평가 받고, 인증 받는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 조국문화의 긍지를 갖게 해주며, 세계문화의 중심인 뉴욕에서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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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세계 한국 국악경연대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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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전국국악경연대회 안내 (5월21일까지 접수)
- 대회명 : 제10회 전국국악경연대회 (전국국악대전) ‘전국국악대전’은 국악예술인들의 총체적 혼과 노력의 결과를 경주하는 국악의 종합대회로 국악의 올바른 전승과 체계적 계승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우수 국악인의 선발 및 등용을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 경연대회 정보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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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전국국악경연대회 안내 (5월21일까지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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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까지 정선읍 아라리공원 일원에서 2012 '정선아리랑제'
- 2012정선아리랑제의 기본프로그램 윤곽이 나왔다. (사)정선아리랑제위원회(위원장 이종영)는 오는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정선읍 아라리공원 일원에서 ‘우리모두 흥겹게, 흥얼∼흥얼(興all∼興all)’을 주제로 2012정선아리랑제를 개최한다. 올해 아리랑제는 추석연휴와 정선5일장이 중복되는 기간인 점을 감안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참여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주요일정은 10월 1일 정선군 남면 낙동리 칠현제례와 아리랑 군민화합 콩쿠르를 시작으로 2일 오후 7시부터 아라리공원둔치 특설무대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이어 정선사투리 골든벨, 한시백일장, 삼베길쌈재현·전시행사가 3일 공설운동장과 아라리촌 일원에서 진행되며 4일 오후 6시부터 폐막식을 갖는다. -->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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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까지 정선읍 아라리공원 일원에서 2012 '정선아리랑제'